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정말 할리우드에서 온 편지야?”

일곱 살짜리 딸아이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내가 든 노란 봉투를 쳐다보았다.

“그래, 할리우드 최고의 에이전시에서 보낸 거야. 여기 봐. 영어 이름 보이지?”

나는 봉투에 찍힌 영문 'Creative Artists Guild'를 가리켰다.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곳에서 보낸 편지를 받은 것이다.

'Creative Artists Guild'.

니콜 키드먼, 안젤리나 졸리, 리암 니슨, 탐 행크스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와 스티븐 스필버그, 마이클 만 같은 내노라하는 감독들이 소속된, UTA와 쌍벽을 이루는 최고의 에이전시가 아닌가.

“와~! 그럼, 이제 아빠 돈 많이 버는 거야?”

“그럼!”

“바비인형도 사줄 거야? 저번 생일 때 약속했잖아.”

“당연하지.”

“와! 신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고군분투했던가.

할리우드 진출.

군 제대 후 복학하면서 가슴에 품은 꿈이었다.

전 세계적 흥행작을 내 손으로 쓰는 유명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생각만 해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는가!

많은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 작법 공부를 하고, 습작을 하면서 늘 가슴 한켠에 품었던 꿈.

남들은 기업체 취업준비나 공시에 매달릴 때, 나는 오로지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로 할리우드를 정복하겠다는 꿈만 부여잡고 버텼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아내와 결혼을 하고,

지금의 예쁜 딸이 태어났다.

아내는 보험일과 마트 임시직을 하며 대신 가장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십사 년을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세월 동안, 오로지 영화만을 생각하고, 수많은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를 쓰고 썼지만, 결혼 후 십사 년 동안 내가 벌어들인 돈은 고작 천여만 원에 불과했다.

연 백만 원도 벌지 못하는 무능력자.

할 일없이 낡은 노트북만 두드리는 백수.

헛된 꿈만 꾸는 ‘식충이’라는 주변의 비아냥거림이 나를 괴롭혔다.

장인, 장모의 날선 시선과 비판은 체념과 무시를 넘어 공개적인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저 봐, 마누라, 새끼 굶겨 죽이면서도 밥이 넘어가. 어이구, 속 터져!” 하며 깔 정도로 진화했다.

그러나, 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버티고 버틴 끝에 이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아빠, 뭐해?”

딸아이의 목소리에 지난했던 과거 기억을 뒤로하고 봉투를 뜯었다.

딸아이는 두 손까지 모은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봉투를 주시했다.

‘신이시여. 제발 이번 한번 제게 기회를 주소서.’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었다.

하얀 종이를 꺼내들었다.

[...귀하께서 보내주신 시나리오는 검토 결과 당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지 않아 아쉽게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새카만 영문 글자가 우- 달려들어 내 가슴을 난도질했다.

몇 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할리우드 입성이라는 꿈을 이루는가 싶었으나 내가 손에 든 봉투는 거절노트였던 것이다.

“아빠, 뭐라고 쓰여 있어?”

딸아이의 똘망똘망한 맑은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왜, 안 좋은 말이야?”

“으응...”

무슨 말을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우르르릉! 쿵쾅!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43세, 무명 시나리오 작가, 장백춘의 앞날이 무너지고 있었다.

속절없이, 와르르.

다세대주택 반지하방.

작고 볼품없는 작은방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두 평 남짓한 작은 공간. 벽지 곳곳이 곰팡이란 놈들에게 잠식당해 내 손으로 도배를 다시 했지만, 여전히 놈들은 벽지 밖으로 삐죽 세력을 넓히고 있다.

남들처럼 버젓한 아파트는 아니라도 작은 아파트에서라도 딸과 아내를 살게 해주고 싶었으나, 현실세계에서 나는 무능력했다.

애초 닿을 수 없는 천상세계를 꿈꾸었던 게 잘못이었다.

허황된 꿈을 가슴에 품었던 게 잘못이었다.

방안을 정리하던 내 손이 낡은 가죽가방에 닿았다.

첫 습작품을 완성하고 맥주파티를 하던 날, 아내가 선물했던 가방.

“멋진 작품 써서 영화사랑 계약하러 가는 날, 당신 이 가방 들고 가라고.”

“오호, 멋진데!”

쪽! 아내에게 입맞춤하며 나는 희망찬 미래를 꿈꾸었다.

“오년이면 될 거야. 이 가방에 거액의 수표를 넣어서 당신한테 선물할게.”

“정말...?”

그때만 해도 아내의 눈빛은, 아까 낮에 내가 봤던 딸아이의 눈빛 못지않게 맑고 초롱초롱했다.

‘두고 봐. 국내 영화사가 아니라,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랑 계약하러 가는 날, 이 가방을 들고 갈게.’

그리고, 십사 년 후, 나는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게 해주었던 그 희망의 끈을 놓으려 하고 있었다.

정리하고 말 것도 없는 단출한 방안.

가방을 열고 영문 시나리오 하나를 꺼내들었다.

전 세계 역대흥행 1위에 빛나는 ‘아바타’.

공부 차 세 번이나 되풀이해 읽었던 작품.

