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화
구멍
출근한다.
매일 침을 흘리고 피를 튀기며 서로를 노리는 악수(惡獸)들이 우글대는 곳으로…….
2014 5월 20일. 김병국 과장의 일기 中
★
스스스슥.
미례의 단잠을 깨운 것은 기묘한 소리였다.
마치 발이 많은 벌레가 바닥을 스치며 나는 기분 나쁜 소리.
컴컴한 어둠 속이었지만 그 소리의 정체가 자신에게 점점 다가오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미례는 경직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사방이 어둠이었다.
스스슥.
소리가 한층 더 선명해졌다.
미례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벽을 더듬었다.
서둘러 전원 버튼이 있을 법한 위치를 위아래로 미친 듯이 더듬었지만 이상하게도 손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어…… 분명 이쯤인데…….’
그러나 손에 닿는 것은 여전히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밋밋한 벽뿐이었다.
이제 그 소리는 자신의 바로 근처까지 들려왔다.
처음에는 다리가 많은 벌레가 바닥을 기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벌레라고 하기에는 마찰음이 너무 컸다.
훨씬 묵직하고 둔중한…….
꼭 사람이 팔로 바닥을 쓸며 길 때나 날 법한 소리였다.
섬뜩한 생각이 스치자 곧바로 뒷머리가 곤두섰다.
아니야, 아닐 거야.
미례는 최근 스트레스 탓에 신경이 예민해진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다시 소리가 나면 자신의 짐작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는 것을 단번에 증명할 수 있으리라.
미례는 온 신경을 귀로 집중시켰다.
그러나 한참 시간이 경과된 뒤에도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계속되는 기묘한 정적이 오히려 미례의 신경을 더 긁어 댔다.
어디로든 달아나고 싶었지만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손에서는 어느 새 축축한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미례는 자신을 둘러싼 철저한 어둠에 장님처럼 절망했다.
딸깍.
그때였다.
미례가 가슴을 옥죄어 오는 공포로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소리와 함께 주변이 환해졌다.
‘휴우.’
그제야 미례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몸을 일으킨 곳은 회사의 회의실 안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주변을 살피던 미례의 눈에 자신의 옆으로 높게 쌓인 회의 자료가 들어왔다.
염하영 선배가 내일 오전 회의에 쓸 브리핑 자료를 회의실에 갖다 놓으라고 한 것이 그제야 생각났다.
자료를 정리하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만 모양이었다.
미례는 서둘러 정리한 서류들을 스테이플러로 박기 시작했다.
투둑.
정신없이 스테이플러를 박던 미례의 손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위에서 떨어진 투명한 액체.
미례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회의실 천장에는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수리하려다가 그냥 간 모양이었다.
천장은 물이 새는지 구멍 주변이 젖어 얼룩져 있었다.
방금 전 꿈 탓인지 괜히 소름이 돋았다.
미례는 부러 힘을 주어 딱! 딱! 소리 나게 스테이플러를 박았다.
서늘한 긴장감이 주위의 공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빨리 자료 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미례의 손이 빨라졌다.
“미례 씨!”
“아-악!”
뒤쪽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목소리에 놀란 미례가 소리를 지르며 의자 밑으로 미끄러졌다.
“과, 과장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김병국 과장이었다.
미례는 놀라 다리가 풀린 탓에 탁자 다리를 잡고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과…… 과장님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응. 내일 9시 회의잖아. 그전에 에어컨 고쳐 놔야지.”
그렇게 말하고 김병국 과장은 씩 웃어 보였다.
양옆으로 올라간 입 꼬리와 달리 눈빛에는 표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입술만 일그러진 기이한 미소였다.
미례는 소름 끼치는 그 웃음을 보고 꺼림칙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지금 내 앞에 선 사람이 김병국 과장이 맞는 것일까? 순간 오한이 들어 발밑을 보니 미례의 구둣발 아래로 물이 고여들고 있었다.
꿈속에서 본 어둠처럼 시커멓게 검은 물이었다.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물이 흘러 고인 걸까? 미례는 물의 출처를 눈으로 좇았다.
물줄기를 따라 가던 미례의 시선이 멈춘 곳은 낡은 갈색 구두 앞이었다.
물은 김병국 과장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과장님…… 물이…….”
그러고 보니 김병국 과장은 비를 맞은 듯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밖에 비라도 오는 모양일까? 미역처럼 얼굴에 착 달라붙은 앞머리 탓에 창백한 그의 얼굴이 한층 더 풀이 죽어 보였다.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비치는 눈동자는 생기를 잃은 둔탁한 회색빛이었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선 김병국 과장의 모습은 꼭 죽은 시체 같았다.
