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너른 벌판에 제법 크게 한 동 세워진 비닐하우스는 주변은 물론 그 비슷한 구조물조차 없는 황량한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더욱 커 보였다. 하지만 그 모양은 조악하기 그지없어, 꼭대기에 세워 놓은 십자가가 없었다면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주변에 펼쳐진 농지와 벌판은 꽤 넓어서 언뜻 보면 모두 교회 앞마당처럼 보였다. 그곳에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서 있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한쪽 구석에 묶여 있는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머리를 쓰다듬었다. 집도 없이 땅에 대충 박은 말뚝 하나에 덩그러니 묶여 있는 개는 뭐가 좋은지 연신 꼬리를 살랑거리며 그의 손길을 반겼다.

그때 누군가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성 목사님! 성철우 목사님!”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

성 목사를 부르며 비닐하우스 교회 안에서 급한 걸음으로 나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40대 중반에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사내는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손을 성 목사에게 들어 보이며 다가왔다. 이곳에서 장로를 맡고 있는 최경석이었다.

“성 목사님!”

최 장로는 습관처럼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는 밝은 표정으로 성 목사에게 다가와 살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이구, 아니 지금 이렇게 계시면 어떻게 해요. 지금 다들 목사님 말씀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요.”

성 목사는 한 손으로 개를 쓰다듬으며 최 장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최 장로는 자신보다 어린 성 목사의 태도가 내심 불쾌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능구렁이답게 속내를 감추고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거 새 신자들을 만난다고 들뜨셨나 보네요?”

성 목사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 채 여전히 꼬리를 흔드는 개만 쓰다듬었다. 개는 앞발을 굴려 성 목사에게 매달리려 했지만 묶인 줄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최 장로는 개를 힐끔 보며 말했다.

“야, 이놈 이거, 강 사장님이 실한 놈으로 보내셨네. 지웅아, 빨리 이놈 준비 좀 해줘라.”

최 장로가 손짓을 하자 저쪽에서 사내 서넛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그중 한 명은 해머를 바닥에 질질 끌며 야릇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사내들이 내뿜는 폭력적인 기운을 느꼈는지 개가 가랑이 사이로 꼬리를 감추며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성 목사는 묵묵히 개를 바라보았다.

“자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신도님들 기다리시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최 장로는 성 목사의 팔을 잡으며 비닐하우스 쪽으로 잡아끌었다. 성 목사는 개가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조용히 최 장로를 따라나섰다.

그 사이에 사내들이 개를 둘러쌌다. 성 목사는 걸음을 옮기며 잠깐 뒤돌아보았지만, 건장한 사내들에 가려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낑낑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사내들은 뭐가 즐거운지 눈을 희번덕거리며 야비한 웃음을 흘렸다.

최 장로가 성 목사의 주의를 끌려는 듯 낮게 헛기침을 했다. 그때서야 성 목사는 최 장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목사님, 어떻습니까? 뭐, 좀 보기엔 누추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에 준비한 거에 비하면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아, 최 장로님이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성 목사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여기 오면서 여기 마을 사람 몇이랑 얘기를 해봤는데요. 댐 들어서서 마을이 물에 잠긴다고, 돈 받고 고향 넘긴 것 아니냐고 괴로워하는 우리 형제들이 많이 있어요. 여기 우리 형제들에게 다 같이 모여 살 수 있도록 큰 기도원도 세우고 교회도 새로 크게 짓는다고 했더니 다들 벌써부터 기대들이 커요.”

최 장로는 혀로 입술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

“목사님도 새로 지어질 교회에서 담임 목사 한번 되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저야 그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일 뿐입니다.”

성 목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겸허하게 말했다.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여기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그 하나님의 밝은 빛을 보여 주는 거죠.”

최 장로는 갑자기 나란히 걷던 성 목사를 붙잡아 세우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목사님! 여기에선 목사님은 빛입니다. 이 마을을 구원하러 온 메시아라고요! 아시겠습니까? 예?”

성 목사는 여전히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두 사람은 바깥세상과 교회를 구분 짓는 유일한 커튼을 젖히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다.

“자, 어떻습니까?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죠.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정말이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널찍했고 단상부터 스피커 등의 음향기기까지 최 장로의 말대로 있을 건 다 있었다.

성 목사는 앞에 있는 단상에 올라 예배당을 둘러보았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모여 앉아 저마다의 목소리로 절을 하고 박수를 치며 통성 기도를 하고 있었다.

