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수
“아,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나 지금 상중인 거 몰라!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엄마가!”
도경
"저도 알죠…… 상중이신 거……. 아버님은 십 년 전에 돌아가신 거, 이번엔 어머님 돌아가신 것도. 그러니까 열쇠 둔 데만 알려 주시면 제가 잘 감춰 둘 수 있는데 말입니다."
건수
“그 열쇠 내가 가지고 있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새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군.

도경이 이 자식.

너무 많이 키워 줬나.

콧물 질질 흘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근데…….

어엇!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급히 핸들을 틀었다.

왼쪽 커브.

간신히 휘청거리는 차를 고쳐 잡았다.

젠장! 하마터면 논두렁에 처박힐 뻔했잖아.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 외곽도로는 좁고 어두컴컴해서 속력을 내기는커녕 제대로 운전하기도 벅찼다.

헤드라이트 불빛에도 시야가 바로 앞만 겨우겨우 확보되는 수준이었다.

짜증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었다.

건수
“도대체, 이 새끼들은 왜 하필 지금 감사를 나온다고 지랄이냐 지랄이! 언제 온대? 걔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내 말 뒤로, 핸드폰 뒤 도경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민수
“한 시간 안으로 도착한다는데……. 빨리 좀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내가 제일 귀여워하는 막낸데.

약간 미안해져 목소리를 굽혔다.

건수
“알았어. 안달 좀 하지 마라. 형이 지금 상황이, 상황이 아니다. 금방 간다. 안 멀어. 좀만 기다려.”
민수
"그럼 빨리 오시지 말입니다."
건수
“아씨! 가고 있다고, 간다고. 자식아. 확 그냥 열쇠 버려 버린다. 어떻게! 의자왕 삼천 궁녀 한번 해! 야야, 됐고. 암튼 내 서랍 건들지 마라. 괜히 뜯었다간 더 표만 나니까. 어? 민수야 잠깐 끊어 봐. 나 전화 들어온다.”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보니 여동생 화영이다.

뭐야, 또 문제라도 생겼나.

문득 어제 접견실 입구에서 쪽팔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은 듯, 쩌렁쩌렁 장례식장을 울렸던 화영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직도 선했다.

화영
“아저씨, 지금 무슨 아파트 고르는 것도 아니고, 넓고 자시고 다 필요 없어. 관짝이 거기서 거기지. 그냥 계약대로 하자니까요. 그거 갖고 오시라고요. 나무를 키우든 뽑든, 훔쳐오든 해서!”
아저씨
“없는 걸 지금 당장 어떻게 가져다 드립니까. 사과 궤짝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저희 쪽에서 제시한 걸로 하시죠. 저번에 고르신 거보다 사이즈도 넉넉하고 원목도 훨씬 좋은 겁니다……. 저희 쪽 불찰도 있고 하니 십오 프로 빼 드리겠습니다.”
화영
“아니, 이 아저씨가 귓구멍에 호박넝쿨을 박았나! 갖고 오라고, 당장!”

호박넝쿨?

뭔진 몰라도, 정말 내가 뜯어 말리지 않았더라면 상조회사 직원은 자기 집 마룻바닥이라도 뽑아 올 판이었다.

쪽팔리게, 진짜.

응? 근데, 뭐야? 비야?

와이퍼를 작동시키고 운전대를 꼭 쥔 채 잠깐 주위를 둘러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에 보이지도 않는 빗줄기가 후두둑 소리를 내며 차창을 때렸다.

신경이 더 날카로워졌다.

아니, 어제 이혼한 와이프가 다녀가고부터는 아주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갑자기 전처가 입고 온 시스루가 생각나 참 놔, 헛웃음을 지었다.

건수
“장례식장에 무슨……. 그래 뭐, 꼬라지야 됐고. 왜 왔냐?”
전처
“나 곧 미국 가. 민아, 미국 데려가게 해 줘.”
건수
“……넌 기본도 없고 상식도 없고 염치도 없냐?”
전처
“그러는 오빠는 나이 마흔이 다 돼서 현실도 없고, 미래도 없잖아.”