미례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미례 씨…….”
김병국 과장이 뒤로 물러나는 미례에게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과장님…… 왜, 왜 이러세요?”
“누가 사다리를 치웠네. 미례 씨가 나 좀 잡아 줘. 그래야 에어컨을 고치지…….”
김병국 과장은 계속해서 손을 뻗으며 미례에게 성큼성큼 다가섰다.
“하지…… 마세요. 오지…… 마세요…….”
공포에 질린 미례가 휙 돌아서서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덥석.
문고리를 돌리려는 미례의 손목을 김병국 과장이 먼저 잡았다.
“미례 씨. 미례 씨가 나 좀 도와줘.”
손목에 닿은 감촉이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과장님. 왜 이러세요. 놓으세요!”
미례는 자신의 손목을 있는 힘껏 빼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광기로 번뜩이는 눈동자가 미례의 얼굴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놔주세요. 과장님. 저 좀 놔주세요. 제발…….”
공포로 하얗게 얼어붙은 미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례 씨……이미례 씨…….”
누군가 미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아-악!”
미례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비 오듯 흘러내린 땀으로 온몸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미례 씨. 점심시간 끝났어. 벌써 1시 3분이라고.”
인상을 잔뜩 구긴 염하영이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꿈.
이번에는 정말 꿈이었구나.
여전히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기이한 꿈.
무엇보다 공포스러웠던 광기로 번뜩이던 흰 눈동자.
“4분!”
넋을 놓고 있던 미례를 다시 현실로 불러들인 것은 잔뜩 날이 선 하영의 목소리였다.
“네?”
“이제 4분 지났다고.”
“아…… 죄송합니다.”
미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사과했다.
“요새 인턴 과제가 널널한가 봐. 인턴이 점심시간에 잠을 다 잘 여유가 있고 말이야.”
“죄, 죄송합니다. 회의 자료 미리 갖다 놓는다고 들른 게 깜빡 졸았나 봅니다.”
미례가 고개를 숙일수록 하영의 얼굴은 더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깜빡 졸 여유가 벌! 써! 생겼다는 거네.”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고…….”
인턴으로 들어온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똑같은 실수를 연발하고 매번 고개를 떨구는 꼴이란…….
하영은 그런 미례의 한심한 모습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미례 씨. 사과도 버릇인 거 알아?”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또, 또! 진짜 말 귀 한번 못 알아듣네! 그러니까 자꾸 구멍 소리 듣지…….”
“……!”
“됐고. 한 시 반에 회의인 거 몰라? 빨리 준비나 해.”
하영은 미례를 싸늘하게 한번 쏘아보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구멍.
하영이 날린 말이 화살이 되어 미래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곧 뿌옇게 흐려진 미례의 눈에 문 옆에 달린 스위치가 들어왔다.
꿈속에서 미례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그 스위치였다.
딸깍.
미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스위치를 내렸다.
암막 커튼이 쳐진 회의실에 불이 꺼지자 컴컴한 어둠이 내렸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벗어나고 싶던 악몽 속 어둠.
미례는 차라리 그 속으로 다시 달아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
종훈은 문이 활짝 열린 아파트로 들어서는 순간 훅 끼치는 냄새 때문에 멈칫했다.
콧속을 파고드는 것은 지독하게 비릿한 피 냄새였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현관 앞에서부터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일까? 바싹 마른입에서 쓴맛이 났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정면에 붙어 있는 가족사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검푸른 배경을 등지고 선 네 명의 가족.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 위로 말라붙은 피가 만든 검붉은 얼룩이 불규칙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그 밑 거실 바닥에는 사진 속 네 사람 중에 세 사람의 시체가 바닥에 꼬꾸라져 있다.
세 명의 밑으로 각각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고여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시어머니, 며느리, 그리고 아홉 살 먹은 아들이랍니다.”
언제 옆으로 왔는지 기태가 바닥에 누워 있는 세 구의 시신을 차례로 가리키며 말했다.
종훈의 시선이 가운데 누운 사내아이에 머물렀다.
자동차 무늬 잠옷은 양옆에서 흘러나온 피에 흥건하게 젖어 원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싸늘하게 식은 아이의 얼굴에는 아직 마지막 순간의 공포가 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차마 그 얼굴을 더 보기 힘들어 고개를 돌린 종훈의 눈에 아이의 꼭 쥔 주먹이 들어왔다.
