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황량한 도시의 대형 쇼핑몰의 벽면 패널이 켜지더니 ‘대통령 특별담화 발표’라는 커다란 글씨가 나타났다. 이내 화면은 화려한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단상위로 오르는 한 남자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남자는 금빛 봉황과 무궁화가 화려하게 새겨진 벽을 등 뒤로 하고 단상 위에 섰다. 이제 갓 50대에 접어들었을 법한 말쑥한 인상을 지닌 남자는 매우 침통한 얼굴로 심호흡을 하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남자의 목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요란하던 화면속이 고요해졌다. 남자는 그 짧은 말이 무척 고통스럽다는 듯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내 결심한 듯 눈을 뜨고 똑바로 정면을 보며 준비한 발표문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무고한 국민 여러분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은 것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고 비통할 따름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 앞에서 약속드립니다. 분당에서 발생한 신종 조류독감 사태 해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국민 단 한사람이라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고립되어 있는 분당 주민 여러분, 조금만 참고 견뎌주십시오. 대한민국은 결코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발 저를, 대한민국을 믿어주십시오.]

짧은 발표문을 끝맺은 남자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곳곳에서 요란한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요란한 플래시 세례가 터지는 가운데 남자의 고개는 올라올 줄 몰랐다.

이내 남자가 화면에서 사라지자 화면이 꺼지고 다시 쇼핑몰 벽면의 대형 TV에는 회색 모래와 같은 화면이 흘러가고 있었다.

지지직, 지이이이….

대형 패널에서 화이트노이즈가 거슬리게 울렸지만 누구하나 그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거리에 없었다. 대형 쇼핑몰과 대형 패널이 자연스럽게 조화되는 거대한 빌딩숲에는 사람의 흔적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도시는 마치 잘 정돈된 플라스틱 미니어처처럼 생기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도로 곳곳에 문이 열린 채 버려진 차와 사고가 나 뒤집힌 차량, 그리고 불에 타다 만 차가 방치되어 있었고, 무언가 타다 만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그러나 도시에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거리에는 인적이 없었지만 빌딩숲 여기저기에 유리창 뒤에 숨어 거리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공포에 질린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 공포에 질린 채 그저 이 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그들의 눈에 커다란 군용 헬기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투투투투투투투투투…!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방치된 도시 위를 가로지르는 헬기에서 커다란 확성기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홍반이나 열, 기침 등의 증상이 있는 분들은 자진 신고를 해주십시오! 감염자를 격리하지 않으면 감염은 퍼질 뿐입니다! 감염이 있으신 분들은 감염구역에서 치료를 받으셔야합니다! 반복합니다, 홍반이나 열…!

확성기에서 음성은 도시 위를 가로지르며 같은 말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리에 나서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분명 사람들이 건물 안에 있건만 모두 숨바꼭질을 하는 사람처럼 숨을 죽인 채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다.

뿌옇던 구름이 걷히고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환한 햇살이 거리를 비췄지만 햇빛은 텅 빈 거리의 황량함만을 부각시킬 뿐이었다. 인구 47만이 몰려있는 도심 한 가운데라고는 믿을 수 없는 황량한 도시 속을 헬리콥터 날개소리만 가득 채웠다.

감기 최초감염자가 나타난 시간으로부터 49시간이 지난 분당의 모습이었다.

상륙

몸이 자꾸만 가라앉는다. 긴 항해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몽싸이로서는 어떻게 해도 저항할 수 없었다.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워져서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었다. 그대로 드러누워 잠을 청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숙면을 취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도 밀항을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눈을 감고 몽롱한 상태에서 의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버둥거릴 뿐이다.

한순간 둔중한 소음이 몽싸이의 의식을 관통하는 바람에 저절로 눈이 떠졌지만 칠흑 같은 어둠에 둘러싸여 보이는 게 없었다. 그나마 선잠을 자는 동안만이라도 잠시 잊을 수 있었던 두통이 다시금 발톱을 세우며 몽싸이의 머릿속을 후벼대기 시작했다. 목이 따갑고 숨을 쉬기도 버거웠다. 다행히 잠들기 전보다는 열이 내린 듯했다.

