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1. 천강일

꿈 깨는 날

“야, 이 미친놈아. 넌 대체 뭔 생각을 하는 놈이냐? 아니, 도대체 생각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구조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용수가 내게 오후 인사를 건네기에 심드렁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답해주었다.

천강일, 그는 미쳤는가. 그는 대체 뭔 생각을 하는 놈인가.

소방서 동료들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하루 한 번씩은 꼬박꼬박 내게 품는 의문이다.

어릴 때만 해도 나는 나름대로 내가 머릿속 복잡한 놈이라고 여겼는데, 저 말을 한 구백구십구 번 정도 차곡차곡 귓속에 적립한 것 같다 싶게 되자 이젠 나도 헛갈릴 지경이 되었다. 난 대체 뭔 생각을 하는 놈인가. 난 대체 생각이 있는 놈인가, 없는 놈인가 하고.

심지어 불에 타 쓰러져가는 건물 안에서 기껏 구해놨더니만, 구해놓은 여자가 내게 울먹이며 물은 적도 있다.

- 당신 미쳤어요?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불에 그슬린 내 상처에 덕지덕지 반창고를 붙여주며 그렇게 묻던 여자. 지영이라는 이름의 그녀는, 그 뒤로 나와 함께 살면서 내 생각을 날마다 체크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게 의문을 품듯, 나도 많은 이들에게 품는 의문이 있다.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의문이자 생각은 이거다.

‘왜 안 구해주는데?’

21년 전, 뒤집힌 차 속에서 기어 나오며 떠올리기 시작한 의문이다.

‘사람이 죽는데…… 어떻게 그냥 보고 지나칠 수가 있어?’

차 앞쪽으로 기어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부모님을 빼내려고 애쓰며 떠올린 의문이다. 우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 옆의 고가로 지나다니는 차들을 보며 떠올린 의문이다.

핸드폰이란 게 아직은 거의 없던 시대.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차를 멈추지 않았다. 차를 타고 달리면 십 분 내로 공중전화기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한 시간이 넘도록 부모님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을 원망할 마음은 없었다. 가장 원망하고 싶었던 건 나 자신의 무력함이었으니까. 다만, 나는 납득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걸, 어떻게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가 하고.

나란 인간에게 그런 건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야, 강일아. 오늘은 이만 퇴근해라.”

뭔 생각인지 모를 놈을 잠시 격리 조치할 때 나오는 가장 온건한 말. 소방서 내에서 나의 상태를 가장 정확히 체크하는 편인 반장님의 지시가 떨어졌다.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 나는, 조금 전까지 타고 있던 소방차를 두드려서 격려해주곤 서 안으로 향했다. 어차피 피곤한 터라 좀 쉬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했다.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마친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리 크지 않은 낡고 허름한 아파트였지만 나와 내 생각의 감시자, 지영이가 살기엔 적당한 곳이었다.

“나 왔어.”

현관을 열고 안에 들어가자 좁다란 집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싼 물건은 하나도 없지만 깔끔하게 정돈해놓은 집. 그러나 지영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니, 욕실 안쪽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났다. 밖에 지영이의 옷가지들이 나와 있었으니까. 목욕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는데…….

“……지영아?”

욕실 문틈으로 스멀스멀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불이라도 난 것처럼…….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아 뭐야, 뭔 생각으로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그러셔?”

지영이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훈증기의 연기를 몸에 쬐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렇게 힐난했다.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이 계집애가 지금 사람 놀라게 하려고 작정한 건가.

지영이는 안 그래도 원래부터 몸이 좋지 않다. 선천성 관부전증 때문에 툭하면 쓰러지고 기절할 때가 많았다. 그러니 우리는 일종의 공생 관계라고 해도 좋았다. 나는 지영이의 몸을 감시하고, 지영이는 나의 머릿속을 감시하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지영이가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오빠. 나 구멍 의자 하나만 사줘.”

“구멍 의자?”

“왜 포장마차 가면 가운데 구멍 난 의자 있잖아.”

“그건 뭐 하게?”

“거기 앉아서 하면 좀 나을까 해서.”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이쯤 되면 나야말로 지영이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를 물어야 할 차례였다.

“너 지금 뭐 하는 건데?”

“훈증. 이게 자궁에 그렇게 좋다네…….”

그 말에 나는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 역시나 포기하지 않았구나. 지영이는 점점 표정이 차가워지는 나를 보며 애써 미소 지었다.

“걱정 마. 나 많이 좋아졌어.”

좋아지긴 개뿔. 나는 저절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허구한 날 픽픽 쓰러지는 녀석이 좋아지긴 뭐가 좋아져? 일단 치료부터 하고…….”

“이제 치료 그만할 거야.”

“지영아!”

