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밀

―나 임신 6개월이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다.

오늘은 비가 왔다.

날씨가 구려서 그런지 오늘은 몸이 더 무겁다. 언제나 그랬지만 요즘은 아침이 더욱 힘들다.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배.

제니
‘어디 임신용 교복을 따로 만들어 파는 데 없나?’

나는 끙끙거리며 복대를 배에 두르고 겨우 교복 단추를 잠갔다.

언니
“저 계집애 똥배 봐라!”

화들짝 놀래 돌아보니 언니가 젖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귀신처럼 서 있었다.

제니
“꺄아아아아악……!”

내가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질렀던지 언니가 더 놀랐다.

언니
“이게 무슨 엉큼한 짓을 하고 있었길래……?”

언니는 방 안을 둘러보며 강아지처럼 코를 킁킁거렸다.

제니
“아침부터 뭘 염탐하려고 남의 방을 기웃거리는 거야?”

또 잔소릴 늘어놓을까 봐 나는 잔뜩 인상을 쓰며 스타킹을 신었다.

언니
“야, 너 생리대 왜 이렇게 많이 남았냐? 나랑 똑같이 샀는데……”
제니
“또, 또 사다 놨으니깐 그렇지! 남이사 많든 말든!”
언니
“계집애 승질은……. 두 개만 빌려줘!”
제니
“언니 건 다 어쩌고? 생리대 엿 바꿔 먹었냐?”
언니
“얘가! 이깟 생리대 갖고 무지 오바하네…….”

하다가 불쑥 내뱉는 소리.

언니
“근데 너 수상하다…… 너…… 혹시…….”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제니
‘저 불여시가 기어코 눈치를 챈 걸까?’
제니
“호, 혹시 뭐?”
언니
“너 내 거 훔쳐 쓴 거 아냐?”
제니
‘그럼 그렇지! 내 배 속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언닌 상상도 못할걸! 낄낄!’
언니
“왜 웃냐? 켕기냐?”
제니
‘콱 불어 버려서 기절하는 꼬락서니를 봐?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내가 참는다. 어른 딱지도 못 뗀 주제에 누구한테 감히…….’
언니
“쥐방울 만한 게 어른이 말하는데 웃어? 너 생리대 모으는 취미 생겼니?”
제니
“그래! 생리대 감춰 뒀다가 전쟁 나면 쓸려고 그런다! 왜?”
언니
“얼씨구! 놀고 있네…… 그래! 전쟁 나면 넌 생리대부터 박스로 사들일 거다. 그게 너하고 나하고의 차이지.”
제니
‘언니하고 나하고의 차이는 그게 아니고, 언니는 아직 숫처녀고 난 임산부란 거지. 낄낄!’

근데 생리대 두 개를 흔들며 나가던 언니가 홱 돌아서서 말했다.

언니
“이상하잖아? 너하고 똑같이 샀는데 너 혹시……?”
제니
‘임신한 거 아냐?’

그 소리가 튀어 나올까 봐 조마조마해 있는데…….

언니
“너 생리 불순이지? 그치? 건너뛸 게 따로 있지 얘가... 너 병원 가 봐.”
제니
“알았어! 알았으니까 언니나 손님맞이 잘해!”

언니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내쫓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니
‘어휴! 애 떨어질 뻔했네…….’

큰 언니한테서 엽서가 왔다.

이번 방학 때 미국 오라고.

주노와 함께 갈 수 있다면 짱 좋겠다.

제니
‘그치? 주노야.’

○제니의 보충 설명

내 이름은 제니. (본명은 손재인:孫在仁)

제니란 이름은 주노가 만들어 준 거구요.

저는 지금 임신 6개월입니다.

중학교 2학년.

나이는 14년 6개월…….

저는 곧 아기 엄마가 될 겁니다.

이건 주노와 저만 알고 있는 비밀이죠.

시기적으로 도저히 낙태를 시킬 수 없을 때까지 그 사실을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곧 모두 알게 될 겁니다.

이젠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만큼 몸이 불어났습니다.

모두 알게 되었을 때…….

엄마가 알게 된다면…….

아빠도 알게 된다면…….

선생님들께서 아시게 된다면…….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하늘이 노랗습니다.

제니
‘하나님! 제발 우리들을 도와주세요!’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제니와 주노, 우리들의 일기를 옮겨 적은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첫 관계를 가졌는지 어떻게 임신을 알게 됐는지.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두 적혀 있습니다.

일기의 날짜를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여러 날의 내용을 한꺼번에 편집했기 때문입니다.

주노의 일기도 내가 좀 다듬었습니다.

―제니가 임신했다고?

학교 가는 길에 지존과 혼수상태, 변강쇠들을 만났다. 언제나 그렇듯 그놈들의 화제는 섹스였는데, 오늘의 주제는 딸딸이였다.

