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11월 대학 수능을 앞 둔 어느 날.

점심식사 후 3학년 화장실에 모인 여고생들이 양치질을 하기 위해 거울 앞 세면대에 모여 있었다.

“들었어? 산하고등학교 바람둥이 얼짱 괴소문....”

“공주인줄 알고 키스 했는데 공주는커녕 세상에 둘도 없을 뚱녀가 대신 앞에 있더라는..?”

입에 하얀 거품을 문 친구의 말에 입을 헹구던 다른 친구가 동공까지 확장된 표정으로 얼른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들었어. 들었어. 그런데 그게 가능하니? 키스하다 입을 떼기도 전에 어떻게 여자가 바뀔 수 있냐고?”

“그 바람둥이 말을 믿는 거냐?”

또 다른 친구는 믿지 않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일요일 밤부터 SNS에 올라온 옆 학교 남학생의 페이스 북 글 때문에 월요일 오전 내내 학교 안이 시끌벅적 했다.

“그런데 그 여자애가 해령이란 소문이 ...”

“그러게 앙큼하게도 학교에선 이사장 손녀라고 새침때기마냥 친구하나 없으면서.”

“정말이다. 조신한척 얌전한 척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는데, 남자를 그렇게나 밝히다니..”

여학생들의 누군가를 향한 수다가 디스로 이어지며 흥이 올랐다.

“한 달에 일주일씩이나 빠지며 남자 만나러 다녔나 봐.”

“허얼. 어이없어.”

“진짜 재수 없어!”

“그런데 그 얼짱 나재빈말야. 내 친구의 친구 남친 이다!”

양치질을 끝낸 여학생이 주변을 살피며 소리를 살짝 낮춰 사람을 모으더니 비밀인 듯 속삭이지만 실제로는 화장실 안에 목소리가 퍼지긴 매 한가지였다.

“해령이 걔가 도도하고 부잣집 딸이고 좀 예쁘니까 그 남자애가 일부러 접근 한 거래.”

“아냐. 내가 알기론 해령이가 자기랑 다툰 애 남친 인 거 알고 일부러 접근한 거래.”

“에.. 그럼 해령이 걔 완전 인간쓰레기잖아. 윽 더러워!”

갑자기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해령이 갑자기 튀어 나와 한 참 수다 중이던 여학생 무리를 향해 걸레 빤 물통의 물을 집어 뿌린다.

“앗 차거. 야! 미쳤어?”

해령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들고 있던 물통마저 집어 던질 기세다.

놀란 여학생들은 해령의 무서운 기세에 눌려 금세 흩어졌다.

마침 수업 종이 울렸고 화장실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해령은 화장실에 혼자 남았다.

화장실 세면대 앞 큰 거울 속에는 화가 난 표정이긴 하지만 날씬하고 예쁜 해령의 모습이 보였다.

해령은 아직 보지 못한 페이스 북 소문에 불안해 미칠 지경이었다.

3개월 내내 자신을 쫓아 다니던 놈이 나재빈 이었다.

3개월을 쫓아다니며 구애하는 통에 해령은 순진하게도 손도 잡고 입술도 주었는데 자신을 고작 내기의 대상으로 여겼던 그 놈이라니.

화를 참을 수 없어 복수 하려다 자신의 비밀까지 알게 된 놈인데. 남의 비밀을 이렇게 쉽게 폭로 해 버리다니.

해령은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러자 해령의 손이 갑자기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아 진짜....”

그녀는 자신의 부어오르는 손을 보더니 인상을 더 찌푸리며 학교 건물 제일 위층 이사장실 옆 쓰지 않아 잠겨 있는 미술실로 뛰어 들어갔다.

미술실 거울에는 해령이 아닌 다 뜯겨진 교복을 입은 95kg의 거구 여고생이 비쳐 보였다.

뚱뚱한 그 소녀는 미술실 안의 사물함을 열어보더니 찾던 것이 없는지 문을 꽝 닫아 버렸다.

그리고는 미술실에 있던 컴퓨터로 페이스 북을 열어 이것저것 괴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보았다.

“미친 놈. 분명히 말하지 않겠다 해놓고.”

산하고 바람둥이 얼짱. 나재빈.

불과 지난달까지 해령이 첫사랑이라 믿었던 놈이었다.

***

“할머니, 저 좀 빨리 데리러 와요.”

거울 속에 비친 거구의 뚱소녀는 이곳을 혼자 나갈 수 없는 듯 미술실 전화기로 할머니를 불렀다.

이곳은 겉보기엔 쓰지 않는 미술실로 보이지만 학교 이사장이신 외할머니가 만들어 준 손녀 해령의 비밀의 방이었다.

