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야~~~~~~~~압!”

3층 건물의 제일 꼭대기 층 창문을 타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긍정 합기도관’이라는 간판 바로 아래 보이는 창문 안쪽에는, 건장한 남자 수련자인 창수가 바닥에 쓰러져 있고, 그 앞에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미소가 눈에 불을 켜고 서 있었다.

두 사람의 대련을 그들의 앞에 나란히 앉아 숨죽여 지켜보던 초등중등 학생들은, 미소를 감탄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창수
“미소 누나는 괴물이야.”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훈훈한 얼굴의 창수가 웃는 얼굴로 엉덩이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소
“니가 아직 수련이 부족한 거야!”

아직도 얼얼한 엉덩이를 미소의 매운 손바닥이 한 번 더 가격해왔다.

그러자 창수는 마치 매서운 칼이라도 맞은 듯 오버스럽게 신음을 내뱉었다.

잠시 후, 모든 학생들과 창수가 집으로 돌아가고 체육관에는 사복으로 갈아입은 미소만 보인다.

불굴
“미소, 오늘 여행 간다고 했냐.”

합기도관의 명성 높은 노불굴 관장이 미소의 앞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미소
“넵! 사부님!”

입고 있는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어 꼼지락거리던 불굴은 미소에게 꼬깃한 이만 원을 꺼내어 건넸다.

불굴
“가서 너 좋아하는 치킨 사 먹어.”

얼굴은 산적이 따로 없지만, 마음만은 또 비단결 같기만 한 불굴이었다.

미소
“앗 사부님! 이런 거 안 주셔도 되지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미소는 넙죽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불굴
“마음 없는 거절도 가뭄에 콩 날 정도는 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
미소
“사부님께서 정직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마음에 없는 행동을 왜 해요.”
불굴
“너를 누가 말려..”
미소
“잘 다녀오겠습니다!”

미소가 체육관을 뛰어나간 후에도, 불굴은 잠시 동안 미소가 지나간 곳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중얼거렸다.

불굴
“너무 강해.. 그래서 애잔해 저건..”

불굴이 체육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입고 있는 점퍼의 등짝에는 강렬한 색상으로 ‘긍정 합기도’라고 새겨져 있었다.

*

카키색 긴 야상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모자까지 덮어쓴 채 미소가 고속버스 터미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지만 하얀 얼굴에 똘망똘망한 눈망울, 빨갛고 도톰한 입술이 꽤나 귀엽다.

이어폰을 꽂고 휴대폰을 이용해 영어 강의 동영상을 보며 미소는 중얼거린다.

동영상
“억양을 잘 살려서 한 번 따라해 볼까요? It's kind of you to say so."
미소
"It's kind of you to say so."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미소를 바라보았지만, 미소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열심히 강의를 듣고 따라했다.

이어폰으로 인해 자신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이유도 없진 않았겠지만, 미소는 원래 목청이 컸다. 마음먹고 소리치면 마이크 회사가 망할 정도로, 땅이 진동할 정도로 쩌렁쩌렁 울렸다.

잠시 후 미소의 휴대전화로부터 버스 탈 시간이 다가왔다는 알람 소리가 들려오자, 미소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속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대기실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남자는 정류장을 빠져나가고 있는 고속버스의 뒤꽁무니를 보며 아쉬워했다. 창가 쪽에 앉은 미소의 뒷모습이 그 남자의 눈에 들어왔다.

해성
“놓쳤네.. 한 시간 후에나 올 텐데..”

어둡지 않은 색상의 깔끔한 롱 트렌치코트에 머플러로 포인트를 준 옷차림의 해성은, 누가 봐도 돈 좀 있어 보였다.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그의 얼굴 또한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주변을 살펴보던 해성은 역사 한 쪽 끝에 위치한 커피전문점 안으로 들어갔다. 훤칠한 키에 다부진 몸매 덕에 천천히 걷는 그의 모습이 CF의 한 장면과 같았다.

*

양양 고속버스 터미널에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가 막 들어선다.

배낭을 둘러멘 미소가 힘찬 발걸음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내려서 터미널을 한 번 쭈욱 둘러보는데, 미소의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옛날통닭집이 보였다.

미소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통닭집을 향해 걸었다.

*

해성이 타고 있는 버스는 아직도 양양을 향해 한창 달리는 중이다. 해성이 창가 쪽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태블릿 PC를 이용해 일을 하고 있다. 그 때, 해성의 전화 진동음이 울리고 전화 저 편에서는 정우의 까불까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우
“박해성 팀장님! 어디십니까~?”
해성
“양양 가는 길..”
정우
“아.. 오늘이 그 날인가?”
해성
“낼 오전에 중요한 미팅 있는 거 알고 있어. 걱정 말고 내일 회사에서 봐.”

해성은 간단하게 통화를 마치고 다시 업무에 열중했다.

*

낙산 해수욕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바다 횟집’이라는 흔한 이름의 간판이 눈에 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횟집이 양옆으로 즐비해 있었지만, 해성은 망설임 없이 자기 집에 들어가듯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사장
“왔구만. 벌써 10월 말인가. 세월 가는 것도 몰라. 여기 앉아.”