이게 진짜.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떠올라 액셀을 콱 밟았다.

굶주린 짐승들처럼 빗방울이 헤드라이트로 달려들었다.

그래, 그 얘기에 내가 좀 악을 썼었지.

건수
“내가 왜 미래가 없어! 없기는! 나 곧 승진하는데!”
전처
“그 말만 벌써 3년 째다. 남자 혼자 돈 없이 여자 애 키우는 거 애나 어른 둘 다 힘들어. 여기서 밤낮으로 야근하면서 어떻게 키우겠다는 거야.”
건수
“낮엔 야근 안 해. 오바 하지 마”
전처
“흥! 암튼! 나랑 미국 가는 게 민아한테 더 나은 조건인 건 분명해. 나 휴전하러 온 거 아냐. 곧 양육 소송 들어간다고 선전포고 하는 거지.”
건수
‘뭐!!!’

빠아아앙!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클랙슨을 누르며 핸들을 틀었다.

룸미러로 보니 웬 바둑이 한 마리가 중앙선에 떡 하니 서서 혀를 날름거렸다.

건수
“뭐야! 미친 개새끼가! 아무리 살기 싫어도 그렇지!”

그렇게 얘기하고 나니, 내 맘도 갑자기 우울해졌다.

엄마 생각이 나서였다.

그래, 씨. 네 맘 나도 안다!

나도 지금 그렇다! 똑같다.

엄마! 엄마! 왜 벌써 돌아가셨어! 왜! 부귀영화는 몰라도, 해외여행이라도 한번 같이 가려고 그랬는데…….

슬픔인지가 홧덩인지가 치받쳐 핸들을 마구 손바닥으로 두들기는데 지이잉- 다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아, 맞다.

통화하다가 딴생각하느라…… 부랴부랴 통화 버튼을 눌렀다.

건수
“어, 화영야 미안! 뭐 좀 하느라.”
화영
“아! 지금 장난치냐, 고건수 지금 대체 뭐하는 거야! 상주가 자리 비웠다고 어른들이 뭐라 그러잖아.”
건수
“장난은 무슨……. 내가 오죽하면 장례 치르다 나오겠냐.”
화영
"도대체 무슨 일인데!”

화영아…… 너 같음 네 오빠가…… 업주들 등짝 후려쳐 뽀리 친 돈, 감사팀에 들킬까 봐 똥줄 빠져라 엄마 상중에 이렇게 미친년 빤스 휘날리듯 달려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냐.

짐짓 철든 오빠처럼, 의연한 어른인 척 목소리에 분위기를 실어 말했다.

건수
“금방 갈 테니까 김 서방이랑 잘 좀 하고 있어. 알았지? 너무 슬퍼 말자. 엄마, 천국 가셨을 거야. 없는 돈에 십일조도 꼬박 내셨잖아…….”
화영
“십일조 내라고 네가 줬잖아요, 그 돈! 그게 십일조냐! 잘도 천국에서 염치 좀 있으시겠다! 효자 생색은 지 혼자 다 내시더니 상주 자리도 안 지키고. 진짜 빨랑 안 와!”

넌 그런 말할 자격 없다,

화영아. 내가 네 서방 사업 들러먹을 때 빵구 때워 준 돈이 얼만데……. 아무튼.

건수
“금방 갈 거니까 손님들 잘 챙겨, 근데 민아는?”
화영
"암튼, 이 와중에 딸 바보 아니랄까. 오빠 새낀 자알~ 먹고 자알~ 싸고 자알~ 논다!"

그래, 내 딸 민아만 있으면, 민아 미래를 위해서는 뭔들 못하겠냐.

그래서 난 더 들킬 수 없다.

빨리 가서 뽀리 친 돈 다시 뽀리쳐 숨기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크게 뽀리 쳐야 한다.

난 죽어도 아까 그 집 나온 바둑이처럼 연고도 없는 이차선 국도에 내 삶을 내던질 수 없다.

우리 민아를 위해서라도. 절대.