아이는 오른쪽 손에 뭔가를 쥐고 있었다.
종훈은 기태가 건넨 비닐장갑을 끼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아이의 손가락을 펴기 시작했다.
아직 죽은 지 채 12시간이 지나지 않은 탓에 사후 경직이 손가락까지는 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퍼즐 조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옆에 미완성된 퍼즐 판이 펼쳐 있었다.
이제 다시는 완성될 일이 없는 퍼즐 판이었다.
그런 아들의 왼편에 모로 누운 엄마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차마 아들을 두고 눈을 감지 못한 모양이다.
제일 오른쪽에 누운 노모의 옆에 사과가 담긴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갈색으로 변한 사과가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처음 현장을 발견한 이웃이 도착했을 때 TV도 켜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사과, TV, 퍼즐 판.
거실에 나란히 누워 있는 시신.
종훈은 광수대에서 일을 하면서 살해 현장이라면 지겹도록 봐 왔다.
그런데 오늘 현장은 일반적인 살해 현장과 기묘하게 어긋난 지점들이 있었다.
요즘은 세상이 말세라 사이코패스니 묻지 마 살인이니 하는 이유 없는 살인이 부지기수라지만 보통 인간이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도 근친에 의한 살인일 때는 특히나 그랬다.
때문에 현장에는 그 이유를 추측할 만한 증거가 남게 마련이었다.
가령 술병이 나뒹굴거나, 몸싸움, 폭력의 흔적으로 난장판이 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간혹 경제난에 못 이겨 온 가족을 몰살 시키는 가장에 의한 살해 현장의 경우에는 시체가 각각의 방에서 따로 발견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집의 현장은 전자에도 후자에도 속하지 못했다. 한 곳에 사이좋게 모여 있는 시체들.
누가 봐도 저녁 식사를 마친 단란한 가족이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TV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작스레 일어난 참극이었다.
현장은 가족 중 누구도 그날 밤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날의 살인자까지도.
“피의자는 꼭 저녁은 집에서 가족들과 먹었다고 합니다.”
기태의 말을 증명하듯 부엌 싱크대에는 네 명 분의 식기가 물에 담겨 있었다.
모든 정황이 그날 밤, 이곳이 평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저녁 시간이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갑자기, 왜 그랬을까? 피의자는 술도 먹지 않고 멀쩡한 정신으로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가족들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다름없다.
그러다 갑자기 일어나 신발장으로 가서 공구함에 든 망치를 꺼내 든다.
그리고 거실로 돌아와 앉아 있던 가족들의 머리에 차례로 망치를 내리꽂는다.
종훈은 다시 한번 자신의 발밑에 펼쳐진 참극의 현장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남자의 타깃이 된 것은 아내였을 것이다.
아내가 물리적으로 저항할 가능성이 가장 크니까.
그다음은 가운데 있는 다리가 불편해서 쉽게 도망칠 수 없었던 아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이 믿기지 않아 차마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을 노모.
“약을 한 게 아닐까요?”
기태도 이 현장이 일반적인 일가족 몰살 현장과는 다르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러고 나서 손에 달랑 서류 가방만 들고나갔다 그 말이지?”
아파트 CCTV에 찍힌 남자의 손에는 서류 가방만 들려 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의 피로 집을 피바다로 만들어 놓고 서류 가방만 들고 사라진 남자.
“뭐야. 이래 놓고 야근이라도 하러 회사에 갔다는 말이야 뭐야.”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종훈이 검지로 미간을 문지르고 있을 때였다.
“진짜 갔다는데요?”
종훈 옆에 서서 전화를 받던 기태가 전화기를 그대로 든 채 말을 전했다.
“뭐? 어디를 가?”
“방금 회사 CCTV 분석 끝났는데요. 그날 밤, 회사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답니다.”
기태는 자신이 지금 전달하는 말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이런, 제대로 미친 새끼네…….”
“…….”
가족을 죽이고 태연하게 회사로 야근하러 가는 가장이라…….
과연 그놈이 미친 것일까? 그렇게 만든 사회가 미친 것일까? 기태는 지금 종훈이 웃고 있는 것일까 찡그린 것일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도 가야지.”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멍하니 서 있던 기태의 어깨를 치며 종훈이 말했다.
“네? 어디를?”
“어디긴 어디야. 그 새끼가 이래 놓고도 간 곳!”
“…….”
“우리도 출근해야지!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