“…….”

성 목사는 그런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미친 것처럼 울고 소리 지르며 기도했지만, 성 목사의 얼굴엔 아무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두 개의 전혀 다른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단상을 기준으로 양쪽의 모습은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대비되어 보였다.

*

안개가 잔뜩 낀 새벽 논두렁 길. 희뿌연 안개를 뚫고 누군가 걷고 있었다.

느긋하게 어슬렁거리며 걷는 팔자걸음, 꼿꼿이 세운 목, 깔보는 듯 내리깐 눈을 한 사내가 안개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카아악, 퉤!”

어림잡아서 사오십 대로 보이는 사내는 아주 익숙한 동작으로 침을 뱉고는 거칠게 난 수염을 손으로 쓸었다. 늘 다니던 길이지만 오랜만에 돌아왔기에 익숙함과 어색함이 걸음마다 번갈아 느껴졌다.

어깨에 멘 큰 가방이 흘러내리자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가반을 추켜올리고는 앞을 바라보며 우뚝 멈춰 섰다. 그의 가방엔 매직펜으로 대충 휘갈겨 쓴 「김민철」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민철은 쳐진 입꼬리와 쭉 찢어져 올라간 눈매 때문에, 눈빛만 마주쳐도 사나운 꼴을 당할 것 같은 인상이었다.

멀리 안개 사이로 마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대도시 큰 빌딩만 보다 고향으로 돌아오니 모든 것이 작고 초라해 보였다. 민철은 불현듯 마을로 돌아오기 직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에게는 결코 달가운 기억이 아니었기에 생각만으로도 미간이 찌푸려졌다.

‘염병할…….’

편의점 앞 노천 테이블에 앉은 민철이 종이컵에 소주를 따르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십장이 소주병을 빼앗아 들고 대신 따라 주었다.

민철은 몹시 못마땅한 얼굴로 십장을 힐끗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잔을 채운 십장이 미안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민철이, 미안하게 됐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어.”

민철은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고 빵을 한 움큼 집어 입에 물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야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나. 응?”

민철은 도끼눈을 뜨고 십장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형님도 그러는 거 아니요. 왜 나만 그만 나오라는 거요?”

“아니, 위에서 얘기가 나왔다니까 그러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괄시를 하는 거요? 내가 뭐 형님 섭하게 해드린 거 있소?”

“어허, 거 참, 위에서 얘기가 나왔다니까.”

“위에 어떤 새끼인지 이름이나 한번 대보쇼. 그놈 대갈통을 확 쪼개놔 버릴 라니까.”

십장은 입으로 가져가던 종이컵을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에이,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네가 정말 아무 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여?”

“형님이 한번 말해보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거요?”

“현장 나온 본사 사람을 메쳤다며!”

민철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뭐? 그럼 겨우 그 일로 이런 것이요?”

“겨우 그 일? 사람을 패대기쳐서 입원시켜 놓고 겨우 그 일? 민철이 자네 문제가 뭔지 아는가? 바로 이런 것이여, 이런 거! 도대체가 말로 하는 법이 없고 주먹질부터 해대니 누가 자네랑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말여!”

“그 새끼가 본사에서 나왔다고 머슴 부리듯이 부리잖소! 내가 뭐 그 새끼 잡일 해주려고 여기서 일하는 거요?”

십장은 답답한 듯이 종이컵을 단숨에 비우고 곧바로 소주를 채웠다.

“이 답답한 친구야! 그것도 일이라고 일! 우리 일당 누가 주는지 모르는가? 누군 뭐 좋아서 본사 놈들 비위맞추고 다니는 줄 알어? 자네는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한다는 거 아녀!”

십장의 말을 들은 민철은 고개를 홱 돌렸다.

“난 잘못 없소.”

십장은 테이블을 탁탁 치며 말했다.

“이건 잘못이 있고 없고 문제가 아니여! 죽느냐 사느냐 그 문제인 거여! 남의 돈 받는 게 어디 그렇게 쉬운 줄 아는가?”

“누가 뭐라 해도 난 잘못 없소! 잘못 없으니까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그게 그렇게 해서 풀릴 문제였으면 애초에 이런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구만!”

민철은 잔뜩 화난 눈으로 십장을 바라보았다. 격앙된 입술이 바르르 떨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려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