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함께하고 싶은 풍경

# 2012년 3월

괜찮다, 엄마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런던 근교의 하늘은 유난히 낮아 보여서, 힘껏 뛰어오르면 구름이 손에 걸릴 것만 같다. 하얀 화선지를 결대로 찢어 흩은 듯한 구름. 대학 때 배낭여행을 하다 지나칠 때도 느꼈듯 이곳의 초여름 하늘은 언제봐도 어딘가 묘하게 동양적이다.

야트막하게 경사진 돌길을 따라 올망졸망 줄지은 동화풍의 집들, 언덕 마을을 둘러싼 너르고 완만한 초록 들판, 곳곳에서 구수하게 풍겨 오는 스콘 굽는 냄새……. 빨간 모자 소녀라든가 피노키오가 뜬금없이 옆을 스쳐 간다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이국적인 정경이지만, 그 위로 펼쳐진 하늘만은 부산의 초여름 하늘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부산의 하늘을 떠올리자니 왠지 가슴 한 구석이 묵직해졌다. 문득 초조해져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저 적막할 뿐, 엄마는 아직도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심지어 오늘따라 행인 하나 보이지 않는 게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익숙지 않은 곳이라 길이라도 잃으셨나? 오래 있지도 못할 테니 빨리 오셔야 되는데.

초조가 불안으로 바뀌려던 순간, 뒤쪽에서 또박또박 돌길 밟는 소리가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홱 돌아보니 진짜로 반갑기 그지없는 모습이 보였다.

웨이브 진 머리칼에 창백한 얼굴, 고집은 있어 보이지만 순하고 부드러운 이목구비. 어떻게 우리 삼남매를 그리도 억척스레 길러냈나 싶을 만큼 가늘고 왜소한 몸매. 한 발짝 한 발짝을 수줍은 듯 조심조심 내딛는 저 발걸음.

보기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 엄마, 내 한참 기다렸다. 오는 길 힘들진 않드나.

투덜거리면서도 반색하는 내 말을 듣고 엄마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 이래 보니 우리 엄마 참 곱네. 그리 이쁘게 차리느라 늦었구마.

빈말은 아니었다. 단아한 회색 정장에 하얀 여름 카디건을 걸치고 간만에 굽 있는 구두를 신으신 데다, 엷게 화장까지 하셨다. 그래도 엄마는 괜스레 머리칼을 매만지며 얼굴을 살짝 붉히셨다. 아마 칭찬에 머쓱해지신 모양이다. 그 모습이 왠지 어색해 보이기도 하고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해서 나는 슬쩍 엄마를 재촉했다.

— 퍼뜩 가자. 엄마 모시고 다닐 데가 엄청 많다 아이가. 내 배낭여행할 적에 억수로 좋은 풍경들 엄마 못 보여준 거, 두고두고 아까워 죽을 뻔했다 안 캤나. 더 늦기 전에 다 보여줄끼다. 더 늦기 전에…….

끝에 가선 나도 모르게 슬쩍 울음기 섞인 말투가 되고 말았다.

엄마는 부드럽고 차분한 눈으로 나를 차근히 바라보시더니, 가볍게 발돋움을 하며 내 어깨를 끌어안고 도닥여주었다. 언제 맡아도 그리운 엄마 냄새가 코끝을 푸근하게 감싸주었다.

— 와 이리 말이 없노……. 머라 말 좀 해봐라. 엄마 목소리 듣고 싶다.

힘을 잃은 내 목소리에 엄마는 팔을 풀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와 안 되는데? 이렇게라도 엄마 간신히 보는데, 목소리 한 번 들려주는 기 그리 어렵드나?

원망 섞인 투정을 부려봐도 엄마는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뭐라 뭐라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내 귀에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질 않았다.

나는 그저 엄마가 영국의 한 시골 마을 돌길에 서서 저 너머 언덕을 가리키며 서글픈 얼굴로 내게 뭔가 말하는 모습을 혼란스러운 눈길로 바라볼 뿐이었다. 혹시나 그 입술 모양을 잠깐이라도 놓칠까봐, 금방이라도 터지려는 울음을 참으면서.

엄마의 소리 없는 말이 끝나갈 때쯤 문득 나의 귀에 들려온 건, 〈엘리제를 위하여〉의 멜로디였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오르골 소리. 내 휴대폰 벨소리.

그쯤에서 나는 애써 외면하던 것을 새삼 의식하고 말았다.

그래, 이건 꿈이지.