정해령. 키는 170cm가 조금 넘는 아주 예쁜 얼굴에 날씬한 몸매로 귀티가 좔좔 흐르는 여고 3학년생이지만 고2 봄을 지나면서 초경이후 2년째가 되던 날부터 매달 어김없이 생리 끝에 가임기 즉 배란기가 되면 갑자기 살이 쪄 버려 거구가 되는 특이한 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곳이 이 방.

학교생활 중 몸이 조금이라도 커지는 변화가 생기면 이곳에 숨었다가 이사장이신 할머니를 호출해서 집으로 가곤 했었다.

세상 사람들은 이 희귀병을 보고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할머니 역시 해령을 매달 그 시기가 되면 일주일씩 학교를 쉬게 했다.

해령은 매달 거의 5일을 병결로 학교를 결석을 했고 겨우 유급을 면해 고3으로 진급할 수는 있었지만 매달 일어나는 이 생리통과 같은 큰 변화는 해령 자신에게는 아주 큰 고통이었다.

특히 자신을 보호 해 줄 할머니가 부재중인 날이 해령에겐 가장 힘든 날이었다.

미술실로 들어온 지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미술실에서 기다린 지 세 시간이 지났지만 할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커진 몸이 거의 95kg에 육박 했기에 그녀는 배도 심하게 고팠고 옷은 커진 몸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여기저기 뜯어져 너덜너덜 해 진 상태였다.

하필 지난번에 큰 교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간 후 다시 미술실에 갖다 두질 않아 지금은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이제 곧 1시간 후면 야간 자습을 하던 학생들도 모두 가 버릴 텐데 괴 소문의 진상도 묻히게 하고 나재빈도 응징해야하는데 미술실에 갇혀 있으려니 마음이 분하기만 한데 화장실까지 참아야 하는 고통이 겹쳐져 해령은 처참한 마음까지 들었다.

다시 할머니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오늘따라 계속 전화기는 음성으로 바로 넘어가 버린다.

더 이상 참을 만큼 참아 터지기 직전인 생리적 현상 때문에라도 그녀는 더는 할머니를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자신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병에 걸리고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전화하는 것이다.

마음이 급하니 엄마도 오늘만큼은 자신을 반겨줄 것 같았다.

“흐윽 엄마. 나 해령이. 몸이 커졌는데 할머니가 세 시간 째 연락이 안 돼.”

- ....

해령의 엄마는 해령의 목소리에 놀랐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 엄마..”

해령은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변한 자신을 절대 해령이라 인정하지 않았다.

해령의 변한 모습은 자신 스스로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그랬기에 해령은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오늘처럼 힘든 날까지 자신을 외면하는 엄마는 해령을 더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존재일 뿐이었다.

엄마의 그런 태도에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멀리서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 할머니께 연락해 볼게 울지 마. 일단 자꾸 전화하지도 말고 좀 더 기다려.

한 참 지나서야 전화기를 타고 넘어온 엄마의 그 목소리는 작으면서도 냉랭했다.

해령의 엄마는 자신이 이상한 아이를 낳았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해령의 변한 모습이 너무 다른 사람 같아 싫었는지 해령에게 이 희귀병이 발병되던 날.

자신의 딸이 변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다 기절 한 이후 깨어나서는 해령을 한 번 만나지도 전화 통화를 하려 하지도 않았었다.

이 후 해령은 할머니와 할머니의 큰 시골저택에 살았으며 자신의 변화를 최대한 숨기려 무단히 애를 썼다.

‘흐윽 할머니.. 나 배고픈데 배가 아프기도 하단 말야... 도대체 어딨는 거야?’

미술실에 들어 온지 여덟 시간째. 드디어 학교 복도에 불이 꺼졌다.

그녀는 너덜너덜 찢어진 교복차림으로 주변을 살펴보다가 살짝 복도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복도. 좀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급히 화장실로 뛰어 갈 수밖에 없었다.

가장 가까운 여교사용 화장실은 인기척이 나자 다행히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

‘으윽..’

큰 볼 일을 본 후 그녀는 곧장 자신의 교실을 찾아 들어 갔다.

해령의 손에는 언제나 마스터키가 쥐어져 있었다. 할머니가 만일을 위해 하나 만들어 주신 열쇠였다.

그리고는 누군가의 책상을 찾아 옆에 걸려 있던 체육복을 꺼냈다.

“됐다.”

해령은 그 자리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같은 반 완뚱 민아의 체육복이었다. 딱 95kg.

지금의 뚱녀로 변한 해령과 같은 몸무게의 거대소녀 민아.

