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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결혼하기 좋은 날

하늘빛에 눈이 부셨다. 적당히 무리지어 있는 뭉게구름 몇 조각 너머 그 푸르름은 깊어지고 있었다. 어느 여가수의 노래처럼 그리운 사람이 저절로 그리워지는 하늘이었다. 그 하늘 아래 무미건조한 도로 위 자동차들 사이를 난폭하게 비껴 질러가는 한 대의 차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지금 시간은 3시 14분. 결혼미사는 오후 4시에 시작된다고 했다. 결혼식이 진행될 성당은 서울 시내에 있었다. 주말이라고는 해도 서울로 가는 길이 밀릴 시간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늦어진 건 교통 사고 여파 때문이었다. 무려 30분을 꼼짝 못한 채 길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장태주는 초초해졌다. 오늘의 결혼식에는 너무도 많은 것 이 걸려있다. 이 결혼식이 실패로 끝난다면 그가 꿈꾸는 황금의 제 국은 시작도 못해보고 무너진다. 무슨 수를 쓰든 꼭 제 시간 안에 도착해야만 했다. 어쨌든 신랑 없이는 결혼식이 안 될 테니까.

그때 앞차의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장태주는 망설임 없이 갓길로 핸들을 꺾었다. 오른발 끝에 힘이 들어갔다. 이미 끝까지 밟고 있는 액셀이었지만,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페달이 튀어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죽을힘을 다해 힘껏 밞았다. 잘 길들여진 야수처럼 포효하던 자동차가 이제는 살려달라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렇게 더 달리다간 몸체가 부서져버릴 거라고 비명 지르고 있었다. 독일제 2인승인 차의 최고출력은 400마력이 넘었지만, 지금은 더 힘 좋은 차를 살 걸 하는 후회마저 들었다. 시간이 없었다.

“나쁜 새끼….”

씹듯이 내뱉는 장태주의 얼굴은 분노와 초조함으로 어지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발아래 쓰러져 있는 김의원의 몸에서는 아직도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장태주의 표정은 김의원이 앞에 있다면 지금이라도 또다시 죽일 것 같은 얼굴이었다. 크게 쉼호흡을 한 장태주는 정신을 다잡으려는 듯 왼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손에 슬쩍 피가 묻어나왔지만 장태주는 눈치재치 못 했다. 머리카락 어딘가에 튄 김의원의 피가 분명했다.

장태주에게 김의원이 별장에 있다는 걸 알려준 건 설희였다. 윤설희. 정확히 말하자면 윤설희가 알려줬다기 보다 장태주가 계획한 자리였다. 윤설희는 장태주가 시키는 대로 김의원을 한적한 별장으로 불렀고, 장태주가 김의원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물론 김의원은 이런 계획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장태주가 자신을 만나려 한다면 김의원은 피했을 것이고, 윤설희조차 만나주지 않았 을 것이다. 윤설희에게 푹 빠져 있던 김의원이었지만, 자신의 손으 로 매장시키려고 하는 장태주를 만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김 의원을 윤설희는 둘만의 만남인 양청평의 별장으로 유혹했고, 김 의원이 자신의 몸을 탐닉하는 동안 장태주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간을 끄는 데에도 한계가 느껴졌다. 윤설희가 시간을 끈다고 끌었음에도 김의원과 윤설희, 두 사람의 뜨거운 시간이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뜨거운 육체의 욕망을 채운 김의원은 이미 샤워를 마치고 욕실 밖으로 나가 있었다. 옷을 입으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본새가 곧 별장을 나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욕실 안으로 언뜻언뜻 들리는 김의원의 전화 내용은 장태주와 관련있는 것이 분명했다. 김의원은 쇼핑몰, 오피스텔 등의 분양 탈세자료를 검찰에 넘겨줘 장태주를 매장시키려 하고 있었다. 전화기 저 너머에서 굽신거리고 있을 상대방은 김의원의 비서관이 분명했다. 시간을 끌기 위해 되도록 천천히 몸을 닦아 내던 윤설희는 다급해진 목소리로 장태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 더 못 끌어. 지금 나갈 거야. 저 사람….”

“한번 더 안겨”

“태주야….”

“왜? 자신 없어? 김의원이 언제 니 몸 마다한 적 있었나?”

