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은 또 다른 자신과 마주한 적 있나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샹들리에가 불안하게 흔들거렸다. 그 옆에 두둥실 떠 있는 풍선 하나. 그리고 우두둑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샹들리에가 떨어지려는 찰나, 하필이면 그 아래로 한 여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마치 슈퍼맨처럼 나타난 남자가 전광석화처럼 여자에게 달려들었고, 샹들리에는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아아악!

허억.

삐삐― 삐삐―.

서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또 꿈이었구나. 귀에 거슬리는 경고음에 다급한 손길로 협탁에 놓인 안경을 집어 들었다. MSP 128. 안경 렌즈 위에 나타난 바이탈 사인을 보니 이미 위험 선을 약간 넘은 상태였다. 서진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불을 홱 걷어내고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펜트하우스의 널찍한 거실과 주방을 쏜살같이 지나 서진이 들어간 곳은 식물원이었다. 유리 돔으로 된 천장까지 식물들이 우거진 가운데, 중앙에 위치한 대리석 분수가 물을 뿜어 대며 무심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단상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시작한 서진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묻어났다.

“시마… 시마… 시마… 시마… 아후, 씨바….”

주문인지 욕인지 모를 애매한 발음을 삼키는 서진의 얼굴에 짜증이 밀려왔다. 살짝 눈을 떠보니 바이탈 사인은 아직도 123, 125 언저리를 헤매고 있었다. 아씨! 결국 욕설을 내뱉고야 말았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더 이상 흥분하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서진 자신이 잘 알고 있기에, 그는 다시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하며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물소리와 새소리 사이로 ‘천수경’이 흐르자 서진의 얼굴에 서서히 은은한 보살의 미소가 번졌다. 그제야 비서 영찬이 놀란 얼굴로 걱정스러운 듯 호들갑을 떨며 식물원으로 바삐 들어섰다. 그러나 서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명상에만 집중했다. ‘천수경’에 이어지는 명상 말씀을 이미 다 외운 듯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중저음의 명상 말씀을 건조하게 따라했다.

“나는 시기심을 내려놓습니다…. 나는 분노를 내려놓습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나는 아무 일 없 습니다…. 자, 이제 나는 나를 가만히 안아 줍니다. 안쓰러운 나를, 부족한 나를. 이제 나는 평안합니다.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후― 후― 어떻습니까….”

서진이 눈을 감은 채 영찬에게 물었다. 홀터에 연결된 작은 모니터를 보던 영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혈압 80에 110, 맥박 76, 호흡 15, 체온 36.5도. 정상입니다.”

영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진은 가슴에 부착했던 홀터 장치를 사정없이 떼어내며 참아왔던 욕설을 기어이 내뱉었다.

“어후― 씨! 새벽부터 뭔 지랄!”

그랬다. 1820일, 벌써 5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아무 일 없었고 주치의인 강 박사도 이 정도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바이탈사인이 128까지 간 건 5년 만에 처음이었다. 물론 150만 안 넘으면 위험하진 않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였다. 하지만 서진은 요즘 들어 자꾸 이상한 꿈을 꾸는 것이 왠지 불안했다.

“강 박사님이 강연 끝나는 대로 전화 주신답니다. 안 그래도 긴히 할 얘기가 있다구요. 그리고 그 꿈 말씀드렸는데….”

영찬의 말에 서진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이론에 따라 분석한 결과, 엄청 길몽이라는데요?”

하! 그럼 그렇지. 서진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영찬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뭣도 모르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해몽 책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역시나 영찬은 그러고도 남았다.

“아, 하여간, 꿈은 반대라잖아요. 원래 누가 죽고 다치고 하는 꿈이… 일단 사업 번창하고, 돈 잘 벌고….”

“내가 아니었어.”

영찬의 장난기 어린 변명 같은 수다를 서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끊어 버렸다.

“꿈에서 내가, 내가 아니었다고. 내가, 나였으면, 누굴 구하겠다고 몸 던지고 그럴 리가 있어?”

영찬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진이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순간 뇌리에 뭔가 스친 듯 영찬의 눈이 동그래졌다.