건수
“안 그래, 화영아?”
화영
“뭐? 뭐가 안 그래?”
건수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웬 바둑이…… 개가…… 갑자기.”
화영
“뭐? 개? 미쳤구만, 미쳤어! 아, 개소리 말고 빨리 와! 살다 살다, 진짜!”

뚝, 전화가 끊겼다.

머리가 욱신거려 자동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빠방! 빵! 빠방!

뭐야, 또! 룸미러 안에서 볼보 트럭 한 대가 하이빔을 마구 쏘아 댔다.

아씨, 진짜. 오른쪽 갓길 차선으로 눈을 돌렸다.

도로가 좁아 비켜 줄 수가 없다고 이 사람아…….

뿌앙! 빵! 뿌아---앙!

이런 씨.

깜짝 놀라 갓길 수풀 쪽으로 차를 붙이면서 속력을 줄였다.

볼보 트럭이 반대편 차도로 파고들어 내 차와 동행을 이뤘다.

곧 볼보에서 조수석 창문이 열렸다.

나도 어이가 없고 뭐라 그러나 궁금해 차창을 열었다.

얼굴이 온통 털북숭이 사내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털북숭이 운전자
“야, 이 고자 새끼야! 운전 똑바로 안 해!”

고자?

하, 기가 차서. 그래도 민원인의 시비는 피해야 상책이다.

난, 공무원이니까.

강력계 십 년차 베테랑이니까.

건수
“먼저 들이댄 게 누구신데요. 아, 그냥 지나가세요! 제발. 나 지금 겁나 괴로우니까!”
털북숭이 운전자
“뒈지고 싶냐! 빨리 잘못했다고 안 해!”

그 말에 이마에 핏대가 섰다.

뒈지고 싶지 않다, 털북숭이 새끼야.

감찰 팀한테도 걸리고 싶지 않다, 이 털북숭이 새끼야.

엄마도 잘 보내 드리고 싶다.

망할 놈의 털북숭이 새끼야.

그래도 침착하게 대변하자.

아무리 털북숭이라도 민원은 민원이니까.

건수
“아니,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 뭘 사과를 해요! 사과는. 그냥 빨리 가세요, 제발!”
털북숭이 운전자
“하, 이 고자 새끼 봐. 완전 또라이네! 너 씨발 오늘 좀 맞아야겠다. 야, 차 붙여!”

부앙.

소리를 내며 트럭이 내 차를 추월해 앞으로 섰다.

끼기긱!

앞서가던 트럭이 내 차의 옆면을 살짝 긁고 달려 나갔다.

그러더니 어어…… 급, 급정거!

반사적으로 콱, 브레이크를 밟았다.

뒷좌석에 놓인 가방이며 서류들이 왈칵 바닥으로 쏟아졌다.

아오! 진짜…… 미친…….

털북숭이 운전자
“내려, 고자 새끼야! 빨리 내리라고 새꺄!”

털북숭이가 차에서 내려 운전석의 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하지만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건 털북숭이가 아니었다.

그 옆의 덩치였다.

레슬러, 헤비급, 이 대 일.

여러 가지 위험 관계가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에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빨리 끝내고, 빨리 돈 감추고, 빨리 장례식 절차 밟고. 빨리 인생을 정상 궤도로.

털북숭이 운전자
“아이고. 고자 새끼 차 많이 긁혔네. 이거 어쩌나.”

털북숭이가 내 차의 옆면을 보더니 빙충맞은 웃음을 지었다.

그제야 나도 내 차를 보고 인상을 구겼다.

‘아이 씨…….’ 하고 나도 모르게 짜증이 옴팡 터지는데.

응? 하는 표정으로 그 옆의 덩치가 내 몸 쪽으로 코를 갖다 대고 킁킁거렸다.

이제 보니 덩치만 큰 줄 알았더니 인상도 꼭 저승사자 같다.

뭐야, 변태 저승이야?

덩치
“여……. 이 자식……. 술까지 처드셨나 본데……. 깜장 양복에……. 어디 상갓집이라도 다녀오시나…….”

무슨 동굴에서나 들릴 법한 굵은 목소리로 덩치가 말했다.

그제야 나도 이 진드기들한테로 향하는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울컥, 잠시 잊었던 슬픔이 치밀었다.