영국 시골 마을은커녕, 나는 부산에선 서울보다도 더 가까운 제주도에조차 엄마를 모시고 갔던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영 그럴 기회 같은 건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차디찬 송곳 같은 깨달음에 진저리를 치면서, 나는 오르골 소리를 따라 순식간에 내 방으로 돌아왔다.

*

[나다, 찬호. 밥은 묵었나.]

아직 멍한 정신에 반사적으로 통화 수락을 했더니, 전화기 너머의 죽마고우가 거슬거슬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아직이다. 웬일이고.”

그렇게 되묻는 중간쯤에야 비로소 녀석이 왜 전화를 걸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찬호는 체념했다는 듯 혀를 차더니 가볍게 투덜거렸다.

[웬일이라 캤나? 니처럼 무심한 새끼들 때문에 경상도 남자들이 욕먹는 기라. 내 생일 다음 날이 니 생일 아이가. 미역국 먹다가 니는 내일 라면이나 제대로 처묵을까 싶어 전화 해봤드니만.]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문지르면서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 저 녀석이 언제부터 저렇게 오지랖이 넓어졌던가. 근 넉 달간 곳곳에서 저렇듯 오지랖 넓어진 사람들을 하도 봤더니 이젠 쓴웃음부터 났다.

잠시 답이 없자 따스한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나 싶은지, 녀석은 어울리지 않게 낙낙한 여유를 부렸다.

[어차피 낼이 주말인데 걍 이리로 내리온나. 내 미역국은 못 끓이도 니 좋아하는 닭볶음탕은 사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벌써 넉 달이 되도록 닭도리탕을 못 먹었다. 안 먹어도 한 달에 두어 번은 꼭꼭 챙겨 먹던 닭도리탕을.

나는 한숨인지 하품인지 모를 것을 내쉬며 가볍게 녀석을 타박했다.

“담배도 쪼개 피우는 주제에 니 지금 여유 부리나. 글고 내 좋아하는 건 닭볶음탕이 아니고 닭도리탕이다.”

억지처럼 들렸던 걸까. 찬호는 헛웃음을 흘렸다.

[실없긴. 그기 그거 아이가? 그라고 니는 서울 사는 놈이 표준어도 모르나? 듣기론 닭볶음탕이 맞는 말이고 닭도리탕은 틀린 말이랬다.]

“그래 니 잘났다. 근데 그리 국어만 파고 있으니까 니가 돌팔이 소리 듣는 기라. 그라고 잘 들어라. 닭볶음탕은 밖에서 사 먹는 거고, 닭도리탕은……, 울 엄마가 해주던 게 닭도리탕이다.”

그렇게 쏘아붙였는데도 녀석은 불쾌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마……, 잘 알아들었다. 그라믄 니 안 올 끼가?]

찹찹한 목소리에 쓸데없이 내 힘이 빠졌다.

“간다, 가. 안 그래도 방금 이삿짐 정리 끝낸 참이라 내일쯤 내리가 아버지 가게 들르기로 했다. 닭은 됐고 밤에 꼼장어나…….”

[자식, 올라믄 진작 그란다고 말할 것이지. 알았다. 오면 낼 아무 때나 문자 치라. 이 바쁜 인턴 나으리가 막바로 병원 땡땡이 까고 출동할 끼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의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땡땡이 치는 기 퍽이나 자랑이다, 이 돌팔이야.”

돌팔이란 말도 허구한 날 들어서 무덤덤해졌나. 찬호는 그냥 낄낄 웃더니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뾰로로로롱.

발랄한 통화 종료음 뒤에는 다시 정적만이 남았다.

시간은 밤 10시 1분 3초.

나는 낯설고 작은 오피스텔 침대에 오도카니 앉아서 멍하니 생각했다.

오랜만에 엄마 냄새. 이것도 나름 생일 선물일지 모른다. 참, 그 하얀 카디건은 누나가 작년에서 사줬다는 옷 같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뜬금없이 영국인지.

그나마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엄마의 그 웨이브 진 머리에 엷게 웃는 모습, 그건 엄마의 영정 사진을 꼭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취업용으로 여권 사진을 찍었다가 그대로 확대해서 영정 사진으로 쓰게 된 그것.

그 사진 속의 미소가 머리 한 구석에 단단히 각인이 된 모양인지, 이젠 엄마를 떠올리면 으레 그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만다. 그러다 연이어 그 사진이 ‘영정’이라는 걸 떠올리는 순간엔 늘 가슴속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아, 이젠 없지….’라고.

찍을 때는 이렇게 될 줄 아마 까마득히 모르셨으리라.

한 점의 피로나 아픔도 배어 있지 않은 엷고 해맑은 미소.

그 미소를 지으면서 엄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나로선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