“헉! 그럼… 혹시, 설마… 로비….”

“하지 마! 로빈, 그 자식 얘기, 꺼내지도 마!”

서진의 서슬 퍼런 눈빛에 영찬이 흡― 입을 닫아 버렸다. ‘로빈’은 서진 앞에서, 아니, 그 누구 앞에서도 꺼내서는 안 될 금기어였다.

1

와아아아. 꺄아아아.

아이들의 데시벨 높은 비명과 환호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소리는 어지럽게 돌아가는 회전목마에, 수시로 오가는 모노레일에,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바이킹에, 720도를 회전하는 청룡열차에는 물론, 저만치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꼬맹이들의 풍선 사이사이에도 뒤섞여 있었다.

못 마땅한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린 서진의 얼굴에 꼬맹이의 풍선 하나가 닿자 서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신경질적인 손길로 그것을 쳐냈다.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차가운 표정으로 풍선을 향해 눈을 흘겼다.

“불길해. 오늘 풍선 금지! 판매도 금지! 댄스도 금지! 저것도 금지!”

놀이공원의 필수품인 풍선 금지도 어이가 없는데, 춤추는 바람풍선 금지에 풍선을 닮은 거대한 열기구까지 금지라니 영찬은 기가 막혔다.

일일 매출을 이유로 들며 반박을 했는데도 결국 돌아온 말은 ‘오늘은 매출 금지’였다. 원더 그룹의 외아들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 원더랜드의 상무인 서진의 지시에는 아무도 항변할 수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슈퍼 갑으로 태어났기에 아쉬울 것도, 모자랄 것도 없는 그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고 안하무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두려운 것이 있었다.

분명 그 꿈 때문이었다. 왠지 불길한 복선 같아서 오늘따라 서진은 풍선이 눈엣가시처럼 불편했다. 그런데 그 풍선들이 눈앞에 순식간에 수십 개가 우르르 몰려와 있다니. 풍선들 사이로 빠끔 얼굴 하나가 보였다.

다름 아닌 승연이었다.

‘원더 호텔 류승연 상무와 태양의 집 천사들의 행복한 하루.’

커다란 플랜카드 앞에서 수십 명의 아이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서 가식적인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 포즈를 잡고 있는 승연을 향해 서진은 코웃음을 날렸다. 풍선도 불길한데 사이도 안 좋은 사촌까지 마주친 게 영 언짢아 그는 카메라 앞을 막아서며 대뜸 시비를 걸었다.

“행사 신고는 했습니까? 매표는?”

삐딱한 서진의 말투에 승연이 냉큼 달려와 섰다.

“왜 이래? 애들 보는데 창피하게. 당연히 했지.”

주변 눈치를 살피며 애써 웃음을 머금은 채 승연은 서진을 달래 보려 했다.

“나가! 니 자선행사를 왜 내 집에서 해? 호텔 놔두구.”

“그래, 자선행사야, 자선행사. 내가 이걸로 돈을 벌겠대? 생색을 내겠대? 좋은 일에 괜한 오해하지 마.”

“너나 오해하지 마. 니 자선행사 인증, 꼴 보기 싫어서가 아냐. 불우이웃 보기 맘 아파서. 나 심장 약한 거 알잖아?”

서진의 비아냥거림에 승연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런 식으로 서진과 부딪쳐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기에 이쯤에서 물러서야만 했다. 그건 수십 년 동안 익숙해진 승연의 생존을 위한 처세이기도 했다.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한 후 외삼촌인 구 회장의 집에서 알게 모르게 눈칫밥을 먹으며 자라 온 덕분에, 다른 건 몰라도 자기 밥그릇 챙기는 데는 일가견이 생겼다. 그래서 집착하게 된 것이 인증이었다. 백 점을 맞아도, 봉사활동을 가도, 전교 회장이 되어도, 선생님한테 상장을 받을 때도 무조건 인증샷을 찍었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으로 구 회장의 신임을 얻어 원더 그룹의 양대 산맥인 원더 호텔 상무까지 되었지만 그는 아직 배가 고팠다. 언젠가 서진을 제치고 원더 그룹의 후계자가 되는 그날까지 그는 이런 인증 놀이를 계속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니 이런저런 이유로 서진과 사이가 틀어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도 결국 서진에게 한발 물러서야 했다. 분한 듯 어금니를 꽉 깨물며 돌아서는 승연의 표정이 아이들 앞에서 다시 180도 바뀌었다. 그는 세상 그 누구보다 온화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모노레일을 향해 저만치 사라졌다. 그런 모습에 서진의 유치한 경쟁심이 발동했다.