진드기들이 한 차례 서로를 보며 킬킬거렸다.

그래도 민원은 민원이다.

곱게 넘어가자.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건수야.

건수
“죄송합니다. 피해받은 건 없었던 일로 하시죠. 피차 실수도 있었던 것 같으니.”
털북숭이 운전자
“어이, 고자 새끼. 그럼 삼백에 하지.”
건수
“삼백……? 그게 무슨……?”
털북숭이 운전자
“음주까지 싹, 눈감아 줄 테니 합의하자고, 피해 보상. 삼백.”

어이가 없어 웃는데.

털북숭이가 다짜고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빨리 끝내고, 빨리 돈 감추고, 빨리 장례식장. 빨리.

휙!

어느새 나도 모르게 주먹을 털북숭이의 명치에 꽂았다.

억!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털북숭이가 가슴을 붙잡고 무릎을 꿇었다.

털북숭이 운전자
“이 새끼가…….”

다시 동굴 목소리가 울리고, 덩치 쪽이 못생긴 얼굴을 구기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마주선 순간 훅! 덩치가 날린 주먹을 피하고, 동시에 내가 발을 날렸다.

퍽!

덩치의 가랑이 사이로 내 발등이 들어가 정확히 급소를 찼다.

고목이 넘어가듯 덩치가 우지끈,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제 나 대신 이 덩치가 고자 새낀가…….

생각하는데 다시 핸드폰 진동 소리가 성질을 부리듯 울려 댔다.

에이 씨!

긁힌 차를 한번 보고, 조수석 의자에 둔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는데 막내였다.

건수
“아, 진짜. 확!”

열이 올라 여전히 무릎을 꿇고 캑캑대는 털북숭이의 면상에 주먹을 먹이려다가 참았다.

빨리, 가야 해. 빨리.

일단 민수의 전화를 끊고.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가고 있다고!]

승용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어쨌거나, 잘 해결하면 된다.

이번만 잘 마무리하면…… 그럼, 아무런 문제도 없다.

난 계속 민아 대학 등록금 낼 때까지 업주들 등 쳐서 목돈 마련에 성공할 것이고.

장례식도 상주답게 잘 치러서 엄마 좋은 데로 보내 드리고…….

이 또한 지나가리…….

이 또한…….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져 있는 힘껏 액셀을 밟았다.

멀리 마지막 이차선 도로 전방으로 밝은 조명 불빛이 보였다.

저 커브만 돌면.

거의 다 왔다, 다 왔어.

근데, 응?

룸미러로 무언가가 비치는데.

보니, 아까 그 바둑이다.

뭐야 저, 개새……? 그런데 그때.

쾅!

젖 먹던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았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전방 유리는 서리를 맞은 듯 잔뜩 금이 갔고, 이마에서 한 줄기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

급정거할 때 충격으로 핸들에 머리를 부딪친 모양이었다.

건수
“뭐, 뭐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오 미터쯤 앞, 왼쪽 차선 갓길에 누가 쓰러져 있다.

누가, 누군가……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사람!

씨, 씨……발…….

차 문을 열고 내려서 쓰러져 있는 사람 쪽으로 마구 뛰어갔다.

국방색 점퍼를 입은 채 도로에 엎어진 남자.

엎어진 머리에서부터 흘러나온 다량의 피가 내 구두코를 금방 적셔 들었다.

건수
“저, 저기요! 저기요!”

남자의 몸을 뒤집어 누였다.

우락부락한 얼굴과 턱에 기른 염소수염이 이 와중에도 인상적이었다.

갑자기 쿨럭쿨럭 염소수염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씨……발.

나도 모르게 욕이 자꾸 튀어나왔다.

민아, 화영이, 아내.

돌아가신 엄마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났다.

건수
“아저씨! 아저씨!”

아무리 흔들어도 남자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제, 제길……. 귀를 남자의 코에 갖다 댔다.

날숨도 들숨도 없다…….

쿵.

나도 모르게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는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건수
“죽…… 죽었……어…… 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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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시원하게 펼쳐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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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흥미진진하네요 2회차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