반백발의 남자사장이 환한 얼굴로 해성을 맞아주었다.

해성
“장사는 어떠세요?”
사장
“예전 같지는 않지 뭐.”
해성
“그래도 사장님 네가 최고시잖아요! 단골도 많고!”

양쪽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해성이 칭찬을 하자, 사장은 허허 웃으며 좋아했다.

사장
“해물 칼국수?”
해성
“네. 소주도 한 병 주세요.”

해성이 식당 창문으로 보이는 바닷가를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

16살의 해성이 햇빛 쏟아지는 갯벌에서 아빠 응진과 조개와 게 등을 잡고 있다. 엄마 현희는 텐트 앞에 쳐 놓은 그늘막 아래 앉아서 부자의 모습을 행복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저녁이 찾아오고, 세련되고 아기자기한 펜션 앞마당에서 응진은 고기를 굽는다. 현희는 그 옆에 놓인 테이블 위에 각종 야채와 밑반찬들을 세팅하고 있고, 해성은 열심히 엄마아빠의 심부름을 한다.

세 사람이 둘러앉아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오간다.

현희
“우리 아들, 요새 만나는 여자친구 있는 것 같던데..?”
해성
“어! 엄마 알고 있었어? 어떻게 알았어?”
응진
“니 엄마 속이는 거 보다 귀신이 더 쉽다..”
현희
“한 번 집으로 데리고 와. 엄마가 맛있는 거 해 줄게.”
해성
“진짜?”

해성의 얼굴이 활짝 핀 꽃 한 송이가 되어 소리친다.

응진
“거 너무 빠르지 않나.”

응진이 찬물을 끼얹는다.

현희
“당신은 아빠라는 사람이.. 16살이면 알 거 다 알고 다 컸지!”
해성
“지당하신 말씀!”

응진이 수긍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현희는 해성이 안 보는 사이에 응진의 허벅지를 살짝 건드리며 눈짓으로 ‘그냥 그렇게 맞춰줘요’라는 뜻을 전달한다.

*

10월말의 바닷바람은 꽤나 차가웠다. 냉랭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바다에는 아직 분위기를 잡아보려는 한 커플의 연인도 없이 한적했다.

해성이 어둠 속에서 철썩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 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저 멀리서 여자의 노랫소리가 해성의 귀에 들려왔다.

미소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이미 취기가 오를 대로 오른 목소리로 한 여자가 음정이 불안한 노래를 쏟아놓고 있었다.

해성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유심히 살펴보니, 여자의 실루엣이라 여겨지는 사람의 뒷모습이 작게 보였다. 해성은 살금살금 그녀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미소는 한 손에는 프라이드치킨을 들고, 한 손에는 술이 든 종이컵을 든 채로 노래를 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노래며 춤이며 그 어느 쪽도 감탄은커녕 평균도 안 되는 실력이었다.

해성은 참 괴상하지만 재미있는 눈요기 거리를 만났다는 마음으로 한 발치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실컷 고래고래 소리치며 춤을 추던 미소는 갑자기 그 자리에 철퍼덕 앉았다. 그리고는 언제 그 발광의 시간 속에 있었냐는 듯,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을 유지했다.

미소
“엄마.. 보고 싶다...”

훌쩍거리며 엄마를 그리워하던 미소가 갑자기 빈손으로 벌떡 일어나 바닷가 쪽으로 다가간다.

해성
‘어어.. 뭐야.. 왜 이 시점에 바닷가 쪽으로..’

해성은 대중매체를 통하여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바다에서 건져낸 시신..들이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 뒤를 바짝 붙어 따랐다.

그런데 미소는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바로 앞에 딱 서더니 또 큰소리로 외쳤다.

미소
“엄마~~~! 올해는 우리 만나는 거지? 꼭 만나자~~! 27년을 엄마 없이 살았으면 이제 만나도 되잖아~~!꼭 나타나야 해~! 약속이다~ 약속!”
해성
“엄마... 에취!”
미소
“엄마야!”

미소는 해성의 재채기 소리에 화들짝 놀라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고개를 해성 쪽으로 획 돌린 미소는 해성을 도끼눈을 뜨고 보았다.

해성은 당황한 기색으로 미소를 바라보며 먼저 말을 건네었다.

해성
“저기... 괜찮아요?”
미소
“뭐예요?”
해성
“그게.. 어쨌든 미안해요..”

미소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 엉덩이를 문지르면서도 대답만큼은 쿨하게 해 주었다.

미소
“이 정도는 용서해주죠 뭐.”

마치 대단한 관용이라도 베푸는 듯 하는 미소의 말투에 해성은 좀 어이가 없다.

해성
“예.. 뭐.. 근데, 여자 혼자 이 시간에 무섭지도 않나봐.”