학교에서는 무슨 배려인지 민아에게만 이 특대 크기의 체육복을 몇 개나 만들어 주었다.

해령은 민아의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후 유유히 학교 정문을 통과 해 집을 향했다.

한적한 시골이라 가로등이 없어도 환한 넓은 길로 쭉 연결 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이미 거의 집으로 향해 뿔뿔히 흩어졌는지 벌써 보이는 이가 없었다.

해령은 달빛을 벗 삼아 걸어야 했다. 가을이지만 제법 날씨가 쌀쌀했다.

한참을 걸으며 어마어마하게 커진 자신의 그림자를 쫓던 해령은 찢어진 교복이 든 보조가방을 교실에 그대로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몸이 커진 해령은 배가 너무 고파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일주일은 학교를 빠질 건데...뭐 어찌 되겠지.’

해령은 식겁한 하루였던 터라 단순히 생각하자며 가던 길을 재촉하며 걸어갔다.

아니 괴 소문을 잠재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빨리 할머니를 만나 상의하고 싶었다.

생각보다 달빛이 밝아 무섭진 않았지만 해령의 마음 한 켠에 오히려 쓸쓸함이 찾아들었다.

학교에서는 매번 자신이 갑자기 사라져도 같은 반의 누구도 그녀를 찾지 않았다.

왜냐하면 해령은 이사장의 손녀였고 한 달에 한 번씩 일주일을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특혜를 받는 친구로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골 학교라 그런지 그런 특별대우의 주인공과는 좀체 친하려는 친구가 없었다.

거기다 해령 역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연습을 해야 했으므로 특별히 친구를 만들려 하지 않았었다.

***

해령의 외가.

외할머니랑 지내는 집은 큰 저택이었다. 집 앞에 다다라서야 해령은 마음을 좀 놓았다.

‘다 왔다.’

할머니를 보면 어리광을 부릴 생각뿐이었다.

벨을 누르고 한 참을 지나자 얼마 전 새로 온 파출부 아주머니가 문 앞 화면에 나타났다.

문을 열려던 아주머니는 화면 속 처음 보는 뚱뚱한 여학생을 보고 깜짝 놀라서는 누구냐고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

“해령 아니 저 세령이예요. 서울 사는 해령이 쌍둥이 동생. 할머니는 어딨어요?”

“우리 아가씨랑 닮은 데라곤 하나도 없는 디 쌍둥이라카믄 우째요?”

“할머니, 우리 할머닌 어딨어요?”

“우리 할머니는 오전에 쓰러지셔서 서울 사위가 병원에 데려 갔는디이 오시는 중이고만.”

‘쓰러져? 할머니가? 아.. 안 돼!’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할머니 전화가 음성으로 돌아갔었다.

뚱뚱한 자신의 모습을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 주지도 않을뿐더러 할머니가 오실 때까지 문 앞에서 밤을 새야 할 지경이었다.

- 꼬르륵 꼬르륵...

체격이 커져서 그런지 자꾸 뱃속이 요동을 쳤다. 긴장이 풀리니 지친 몸이 무겁고 허기까지 느껴졌다.

하필 오늘은 종례를 빼 먹어 휴대폰도 없어 꼼짝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대문 앞에 퍽 하고 주저앉은 세령(뚱녀 상태의 해령)은 할머니가 오시기를 노심초사 기다렸다.

그런데 대문을 돌아 서는 담벼락 앞쪽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가 느껴졌다.

‘아, 얼마나 배가 고프면 헛 냄새가 다 느껴지네..’

짜장면 배달이라도 했을까 오토바이에 짜장을 들고 웬 남학생이 나타났다.

새로 온 아줌마가 저녁대신 시킨 것 같았다.

‘문이 열리면 나도 따라 들어가야지.’

그런데 배달 온 놈의 낯이 익다. 세령은 찬찬히 배달 온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아하. 자세히 보니 늘 해령을 쫓아다니며 스토킹을 해 대던 남학생이었다.

지난달에도 이맘때쯤 나타나서 세령(뚱녀 상태의 해령)을 벌레 보듯 보면서 해령을 불러 달라고 했던 놈이었다.

세령이 해령의 동생임을 자처하고 나섰어도 코웃음을 치며 자매가 될 수 있을 얼굴이 아니라며 부정하던 놈이었다.

해령이 앞에서 보이던 표정과 말투는 다 사라지고 불만에 찬 불쾌해하는 표정에 험한 말투, 세령이 앞에서는 인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놈이었다.

***

1 종상배 (1화)
새로운데욤^^ 넘넘 잼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