큰 가방 안에는, 십여 편의 자작 시나리오와 타이타닉, 어벤져스, 아이언 맨, 해리포터 시리즈 등 전 세계 역대 영화흥행 순위 50위까지의 영문 시나리오가 들어 있었다.

그 시나리오들을 읽고 읽으며, 꿈이 흐트러질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부질없는 일.

나는 묵직한 가방을 메고 라이터를 들고 방을 나갔다.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다세대주택 옥상.

쿠르르릉... 쾅...!

한차례 소낙비가 뜨거운 대지를 쓸고 지나간 밤.

여전히 밤 대기가 불안한지 연신 천둥번개가 어둠에 잠긴 밤하늘을 흔들어댔다.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메고 있던 낡은 가방을 열어 자작 시나리오 한편을 꺼내들고 라이터를 갖다 댔다.

쿠르르릉... 쿠웅...!

하늘이 으르렁거렸다.

이제 영화니, 작가니 따위는 말끔하게 잊는 거다.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태워버리고 다시 출발하는 거다.

택시를 몰거나 택배기사를 하더라도 내 손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라이터를 켰다.

탁!

어둠을 밀어내며 라이터 불이 켜졌다.

라이터 불꽃이 막 종이에 닿으려는 찰나였다.

그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은.

후두둑! 빗줄기가 떨어졌고, 낡은 우산을 펴들었다.

이상한 느낌에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는 순간,

콰르르릉...! 콰콰쾅...!!

새파란 한줄기 번갯불이 어둠을 가르며 옥상 위로 날아들었다.

순간, 강력한 에너지가 온몸을 휩싸면서 세상이 전율했다.

꽈아아앙~!!

눈과 귀가 멀 것 같은 강력한 천둥번개!

동시에 눈앞에 하얗게 변하면서 온 세상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

♬♬ 와우! 여름이다~!

이게 뭐야 이 여름에 방안에만 처박혀 있어~

안되겠어 우리 그냥 이쯤에서 헤어져버려~

내 품에서 흘린 눈물 너 만큼 나 힘이 들었어~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귓전을 간질이며 서서히 들려오는 음악소리.

쿨의 ‘해변의 여인’이다.

이 노래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마치 레몬 가득한 청량한 모히또 한잔을 들고 바닷가 백사장에 누워 있는 듯한 행복한 기분.

♬♬ 빨리 떠나자~ 야이 야이 야이 야이 바다로~

그동안의 아픔 그 속에 모두 버리게~

이게 아니야~ 우린 사랑했잖아~

이젠 다신 눈물 없는 사랑으로 만들어봐~ 우~~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에 익은 방안 풍경이 보였다. 부르르, 몸을 떨며 기지개를 켰다.

마치 어느 여름 날 오후, 시골 고향집 살평상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잔 뒤 기분 좋게 깬 기분이랄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운한 기분. 온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다음에 드는 생각 하나.

‘어...? 왜 이리 몸이 가볍지?’

마치 깃털처럼 몸이 가볍다. 몸에 뱃살 하나 없는 날씬한 몸을 가졌던 총각시절처럼 말이다.

다음 순간, 총알처럼 스치는 생각.

‘맞아, 천둥번개...!’

콰르르릉...! 콰콰쾅...!!

빗물을 피하려고 우산을 펼치는 순간, 강력한 에너지가 온몸을 휩쌌고 나는 그대로 아득하게 정신을 잃었었다.

‘근데 여기는...?’

찬찬히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이곳이 빛나던 20대 청춘을 보냈던 젊은 시절의 내 방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백춘아~!”

그때, 밖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는...?

“허리 안 아파? 무슨 낮잠을 그렇게 오래 자니?”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십 년 전 암으로 돌아가셨던, 생각만 해도 나를 눈물 나게 하는 그리운 사람.

바로, 어머니가 눈앞에 서 있는 게 아닌가!

흐읍...!

나도 모르게 숨이 턱 막히면서 반사적으로 동공이 확대됐다.

“얘 좀 봐... 너 악몽이라도 꿨니? 뭘 그렇게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어?”

“아... 아냐... 어...”

‘엄마’란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다 기도에 걸렸다.

“어서 나와. 밥 먹자. 벌써 해가 중천에 떴어.”

“으응...”

밖으로 나가려던 어머니가 몸을 홱 돌렸다.

“백춘아, 저 정말 시나리온지 뭔지 그것만 끼고 살 거니? 정우랑 민수는 다음 주부터 출근한다더라. 걔들 엄만 그룹 본사로 발령받았다고 아주 좋아하던데...”

무언가 말하려고 했으나, 무언가 목구멍을 틀어막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에휴...”

어머니가 막 잠에서 깨 부스스한 내 몰골을 훑고는 신음 같은 탄식음을 토하며 밖으로 나갔다.

온몸이 굳는 기분.

'설마 지금 내가 과거로 돌아온 거야...?!'

이 작품 뭘로 보면 좋을까? 추천해주세요!
  • 1
  • 3
  • 5
?????? (1화)
?????? ?? ?۰????? ?????ΰ? ?????˴ϴ?... ?? ?? ?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