“쟤들, 캐릭터 인형이랑 베개, 담요 챙겨 보내고, 소외 계층 어린이 1만 명 초청 행사 다시 진행해.”

어이없어하는 영찬을 서진이 또다시 흘겼다. 그 순간 두둥실 풍선 하나가 서진의 눈앞을 지나더니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갔다. 문득 불길한 예감에 서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크르르릉.

꺄아아악―.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 저 멀리 고릴라 한 마리가 사람들을 뒤쫓으며 서진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서진 앞으로 마구 달려들었다. 삐삐― 삐삐―. 서진의 바이탈 사인도 혼비백산한 모양인지 어느새 130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도망치던 한 여자가 서진의 팔을 붙잡고 몸을 숨겼다. 그러나 서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여자를 매몰차게 뿌리쳤다. 그러나 그럴수록 여자의 손은 서진의 팔을 더욱 놓아주지 않았다. 달려오는 고릴라가 점점 가까워지자 서진은 다급한 나머지 여자의 손을 깨물어 버리고는 있는 힘껏 그녀를 밀쳐냈다. 그러고는 영찬과 수행원들의 어깨와 머리를 밟고 안내부스 위로 몸을 피했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서진의 숨이 가빠질수록 바이탈 사인도 요란한 경고음을 내질렀다. 영찬이 서둘러 서진의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아 넣었다. 청아한 목탁 소리와 반야심경이 흐르자 서진은 눈을 질끈 감은 채 호흡을 가다듬으며 안정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뒤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지 지금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후―.

서진은 깊은 심호흡과 함께 안정을 찾고 슬며시 눈을 떴다. 이미 눈앞에는 어이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까 밀쳐낸 여자가 쓰러져 있고 그 앞에 고릴라가 언제라도 덮칠 기세로 크르렁거리고 있었다. 보안팀과 조련 팀이 마취 총까지 준비해 조심스레 접근해 보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뿔싸. 게다가 조련 팀이 쏜 마취 주사가 그대로 튕겨나가 버렸다. 크아아앙. 화가 난 고릴라가 사납게 포효하며 조련 팀을 향해 달려들었고, 모두들 비명과 함께 사색이 되어 버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빙빙~!”

어디선가 들려오는 맑은 목소리에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저만치 원더랜드 입구에서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여자의 모습에 모두가 의아해하기도 전에, 고릴라가 먼저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크아아아앙! 고릴라는 이전보다 더 크게 포효하며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 서진의 바이탈 사인이 다시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134, 136, 144, 148.

아아악, 안 돼! 밀려드는 엄청난 두통에 그는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했다.

바로 그때였다. 비명 소리가 들려야 할 타이밍인데,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사납게 포효하던 고릴라가 여자 앞에서는 마치 애완견처럼 애교를 부리며 그녀의 얼굴을 핥아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서진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어이가 없었다. 삐― 삐―. 바이탈 사인이 어느새 130을 지나 120까지 내려갔다.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진 서진의 눈에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뭐지, 왜 이러는 거지?

2

“강 박사님, 코드 블루입니다. 빨리 연락 주세요.”

다급하게 전화를 한 서진이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신경질적으로 홀터 장치를 떼어내 영찬에게 집어던지며 고장인지 확인하라고 하자, 영찬의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해졌다. 정말로 코드 블루라면 심각한 상황이었다. 바이탈 사인 150을 넘길 뻔했다는 서진의 말에 영찬은 바짝 긴장이 되었다. 넘길 뻔한 건지, 넘긴 건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