머릿속까지 울리는 뱃고동 소리가 들리고, 마치 그것에 자극이라도 받은 듯이 몽싸이는 기침을 해댔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 기침은 좀처럼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피를 토하듯 허리를 접으며 기침을 할 때마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꼬리를 이었다. 요란스레 한바탕 기침을 하고 나면 기진맥진해져서 속절없이 널브러지곤 했다. 몽싸이는 차디찬 컨테이너 바닥에 드러누워 자신이 처한 현실을 곱씹어보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돌이켜보면 베트남을 떠나온 이후로 일이 제대로 풀린 적이 없었다. 고향 친구의 꾐에 빠져 선택한 중국행은 처음부터 무리수였다. 없는 형편에 빚까지 내면서 어렵사리 마련한 종자돈은 취업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몽땅 날려버리고 겨우 몇 푼만 건지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얼마 남지 않은 푼돈조차도 믿었던 고향 친구가 몰래 훔쳐서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결국 그는 불과 며칠 만에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몽싸이는 무시무시한 공안의 눈을 피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했다. 그러다가 연변까지 흘러들어갔고, 천신만고 끝에 얻은 일자리가 양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었다. 매일 닭똥 냄새를 맡아가며 온갖 잡일을 도맡아하지만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품삯이었지만 불법체류자 입장에선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성깔 더러운 조선족 사장 밑에서 몇 년을 버티며 조금씩 돈을 모았다.

그러나 불행의 신은 몽싸이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조류독감이 대륙을 휩쓸었다. 중국 당국은 양성반응을 보인 양계장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양계장에까지 살 처분 대상으로 삼았다. 몽싸이가 일하는 양계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조선족 사장은 자신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양계장을 잃었다. 그것은 몽싸이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몽싸이의 불행이 사장에게도 옮았는지, 살 처분의 대가로 당국에서 지불하는 보상금마저 엉뚱한 놈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수십 년 전에 양계장을 인수하면서 돈만 지불하고 정작 필요한 문서는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이었다.

사장은 보상금이라도 건지겠다며 몽싸이를 데리고 전 주인을 찾아갔다. 적지 않은 보상금을 내놓기가 아까웠는지 전 주인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분위기는 금세 험악해졌고 언쟁 끝에 주먹다짐으로 이어졌다. 사장은 일흔을 넘긴 노인이다. 반면에 전 주인은 덩치도 훨씬 크고 아직 팔팔한 오십대였다. 완력으로 감당할 상대가 아닌 것이다. 몽싸이는 얼마라도 건지려면 사장을 도와야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몸싸움을 벌이던 중에 전 주인이 뭔가에 걸려 넘어지면서 뒷머리를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혼자서 둘을 너끈히 상대하던 거구가 짚단처럼 풀썩 쓰러지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난 두 사람은 생사를 확인 해볼 겨를도 없이 도망쳐 나왔다. 머지않아 시신을 발견되면, 공안들이 그들을 찾아올 것이다. 그건 상상하기 싫을 만큼 끔찍한 일이었다.

불안에 떨던 두 사람이 택한 방법은 한국으로 밀입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고, 결국 둘은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야했다. 그것도 10만 홍콩달러란 거금을. 두 사람은 하루아침에 도망자라는 대등한 관계가 되었고, 한국으로 향하는 화물선에 몸을 실었다. 물론 편안한 객실이 아닌 컨테이너에 숨어서 긴 항해를 버텨야했다.

어디선가 마른기침 소리가 들렸다. 비로소 몽싸이는 상념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 그를 괴롭혔던 악취도 이제는 후각이 마비되었는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구 하나 없는 탓에, 밤이 되면 컨테이너는 무척 어두웠다. 오로지 의지할 수 있는 감각은 청각뿐이었다.

사람들이 내뱉는 숨소리, 신음, 기침소리. 특히, 기침소리가 잦다.

처음엔 밀폐된 공간이라 다들 숨쉬기가 곤란한 거라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기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거의 컨테이너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픈 기침이다. 가래 끓는 소리가 계속 꼬리를 이었다. 몽싸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목이 간질간질하다 싶더니 갑자기 기침이 터져 나왔다. 그때부터 고열에 시달리며,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밤낮으로 기침을 해댔다. 동승했던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이 가련한 노인은 첫날부터 병색이 완연했는데, 기침을 할 때마다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사장은 몽싸이에게 한국에만 가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했다. 물론 그런 감언이설을 믿을 만큼 몽싸이는 어리석진 않았다. 하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장의 제안에 넘어간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동행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요란스럽게 기침을 해대던 사장이 너무 조용했다.

“라오반(老板)…….”

몽싸이는 조용히 사장을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다.

어쩌면 자고 있는지도 몰랐다. 몇 번을 더 불러보고는 귀찮다는 듯 머리를 벽에 기대고 다시 눈을 감았다. 어차피 이 안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잠을 자두는 게 차라리 나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하려는데 갈증이 느껴졌다.

몽싸이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몽싸이는 불안한 마음에 부들부들 떨며 라이터 불빛으로 주변을 비쳤다.

“아…….”

너무 놀란 몽싸이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지금 그의 눈앞엔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