지존
“야! 주노, 인마! 너도 갔어야 되는데!”
혼수상태
“어젯밤에 과외 끝나고 너 어디로 샜어? 제니하고 데이트했냐?”
주노
“오아시스 멀티 방에서 딸딸이 대회가 있었거든. 어떤 놈이 우승했게?”

내용인즉, 졸라 야한 동영상을 틀어 놓고 동시에 딸딸이를 시작해서 누가 먼저 발사를 하는 가 시합을 하였더니, 역시 별명에 걸맞게 변강쇠가 1분 35초의 신기록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변강쇠 놈은 우쭐해서 나한테 내기를 걸어 왔지만, 난 콧방귀를 뀌고 돌아섰다.

주노
‘빨리 싸는 것을 자랑으로 아는 어린아이들과 무슨 섹스를 논하겠는가?’

점심시간에 제니가 도시락 뚜껑도 열지 않고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쫓아나가 어디 아프냐고 했더니, 속이 안 좋다고 했다.

주노
“아침 먹은 게 체한 거 아냐?”
제니
“야채스프 조금 먹다 말았는걸.”

암튼 양호실로 달려가 소화제를 얻어다 제니에게 먹였는데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퇴하고 집에 가서 쉬라고 해도 제니는 막무가내로 책상 앞에 버티고 앉아 반장 일을 다 해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 회장과 반장을 도맡아 해 왔다는 제니는 남달리 책임감이 강하다.

주노
‘제니가 저렇게 힘들어 하는 걸 보면 보통 아픈 게 아닌데…….’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가방을 내가 들어주었는데도 제니는 걷기조차 힘든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싶어 반강제로 학교 앞 내과병원으로 끌고 들어갔다.

한데 진찰실에서 나온 제니의 표정이 왠지 이상했다.

약도 처방해 주지 않고 진찰료만 받았다.

주노
“뭐래? 의사가 뭐래?”

제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린 말없이 한강 둔치까지 걸었다.

석양을 받아 강물이 고기비늘처럼 번쩍 거렸다.

강을 향해 앉아 있는 제니의 옆모습을 바라보면서 ‘제니한테 무슨 일이 생기든 내가 끝까지 지켜 주겠다.’ 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참다못해 내가 다시 물었다.

주노
“암이래?”

제니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히죽 웃었다.

제니의 그 하얗게 웃는 얼굴.

제니의 웃는 모습은 천사 같다.

제니
“놀라기 않겠다고 약속할래?”

나는 일부러 담담하게 대답했다.

주노
“그래! 약속할게! 뭐야? 백혈병이래?”
제니
“아니.”

만약 제니가 죽을병에 걸렸다면 나도 망설이지 않고 따라 죽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원히 제니를 볼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제니가 불쑥 말했다.

제니
“나 임신했대!”
주노
‘띠잉!!!!’

몽둥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주노
‘장난이겠지. 괜히 날 떠보려고 하는 소리겠지.’

그러나 제니의 얼굴은 엄숙하기만 하다.

주노
‘정말이라면…… 그게 사실이라면…… 그럼 이제 어떡해야 되는 거지?’

하지만 제니는 그런 걸로 장난칠 애는 아니다.

―주노는 나의 킹카

제니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먹고 싶은 게 많을까?’

졸라 따끈따끈 떡볶이…….

고춧가루 소금으로 데코레이션한 순대.

겔겔겔.

만두, 햄버거, 치킨, 피자.

꼴까닥…….

정말 배 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나 보다.

수업 시간 내내 너무 배가 고파서 책상의 나사못이라도 뽑아 먹고 싶었다.

근데 점심시간에 교실로 피자 한 판이 들어왔다.

피자귀신 민자가 또 낚시질을 한 것이다.

울 학교 앞 피자집은 핸드폰 치면 쉬는 시간에 딱 맞춰 피자 판을 들고 담장 밑에서 기다린다.

재봉실에다 돈 묶어서 던져 주면 배달 아저씨가 피자 판을 묶어서 올려 주는 거다.

물론 피자 한쪽에 체면을 구겨서는 안 되는 거였지만,

제니
“민자야~ 한쪽만…… 응?”

치사대마왕 민자가 웬일로 한 조각 뚝 떼어 줄 때 알아봤어야 했다.

민자
“대신 영어 시험 때 알지?”
제니
“그래, 알았어!”

그저 먹고 싶은 본능 때문에 민자의 커닝 제의를 너무 쉽게 받아들였는데, 하필이면 그 현장을 나의 주노에게 들켜 버리고 말았다.

그리곤 학교 끝날 때까지 주노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말은커녕 나하고 눈도 마주치질 않았다.

제니
‘분명 화가 났음이야~.’

그렇다고 저렇게 말 한마디 안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