촉촉한 물기에 젖은 채 욕실에서 나온 윤설희의 유혹에 김의원은 잠깐 당황스런 눈빛이 스쳤지만 곧바로 윤설희의 몸 안으로 무너져 왔다. 길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뜨거운 열기가 지나고 윤설희의 몸에서 전해 오는 여운을 음미하던 김의원이 막 와이셔츠를 걸치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끼이익 하는 차 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란 김의원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다급히 차에서 내리는 장태주가 보였다. 그제야 김의원은 이것이 윤설희가 꾸민 일임을 눈치 챘다. 고개를 돌려 윤설희를 바라보는 김의원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네가 꾸민 짓인가, 하는 김의원의 눈빛에 윤설희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끄덕였다. 윤설희도 만만치 않았다.

“혹시 알아요?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을지.”

“자네. 내 몸은 알지만, 마음은 모르는군.”

싸늘한 김의원의 눈빛. 여전히 미소 짓는 윤설희. 그러나 두 사람의 신경전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곧바로 장태주가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 4시에 출발하는 마카오행 티켓입니다. 마카오뱅크 시크릿 키도 준비했습니다.”

“?”

“미국 국채로 백만 달러 정도 들어있을 겁니다. 당분간 용돈하시면, 곧 제대로 준비 하겠습니다”

김의원이 장태주가 내민 봉투를 열어 천천히 내용을 확인했다.

“편도군. 돌아오는 비행기는?”

“2년 안에 준비하겠습니다.”

“지역구 4선 의원에, 건설교통부 장관 내정자더러, 해외 도피를 하라….”

“제가 살아야겠습니다. 청문회에서 제기한 의혹, 검찰에서 흘러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지검 금조부에서 절 잡으려고 의원님 쪽을 두드린 거구요.”

“그래서….”

장태주는 능글거리는 김의원의 얼굴이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인간에게 자신은 여전히 시키면 따르고, 밟으면 밟히는 하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의원님은 절!!!! 검찰에 넘기려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의원님을 잘 아니까요.”

“그러면, 내가 이 비행기를 탈거라고 생각하나?”

“타시게 될 겁니다.”

“이봐. 장사장. 나한테는 말이지. 이 땅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네.”

그래, 그래야 당신답지. 그렇게 나와야지. 진심으로 부탁한다 해서 들어줄 김의원이 아니었다. 김의원은 정치인이지 않는가. 그것도 닳고 닳은.

눈으로는 여전히 김의원을 쏘아 보면서 장태주의 손이 양복 안주머니로 들어갔다.

“그 꿈. 제가 사겠습니다. 이거 용인 복합상가 등기권리증입니다.”

“돈으로 꿈을 살 수는 없어.”

“감정가 200억이라고 들었습니다.”

“자네… 정말….”

“하나 더 있습니다. 사모님 소일하시라고, 소공동에 명품관 가게 하나 마련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서로 뚫어질 듯 노려보는 두 사람. 그러나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이내 김의원이 졌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핸드폰으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장태주의 얼굴은 여전히 굳은 채였다. 김의원은 곧바로 자신의 보좌관인 최비서에게 검찰 출두 취소와 장태주 관련 모든 서류의 소각을 지시했다. 장태주가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통화를 끝낸 김의원이 이제 만족하겠냐고 묻는 듯 미소를 흘리며 장태주에게 악수 를 청해왔다.

“자넨 사람을 잘 아는군.”

“아닙니다. 전 의원님 같은 분은 잘 모릅니다. 제가 잘 아는 사람은 최비서 같은 사람입니다.”

김의원이 내민 손을 장태주는 잡지 않았다. 대신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고 상대가 전화를 받는 그 짧은 동안에 장태 주를 노려보던 김의원의 눈빛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 아파트 맘에 들어? 최. 비. 서. 방금 김의원님 검찰 출두 취소 한다는 연락 받았나? 그래? 서류 소각하라는 지시도 못 받았고? 그 럼, 물론 바람 쐬겠다는 소리도 못 들었겠지? 그래. 알았어.”

통화가 이어지는 동안 장태주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김의원이 자신을 바로 앞에 두고 속인 것이다. 혹시나 몰라 대비는 했지만, 그래도 애써 믿어보려 했었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당하 고보니 앞에 있는 놈을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김의원은 장태주의 표정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낭패였다. 애송이인줄 알았던 놈이 알고 보니 늑대 새끼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장태주를 보며 김의원은 뭔가 잘못될 것 같은 불안감에 몸이 떨려왔다. 벽까지 밀린 김의원의 멱살을 잡아 올리며 장태주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절 속이시면 안 되죠. 저하고 같이 세상을 속이기로 한 분이. 나 같은 놈 시궁창에 버려도 장관만 되면, 돈 갖다 바칠 놈들 골라서 챙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이 새끼야.”

