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

순옥은 곱게 화장한 얼굴을 한껏 일그러트리고 분을 삭이려는 듯 입을 앙다문 채 걸음을 옮겼다.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듯 거칠게 울렸다. 그런 순옥의 뒤로 그녀의 아들이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아들은 어렸을 때만 해도 말을 참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순옥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하던, 미운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변했다. 변화는 순옥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서서히 찾아왔다.

아이가 시선을 마주치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이가 엄마를 다정하게 부르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이가 자신과의 포옹은커녕 가벼운 신체 접촉마저 피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순옥은 알 수 없었다. 그저 확실한 것은, 지금의 아들은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지도, 그리고 포옹을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들은 학교에서 매일같이 사고를 쳤다. 이제 순옥은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한숨부터 쉬어야했다. 처음에는 그저 사춘기의 흔한 방황쯤이려니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고 오늘도 순옥은 아들을 찾으러 가야만 했다. 고개를 숙이는 것도 사과를 하는 것도 이제 순옥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순옥은 지쳤다. 자신의 일상이 된 이 현실을 참을 수 없었다. 순옥은 횡단보로를 앞에 두고 결국 아들을 돌아보았다. 흐트러진 교복과 부어오른 입가, 멍이 든 뺨에 가슴이 아프면서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들은 오늘 또 싸웠다. 그것도 학교 안에서가 아니라 학교 밖에서, 어른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였다. 순옥은 지금 학교가 아닌 파출소에서 아들을 찾아온 길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너 요즘 왜 그래?! 적당히 그러다 말려니 했는데 이젠 학교에서도 모자라 밖에서도 사람을 패면 뭘 어쩌자는 거야?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응? 말 좀 해봐!”

순옥의 날카로운 목소리에도 아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치 순옥의 말이 귀찮다는 듯한 태도였다.

“김 준! 너 엄마가 지금 묻고 있잖아! 대답해!”

순옥은 결국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횡단보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순옥을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그렇지만 순옥에겐 그런 시선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 순옥은 꼼짝도 하지 않고 아들을 노려보았다. 그제야 아들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아무 문제없어.”

“아무 문제없는데 사람을 때리니? 뭔가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순옥의 물음에 아들은 마치 비웃듯 말했다.

“더러운 인간들이니까 때렸어. 더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아들의 말에 순옥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뭐가 더럽다는 거야? 그 사람들이 욕이라도 했어?! 아니, 욕을 했다손 쳐도…….”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뭐니, 도대체 뭐가 문제야, 준아. 너 자꾸 엄마 속상하게 그럴래? 자꾸 이러면…….”

“이러면 뭐?”

도전적인 아들의 말에 순옥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지구대에 찾아갔을 때부터 아들은 잘못했다는 말조차 없이 쭉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겨우 말문이 터져서 하는 말이 이렇다는 데에 순옥은 화가 났다.

“너……!”

마음 같아선 당장 미친 듯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결국 순옥은 다시 입을 꾹 다문 채 아들을 외면했다. 마침 보행 신호가 들어왔고,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걷기 시작했다. 순옥도 거기에 섞여 걸음을 옮겼다. 아들이 그런 순옥의 뒤를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

태연한 아들의 말에 순옥은 횡단보도의 한 가운데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뒤를 휙 돌아보았다.

“제발, 엄마 속 좀 썩이지 마. 엄마한테 너밖에 없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네가 자꾸 이러면 엄마는…….”

“왜. 내가 아버지처럼 자살할까봐 겁나?”

말을 이어가던 순옥의 입술이 기묘하게 경직되었다. 그런 순옥의 얼굴을 본 아들은 기묘한 미소를 짓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라면 걱정 마. 난 아버지처럼 자살하진 않을 테니까.”