결국 참다못한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지영이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병원 갔다 왔어. 착상관이 좁아져서 더 늦으면 임신이 불가능할 거래…….”

“너 정말…….”

“모험인 거 알아. 위험하다는 것도 알고……. 그래도 나, 우리 아이 갖고 싶어. 오빠도 갖고 싶어했잖아.”

“…….”

그래. 한때는 그런 생각도 했다. 아이가 가지고 싶다고. 우리도 제대로 된 가정을 꾸려 오순도순 살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단은 치료가 먼저지, 저 녀석이 잘못되면 아이가 생긴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 나에게 남겨진 꿈은, 지영이와 둘이서 행복하게 사는 것.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안전하게 늘 지켜주는 것. 그뿐이었다.

하지만 지영이는 좀처럼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오빠. 나 정말 자신 있어. 그러니까 응? 응……?”

하여간 이 고집불통…….

“그러다 너 잘못되면 어쩌려고! 아무튼 시끄러. 난 절대로 허락 못 하니까.”

“오빠도 참. 괜찮다니까 그러네.”

“난 안 괜찮아, 이 멍청아!”

나는 잔뜩 성질을 내며 지영이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왠지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약해지면 안 된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불구덩이 속에서 지영이를 구해냈던 나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인다는 건 녀석을 다시 불구덩이 속으로 처넣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빨을 뿌득 깨물며 지영이에게서 등을 돌렸다.

“오빠 어디 가?”

“몰라!”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대답하고는 집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나는 구급차 보조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퇴근하라 그랬더니 왜 또 기어 나왔어?”

운전석 옆의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반장님이 경계하듯 물으셨다.

“……자중할게요.”

나는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차창 밖을 바라보며 그렇게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구조차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 창밖에선 사이렌 소리를 들은 주변 차량들이 귀찮다는 듯 길을 터주고 있었다.

“야. 천강일. 전화 왔다, 전화.”

반장님의 말에 정신을 차려보니 외투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확인했다. 파란 액정 화면에는 ‘마누라’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망할, 아까부터 계속 전화하네. 그놈의 애, 애.

머리를 벅벅 긁던 나는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반장님이 그 모습을 슬쩍 보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이랑 뭔 일 있었냐?”

우리 대원들 중에 지영이를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나와 함께 녀석을 구해냈던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결혼을 한 것도,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도, 지영이의 몸 상태가 어떤지도 다들 알고 있었다.

“얼굴 보니…… 싸웠구만?”

난 묵비권을 행사했다. 애써 반장님의 시선을 무시하고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반장님도 계속 캐물을 생각은 없었는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후 사고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소방차 내는 완전한 침묵을 유지했다.

사고 현장은 인적이 드문 길 구석에 있는 맨홀이었다. 도착해보니 뚜껑은 온데간데없고, 휑하니 뚫린 맨홀 아래쪽에 어떤 남자가 빠져 있었다. 안쪽에서 횡설수설하는 외침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남자는 취객인 모양이었다.

“이 녀석들, 내가 말이야아~? 어엉? 잘나갈 때는 엄청 잘나갔다고오……! 이런 구멍에 빠져 죽을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엉? 알아들어?”

뭐, 잘 떠드는 걸 봐서 크게 다친 건 없어 보이네.

나와 함께 구급차에서 내린 용수가 뚜껑 없는 맨홀을 바라보며 기가 차다는 듯 중얼거렸다.

“에라. 말세다, 말세. 이젠 하다하다 맨홀 뚜껑을 훔쳐 가?”

그러면서 용수는 나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내가 맞장구라도 쳐주길 원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의기소침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구급차에 로프를 고정하고 맨홀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용수 녀석이 나를 불렀다.

“야! 강일아! 지영이한테 전화 계속 오는데……, 내가 대신 받아줘?”

전화 오는 게 싫어서 일부러 차에 대충 던져놨건만. 나는 짜증스러워져서 고개를 치켜들고 소리쳤다.

“됐으니까 내버려 둬!”

“냉정한 녀석, 너 그러다 벌 받는다, 인마!”

“시끄러!”

다들 왜 날 들볶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네. 나는 신경질적으로 로프를 타고 맨홀을 내려갔다. 그래서일까. 평소에는 하지 않던 실수를 하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몸이 흔들리며, 옆에 튀어 나와 있던 철근에 등이 긁히고 만 것이다. 재빨리 몸을 뒤틀고 철근에서 몸을 떨어뜨렸지만 이미 긁힌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따끔거리는 등을 타고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찢어져 피가 나는 모양이었다. 젠장…….

나는 얼굴을 구기며 연방 한숨을 쏟아냈다.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일진 사나운 날이다.

1 홍염살111 (1화)
공모작 보러가다가 읽었는데  뭔가 가슴이 뻐근해져오네요  계속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