“떠… 떠나겠네. 마카오, 가겠네. 한번만 믿어 줘….”

“정치하는 놈들이 한 번 믿어 달라는 건, 한 번 더 속아 달라는 뜻 아닌가?”

“정말 가겠….”

“잘 들어. 너한테 있는 건, 나한테도 있어. 꿈도 있고, 힘도 있어. 그니까 손 흔들어줄 때, 떠나.”

숨이 막혀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김의원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색이 된 김의원 대답에도 한동안 죽일 듯 김의원을 노려보던 장태주가 마침내 김의원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그래. 이만하면 알아들었겠지, 이젠 외국으로 떠나겠지, 이놈만 입 다물어 주면, 그러면 난 살 수 있어. 장태주가 돌아서던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골프채가 날아왔다.

눈 깜빡할 순간이었다. 장태주가 돌아선 것, 김의원이 옆의 골프 채를 들어 장태주의 뒤통수를 후려친 것, 그걸 피하면서 장태주가 동시에 김의원을 껴안은 것. 그 모든 일들이 한 순간에 일어났고, 그리고는 갑자기 세상이 정지되었다.

잠시 후, 바닥으로 핏방울이 툭, 툭 떨어지며 김의원의 무릎이 나무토막처럼 꺾였고 이내 스르르 쓰러졌다. 그리고는 어디를 어떻게 찔렸는지 모를 김의원의 몸에서 피가 번져 나왔다. 피는 금새 바닥을 검붉게 물들였다. 꾸역꾸역 나오는 김의원의 피를 보자 장태주는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하지만, 현실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의 몸에서 이렇게 많은 피가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찌른 게 맞는지, 이 사람이 좀 전까지 나와 다투던 김의원이라는 그 나쁜 새끼가 맞는지, 무엇보다 내가 여기에 있는 게 실제인지 꿈인지조차 판단이 되지 않았다.

짧은 순간에 그 모든 일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윤설희는 너무나 큰 충격에 온 몸이 떨려왔다. 김의원이 죽었다. 내 앞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죽어있다. 자기도 모르게 이빨에서 딱딱 소리가 들려오고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게 저절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김의원을 사랑한 적도 없지만, 타락한 정치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죽을 사람은 아니었다. 이렇게 자기 앞에서 죽어서는 안 되었다. 머릿속이 하앴다.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부르르 떨고 있는 윤설희의 입에서는 그저 태주의 이름만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태주를 부르는 그 소리는 너무나 떨려서 도저히 태주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그때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벽시계에서 나는 소리였다. 뻐꾸기 소리는 최면을 깨우는 마술사의 주문인 양, 두 사람을 동시에 현실로 불러냈다. 장태주는 다시 바닥을 보았다. 꿈이었으면 좋겠지만 분명한 현실이었다. 발아래 김의원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었다. 어디를 찔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미 김의원을 살리기에는 늦어 보였다. 아니, 살릴 수 있다고 해도 다시 살려 놓고 싶지 않았다. 그가 살면 장태주 자신이 죽어야만 하니까. 거친 숨을 내뱉은 장태주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헝클어진 머리도 매만지고, 얼굴에 튄 피도 슥슥 문질러 닦았다. 뭐든 생각을 해야만 했다. 이대로 여기에 넋 놓고 있어서는 안 되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어서 여기서 나가야 했다. 결혼식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 장태주가 윤설희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윤설희. 장태주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과도를 들고 윤설희가 앉아있는 소파로 다가갔다. 장태주의 목소리는 섬찟하리만치 차분했다.

“김의원이 상의할 게 있다고 널 불렀어. 김의원은 취한 상태였지. 널 원했어. 넌 거부했지. 그러자 옷을 찢고 때렸어. 손으로, 골프채로!”

그러면서 장태주는 윤설희의 블라우스를 거칠게 찢었다. 윤설희의 뺨도 세게 때렸다. 그 모든 것은 김의원의 폭행을 증명할 증거가 될 것이었다. 그러면서 장태주는 부들부들 떨고있는 윤설희의 손에 과도를 쥐어주었다.

“그래서… 니가 김의원을 찔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