“너, 지금 무슨……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일부러 잊고 살았던 남편의 이야기에 순옥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순옥이 더듬거리며 묻자 아들은 순옥의 표정을 천천히 살폈다. 마치 순옥이 거짓말을 하나 진실을 말하나 확인해보겠다는 듯한 날카로운 표정이었다. 한동안 순옥의 얼굴을 빤히 보던 아들이 말했다.

“정말 몰랐어?”

“뭘……?”

“나도, 아버지랑 같아.”

아들의 말에 순옥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마치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휘청한 순옥을 향해 아들이 말을 이었다.

“나도 보. 인. 다. 고.”

아들의 말에 순옥의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보인다고? 뭐가 보인다는 거야? 아버지와 같이 보인다고……?

멍하니 아들을 보던 순옥은 자신도 모르게 아들의 시선을 피했다.

“무슨,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엄마 일 다녀와서 그때 얘기하자. 그러니까 집에…….”

“일? 무슨 일? 웃음팔고 술파는 일?”

비아냥거리는 듯 이죽거리는 아들의 말에 멍해졌던 순옥이 아들을 쏘아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가 그런 일 하는 거 아니라고 했지!”

순옥의 말에 아들은 피식 웃었다. 그 뒤틀린 미소에 순옥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언제부터인가 아들의 미소는 늘 이런 식이었다.

“그래? 그럼 잡아 봐.”

아들의 손이 순옥의 앞에 내밀어졌다. 다 큰 남자의 손과는 다른 아직 부드러움이 남은 소년다운 손바닥을 본 순옥은 저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준아…….”

“잡아.”

“…….”

“잡으라고!”

위협적인 아들의 목소리에 순옥은 다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미 그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사라진 뒤였다. 도로 위에는 순옥과 아들, 단 둘만이 남아 있었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순옥은 정신이 나가버린 상태였다. 보행신호가 이미 끝났다는 것도, 자신과 아들을 향해 달려드는 클랙슨 소리도 듣지 못했다. 아들은 다시 추궁하듯 말했다.

“왜 못 잡아? 내가 무서워?”

“아니야!”

“그럼 왜?”

순옥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상황에 판단력을 잃은 그녀는 겨우 입을 뗐다.

“그냥, 넌, 너는 우리랑 다르잖니…….”

멍한 상태로 말을 내뱉은 순옥은 말을 하자마자 스스로도 아차하며 입을 가렸다. 그러나 아들은 이미 순옥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순옥을 바라보고 있었다. 흔들리는 아들의 눈동자를 본 순옥은 다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순간.

“엄마!”

자신을 향해 비명을 지르는 아들의 목소리를 따라 순옥은 아들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트럭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빠아아아앙! 마치 공룡의 울부짖는 소리처럼 위협적인 클랙슨 소리가 트럭과 함께 순옥을 덮쳤다. 순옥은 다급하게 아들을 돌아보았고 아들은 순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 아들의 손. 손……. 모든 것을 보는 그 손!

순간 순옥은 저도 모르게 아들의 손을 피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엄청난 충격을 받은 순옥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콰득.

둔탁한 소리가 뒤늦게 귓가에 울렸다. 잠시 허공으로 떠올랐던 순옥의 몸이 이내 바닥으로 튕겨졌다. 통증이 뒤늦게 온몸을 엄습해왔다. 트럭에 튕겨져 기묘하게 뒤틀린 채 바닥에 처박힌 순옥의 눈에 바닥을 넓게 퍼져가는 자신의 피가 보였다.

그리고 그 피를 밟고 선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창백한 얼굴로 손을 내민 채 굳어버린 아들의 모습에 순옥은 필사적으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나 순옥은 가느다란 신음소리만 내뱉을 수 있을 뿐이었다. 설령,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해도 순옥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순옥이 입술만 달싹거리는 사이 순옥의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졌다. 죄책감과 안도, 고통과 슬픔 등이 뒤섞여 머릿속을 휘몰아쳤지만 이내 새카만 어둠이 순옥을 지배했다.

그렇게 고통조차 멀어진 최후의 순간.

“아아악!”

아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건 순옥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들은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