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회사 건물 꼭대기에 달린 옥외 전광판에서 공익 광고가 흘러나왔다.

그 맞은편 사거리 골목 노래방 앞에 세워진 승합차에서 수경과, 같은 팀원인 민 형사가 전방 유리창 너머로 광고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두 사람 모두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수경은 아까부터 비실비실 웃으며 전방 대시보드에 올려놓은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시간. 일 분이면 충분합니다.]

회사에서 후배에게 커피를 타 주는 선배. 시내버스에서 어린아이 대신 멈춤 벨을 눌러 주는 아저씨.

종이박스가 담긴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주는 학생의 모습이 연이어 보이다가 마지막 문구로 전광판에 큼지막하게 찍힌 광고 카피였다.

수경이 무좀 양말 사이를 손가락으로 마구 후벼 대며 민 형사를 힐끗거렸다.

차수경
“웃기는 소리 하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일 분이면, 세상을 엿같이 만드는 데는 일 분도 필요 없어.”

승합차 조수석에서 양말까지 벗어 던진 수경이 발바닥을 손으로 벅벅 긁어 댔다.

차수경
“내가 그래서 강력반 들어왔어. 세상 엿같이 만드는 엿 같은 놈들 때려잡으려고.”

팔짱을 낀 채 운전석에 앉은 민 형사가 수경을 보다가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짜증을 터뜨렸다.

민 형사
“아! 그만 좀 하세요, 팀장님! 더럽게 진짜…… 남자 형사들도 안 신는 무좀 양말을…… 그리고 팀장님 벌써 한 트럭은 때려잡으셨거든요!”

수경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발바닥을 민 형사의 얼굴 쪽으로 들이 밀었다가 다시 양말을 신었다.

민 형사가 기가 찬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삐리리리-대시보드 위의 무전기가 신호음을 울렸다.

수경이 잽싸게 무전기를 잡아 들고 수화 버튼을 눌렀다.

무전인
–팀장님, 버팔로 떴습니다.
차수경
“오케이. 우린 바로 본청으로 간다. 니들은 일단 자석처럼 붙어 있어.”

수경의 고갯짓에 민 형사가 시동을 켜고 액셀을 밟았다.

승합차가 골목을 빠져나가 대로를 질주해 나갔다.

수경의 얼굴에 아까의 장난기와는 다른 얼음장 같은 냉기가 흘렀다.

경찰청 대회의실로 서울시 산하 각 서의 강력계 형사들이 몰려들었다.

복도 일각에서 형사부장 강창선이 화난 얼굴로 형사과장 조규원을 째려보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조규원이 형사부장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열중쉬어 자세로 조규원 옆에 선 수경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차수경
“다시 말씀드리지만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수경의 말에 불도그가 별명인 강창선이 으르렁거리듯 수경을 노려보았다.

강창선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버팔로 있는 델 못 가르쳐 주겠다니. 이게 무슨 헛소리야!”

수경이 변함없이 차분한 태도로 늙은 불도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차수경
“체포조를 저희 강남서 강력 4팀으로 해 주십시오.”
조규원
“차 경위 왜 이래? 버팔로는 본청에서 주관하는 놈이야! 동남아하고 연계된 마약조직 보스라고!”

당황한 형사과장 조규원이 수경의 말을 가로막았다.

수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자기 앞의 상사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차수경
“저희 팀도 일 년 가까이 쫓은 놈입니다. 입국한 걸 알아낸 것도, 찾아낸 것도 우리 팀이고요.”
강창선
“그래서 지금 강남서 강력 4팀이 그 공을 다 먹겠다는 거야?”

기가 찬 듯한 얼굴로 강창선이 수경에게 다시 눈을 부라렸다.

수경이 여전히 미동 없는 눈빛으로 늙은 불도그의 눈빛을 되받았다.

차수경
“부장님. 그 공 꼭 저희 팀이 먹어야 합니다.”
조규원
“차 경위! 이거 전 모르는 일입니다. 부장님…… 전 아닙니다. 차수경, 빨리 아니라고 말씀드려!”
차수경
“아니요. 반드시 그럴 이유가 있고, 꼭 그래야 합니다.”

강창선이 끄응, 짧은 신음 소리를 내며 대회의실로 바쁘게 들어서는 형사들에게 잠시 시선을 던졌다.

차수경
“부장님, 절차에 문제가 있는 거 저도 압니다. 그래도 맡겨 주십시오. 이거 반드시 우리가 해야 합니다. 죽어도요.”
조규원
“차수경! 너 진짜!”

조규원이 수경에게 윽박을 지르려는데 불도그가 갑자기 자리를 떴다.

대회의실 쪽으로 향하는 불도그의 발걸음이었다.

일단은 얘기나 들어 보자는 형사부장의 선택인 거라는 걸 남은 두 사람도 의식할 수 있었다.

수경을 짜증 가득한 얼굴로 노려보던 조규원도 강창선이 사라진 쪽으로 바삐 걸음을 뗐다.

차수경
“우리 팀 거야. 넘길 수 없어. 장 형사님을 위해서라도…….”

수경이 중얼거리며 복도를 걸어 대회의실 문을 열었다.

이미 준비된 회의실 중앙 스크린 모니터에는 불법 카지노 바의 단면이 보였다.

손님 대피로와 건물 곳곳의 차단문 등이 표시된 자세한 투시도였다.

서울시 각 서에서 모인 서른 명 남짓한 강력계 형사들이 실내를 채웠다.

상석에 앉은 강창선과 조규원도 단상에 붙어 서는 수경을 주시했다.

차수경
“현재 버팔로가 있는 불법 카지노 바 구조도입니다.”