자연스레 미소의 옆에 앉으며 해성은 미소의 남다른 행동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미소
“뭐가요?”
해성
“아니.. 그렇잖아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사람 하나 없는 추운 바닷가에서 혼자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게 보통..”
미소
“그게! 바로 여기가 안전지대라는 뜻인 거죠!”
해성
“에?”
미소
“이 날씨에, 이 시간에, 나쁜 짓 한번 해 볼 생각으로 나와 있을 미친놈이 어디 있겠어, 안 그래요?”
해성
“내가 그 놈일 수도 있는데?”

해성이 장난기 가득한 말투와 표정으로 미소의 얼굴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러자 미소는 갑자기 힘없이 풀어진 눈꺼풀을 애써 추켜올리며 해성의 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미소를 놀려주려던 해성의 계획과는 달리, 오히려 움찔한 건 결과적으로 해성이었다.

미소
“당신은 절대! 아니에요.”
해성
“왜..요..”
미소
“눈빛이 맑고 선하거든.”

해성은 너무나도 진지하게 그런 말을 내어놓는 미소를 보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해성
“직업이 뭐, 도를 아십니까 그런 건가?”
미소
“말은 그렇게 떽떽거려도 그 내면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해성은 미소의 양쪽 어깨를 잡았다.

해성
“됐고, 일어나요.”
미소
“그리고 나! 유단자에요 유단자!”

미소가 갑자기 양 주먹을 확 치켜 올리더니, 나를 건드리는 자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 할지어다~와 같은 기운을 마구 뿜어내며 능력을 내세웠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가녀린 몸이지만 속이 꽉 찬 탄탄함이 점퍼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해성의 두 손을 타고 전해오는 것도 같았다.

해성은 미소의 어깨에 얹어놓았던 자신의 양손을 거둬들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해성
“아.. 예... 어디 그 실력 한 번 꼭 볼 날이 오기를 기대할게요.”
미소
“흐흐흐”

해성은 바보처럼 웃으며 앉아 있는 미소의 어깨를 다시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일어난 미소의 눈앞에 남은 소주와 치킨이 보였다.

미소
“내 술이랑 치킨!”

해성은 바닥에 있는 빈 소주병과 치킨 조각 세 개가 담긴 치킨박스를 들어 올리려는 미소의 팔을 잡더니, 자신이 들어올렸다.

해성
“이건 내가 들어줄게요.”
미소
“좋으실 대로.”

해성보다 조금 앞서 걷는 미소의 걸음걸이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엉망으로 갈 지 자를 그려대고 있었다.

바로 뒤에서 언제든 받쳐줄 태세를 갖추고 걷던 해성이 슬쩍 물었다.

해성
“안 좋은 사연이 있나 봐요..”
미소
“거기까지!”

미소가 빛의 속도로 휘익 몸을 돌리더니, 해성의 입술에 자신의 두 번째 손가락을 꾸욱 누르며 소리쳤다. 호리호리한 몸매와 달리 통통하게 살이 오른 그녀의 손가락이 입술에 고스란히 느껴지자, 마치 입술이 맞닿은 듯한 묘한 느낌이 해성의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쿵닥거리는 자신의 감정이 노출될까 봐 다소 거칠게 그녀의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해성
“깜짝이야!”

갑자기 엄청 큰 소리로 말을 하는 미소 때문에도 해성은 정말 간이 떨어질 만큼 놀랐다. 그런데 손가락까지 무방비 상태의 입술을 공격하니 당황스럽기가 말할 수가 없었다.

미소는 그런 해성의 상태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저 자기 할 말을 할 뿐이다.

미소
“이제 기분 좋아졌어요. 고맙다 바다야. 움~~뽀!”

바다를 향해 키스를 날리는 미소를 보자, 해성은 다시 마치 자신에게 해 주는 키스인 냥 얼굴이 화끈해졌다. 묘한 감정으로 해성은 중얼거렸다.

해성
“별 거 다 할 줄 아네.”

느닷없이 미소는 해성의 손에 들린 치킨박스와 소주병을 획 뺏어들었다.

미소
“암튼, 감사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혼자 갈게요. 원래 남의 신세 지는 거 안 좋아해서요.”
해성
“네.. 뭐...”

한 손에는 치킨박스를, 한 손에는 빈 소주병을 들고 미소는 성큼성큼 앞서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서 있던 해성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피식 웃었다.

해성
‘내가 지금 뭐하는 거냐.. 거기서 거기일 뿐인 여자 따위한테...’

해성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걸었다.

미소와 해성의 기막힌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 타고난소화력ㅎㅎㅎ (1화)
ㅎ재미있네요! 장면들이머릿속에딱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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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좋네요~ 어떻게 전개 될 지 기대돼요~
1 하트리드 (1화)
잘봤어요. 앞으로 어떤 전개를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
1 헌스맘 (1화)
사이트가 좀특이하기도 하고  신선하네요~^^앞으로 잘 볼께요
1 카르페디엠 (1화)
재미있어요 항상 잘 보고갑니다 작가님^^
1 한솔학원 이아인 (1화)
샤인작가님 소설 잼나욤
1 이슬공주 (1화)
미소와 해성의 매콤달달한 사랑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