수경이 단상 위에 올려놓은 레이저 포인트를 집어 약도 쪽으로 빔을 쏘았다.

모든 형사들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했다.

차수경
“저희가 그동안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카지노 바에는 정문 말고도 일차 차단문, 그리고 카지노가 있는 지하를 막기 위한 이차 차단문은 물론이고, 도주할 손님 대피로까지 마련해 놨습니다.”

수경이 레이저 포인터의 버튼을 누르자 스크린 모니터 안에서 차단문과 대피로까지의 경로가 붉은색 점선으로 표시됐다.

조규원
“차수경, 대단하네. 언제 이걸 다 파악했어.”

조규원이 옆의 강창선을 힐끗거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여전히 깊게 팬 주름살을 늘어뜨리며 수경의 브리핑에만 몰두한 형사부장이었다.

조규원이 괜히 한 차례 헛기침을 했다.

수경의 작전 지시가 다시 이어졌다.

차수경
“광수대 1팀은 정문 쪽을, 2팀은 정문 외각, 3팀은 대피로 외각을 맡아 주십시오. 저희 강남서팀은 정문과 대피로로 치고 들어가 카지노 바를 완전 포위한 뒤.”

수경이 잠시 스탠드 마이크에 댄 입술을 떼고 형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경과 형사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차수경
“버팔로를 딸 겁니다.”

형사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합을 넣듯 짧은 박수 소리도 어디선가 들려왔다.

불도그 강창선의 표정도 그제야 누그러져 옆의 형사과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강창선
“너도 같이 갔다 와.”
조규원
“네? 넷! 알겠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조규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장에게 경례를 올려 부쳤다.

형사들이 우르르 대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수경을 비롯한 강력 4팀 역시 황급히 대회의실을 나섰다.

정문 쪽 중앙 계단을 밟아 내려가는 수경에게 어느새 민 형사가 바짝 붙어 섰다.

차수경
“준비 다 됐지?”
민 형사
“네, 팀장님. 분부하신 대로 다했습죠.”
차수경
“장 형사님은?”

정문을 빠져나온 형사들이 청사 마당에 즐비하게 주차된 승합차와 순찰차들에 각기 올라탔다.

함께 투입된 경찰 기동대의 버스들이 시동을 걸고 툭툭 라이트를 터뜨렸다.

민 형사가 질문의 대답 대신 한쪽에 주차된 갤로퍼 승용차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민 형사
“또 술이지요 뭐. 이번에도 승진 탈락하신 뒤로 연일이에요.”

구형 갤로퍼 조수석에서 술에 취한 듯 뻗은 장용하를 바라보던 수경이 눈살을 찌푸렸다.

질책이라기보다는 안타까움이 담긴 눈빛이었다.

민 형사
“깨울까요?”
차수경
“됐어.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이번 건, 우리 팀이 반드시 버팔로 체포해야 되는지 알지?”

어느새 수경을 가운데 두고 둘러 모인 강력 4팀 형사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수경
“이거 준비하느라 다들 고생했다. 오늘 끝을 보는 거야. 이번이 장 형사님 경위계급장 달 수 있는 마지막 특진 기회야. 버팔로 잡고 오늘 꼭 회식하는 거야. 알겠지!”
형사들
“예!”

이구동성으로 강력계 여 팀장의 말에 동조한 형사들이 우르르 승합차로 올라탔다.

장용하가 잠든 갤로퍼 쪽을 잠시 응시하던 수경도 승합차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차수경
“문 따고 있죠?”
조규원
–응, 차 팀장 작전대로.
차수경
“네, 각 대피로 팀들도 문 열리는 대로 바로 진입하세요.”
형사들
–네!

조규원을 비롯한 다른 작전 팀들과 무전을 주고받은 수경이었다.

무전기를 사파리 안쪽에 넣은 수경이 클럽 정문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차수경
“가자, 버팔로 이 새끼 따러.”

스무 명 남짓한 선발대 형사들과 기동대가 수경을 따라 우르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중앙 홀 무대 위의 댄서들이 야한 차림으로 춤을 추다가 들이닥친 형사들을 보며 동작을 멈췄다.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들 몇이 형사들을 저지하려다가 일격을 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클럽 직원 중 누군가가 비상벨을 누른 모양이었다.

그 소리에 홀에서 춤을 추고 맥주를 마시던 손님들까지 우왕좌왕 혼란에 빠졌다.

구우웅-.

소리를 내며 입구 쪽에서 어느새 차단문이 내려가는 게 보였다.

수경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인상을 찡그리다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민 형사
“팀장님!”

수경의 단독 행동에 놀란 민 형사가 덩달아 헐레벌떡 직속상관의 뒤를 쫓았다.

어느새 수경이 복도 끝의 룸 앞에 서서 허리에 찬 삼팔구경 권총을 뽑아 들었다.

차수경
“모두 자리에서 꼼짝 마!”

쾅!

수경이 클럽 룸의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대여섯 명의 손님들이 권총을 든 수경을 보고 화들짝 놀라 손을 들었다.

테이블 위의 도박기구가 백팔십도 뒤집히면서 칩들을 모서리의 구멍 안으로 쓸어내리는 중이었다.

도박판은 금세 보통 테이블로 바뀌었다.

하지만 수경이 찾는 건 불법 도박판이 아니었다.

차수경
“민 형사, 아직 버팔로 소재 파악 안 됐어?”
민 형사
“네. 지금 찾고 있습니다.”
차수경
“대체 뭣들 하는 거야!”

수경이 인상을 찡그리며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민 형사
“아오 씨-.”

민 형사가 구시렁거리며 다시 수경의 뒤를 따라 달렸다.

1 은경짱이야 (1화)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