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리플레이

하루하루가 아무리 힘든 사람이라도, 간혹 세상이 아직 살 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딱히 엄청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닌데도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날. 이를 테면……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한기를 뚫고 오랜만에 따스한 햇살을 느꼈던 날이라든가, 이젠 나도 뭔가 새로이 시작해보자고 당차게 다짐할 수 있었던 날 같은.

오후 무렵의 내가 딱 그랬다. 하지만 그것도 잠들기 전까지의 일일 뿐. 기분이 좋았던 날 밤이면 늘 그렇듯, 오늘도 역시…… ‘그 꿈’이다.

언제나처럼 꿈은 어두침침한 밤거리를 질주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점멸하는 가로등 사이를 뚫고 달리는 차 속에는, 잔뜩 화가 난 여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꿈속의 나다.

“김동현, 이 나쁜 녀석! 왜 이렇게 내 속을 썩이니? 한두 번도 아니고, 내가 못 살아!”

이를 악문 나는 거칠게 핸들을 돌렸다.

비좁은 길목에 들어서자마자 갑작스레 나타난 가로등 불빛이 차창을 긁고 사라졌다. 그 앞쪽에 나타난 것은 수상쩍은 지하 입구.

급히 밟은 브레이크에 몸이 확 쏠리면서도, 나는 곧장 안전벨트를 떨쳐내며 운전석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입구로 달려간 나는 화가 잔뜩 난 듯 파르르 눈썹까지 떨어가며 문 옆의 포스터를 손가락으로 바삐 훑었다. 손가락은, 덕지덕지 붙은 포스터의 중간쯤에서 멈췄다. 그 끝이 가리킨 글자는 이번에도 똑같다.

<커팅 크루(Cutting Crew)>.

동현이가 소속된 비보이 그룹명을 보자마자 나는 계단으로 향하며 코웃음을 쳤다.

“하! 그럼 그렇지, 김동현!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갈 데라곤 떨거지에서 떨거지 사이 아니겠니?”

예쁘게 말하면 ‘잘린 패거리’, 대놓고 말하면 ‘떨거지’라는 그 이름이 나는 늘 못마땅했다. 심지어 이미 같은 이름의 유명 밴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내 머릿속에서 동현이의 커팅 크루는 ‘짝퉁 떨거지’로 자동 번역되곤 했다.

인파를 헤치고 내려간 공연장 안은 이미 열광의 도가니.

실내를 비추는 현란한 조명, 대형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흥겨운 비트. 한껏 들뜬 사람들은 앳된 비보이들의 노련한 퍼포먼스에 취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나는 거기 모인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곧장 대기실로 향했다. 온통 사람들로 빽빽한데도 앞길을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깨를 스친 누군가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지만, 그도 이내 놀라며 물러섰다. 대기실 앞을 지키고 있던 아이도 겁먹은 눈으로 바라볼 뿐.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이 된 여자가 홀로 들어섰을 뿐인데도 움찔거리는 사람들. 하지만 그 여자가 걸친 것이 경찰 제복이라면 지금 펼쳐지는 이 상황도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쾅!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대기실 문을 박차자, 한창 춤 연습을 하고 있던 익숙한 얼굴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중 헤드스핀을 돌다가 나를 보고 놀라서 자빠진 소년, 열아홉 살이 된지 얼마 안 된 동현의 모습이 들어오자 꿈속의 나는 날카롭게 소리쳤다.

“야, 김동현!”

구석으로 허겁지겁 몸을 숨기던 동현이를 잡아 등 뒤로 팔을 꺾었다.

“아, 씨발. 이번이 우리 차례란 말이야!”

현행범을 체포한 양 그대로 끌고 나가다가, 동현이의 말에 더욱 차가워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너네 차례고 뭐고…… 춤 그만둔다고 약속했어, 안 했어?”

“아, 아……. 이번이 마지막! 정말! 엄창 걸고 맹세!”

“김동현! 그런 말! 쓰지 말랬지!”

뒤통수를 때려가며 퍼부어대자 동현이의 원망 서린 눈초리가 내게로 향했다. 건물 앞에 세워둔 승합차 조수석에 구겨 넣듯 태우고 운전대로 향하는 그 짧은 순간, 문을 열고 총알처럼 빠져나가는 동현이.

“이게 어딜 도망가!”

“으악!”

바람처럼 쫓아가 그 뒤를 덮친 나는 악착같이 다시 동현이를 차로 끌고 왔다. 급기야는 오른쪽 손목에 수갑을 채워 조수석 위쪽의 손잡이에 매달기까지 했다.

“뭐야! 이거 안 풀어?”

철컥, 철컥.

얼굴까지 붉혀가며 오른팔을 흔들어대는 동현이는, 내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는 기색이다.

“네가 도망친 게 한두 번이니?”

“네가 뭔데? 네가 내 친누나야?!”

단단히 화가 났는지, 웬만하면 하지 않던 말까지 동현이의 입에서 나왔다.

“16년 한솥밥이면 친누나나 마찬가지고, 예비 경찰이 불량 청소년 선도하는 거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

나는 억지스런 변명을 하며 시동을 걸고 급히 자리를 떴다.

잠깐이라곤 해도 야간 근무 교대 직전을 틈타 저지른 무단이탈, 게다가 사적인 용도로 수갑까지 썼다는 걸 들키면 당연히 중징계감이다. 그걸 뻔히 알 텐데도 꿈속의 나는 흘낏 시계를 곁눈질할 뿐, 그대로 골목길을 나섰다.

고가도로에 이르는 중에도 동현이는 수갑에 묶인 손을 계속 흔들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니까~. 진짜, 진짜로!”

목소리가 어느새 애처롭게 바뀌어 있다.

“그러니까 잠깐 내 말 좀…….”

“시끄러. 넌 이미 내 믿음을 깼어.”

차갑게 끊어 말하는 나를 보며 움찔하더니 동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내가 왜…… 왜 춤추는지 뻔히 알면서!”

나는 그 말에 동현이를 흘겨보면서 받아쳤다.

“그렇게 유명해져서 너네 엄마가 너 찾으면? 찾아서 참 좋아하시겠다.”

동현이가 그런 식으로 말할 때마다 난 더욱 울컥하곤 했다. 그 말이 그저 춤을 추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둘 다 고아라는 건 마찬가지지만 나와 동현이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부모를 떠나보낸 아이와, 부모가 떠나보낸 아이.

어느 게 더 좋고 나쁜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홀로 남겨진 내겐 엄마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있는 대신에 결코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을 거라는 막막한 절망이 있었고, 버려진 동현이에겐 엄마에 대한 갈망과 분노가 혼재된 반면 언젠가는 엄마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미련이 있었다.

그런 만큼 난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고, 동현이는 두 번 다시 버림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경찰이 되기로 한 나와 달리, 동현이는 한눈에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끌 스타가 되고 싶어했다.

“내가 춤추는 거 본 적 있어? 그렇게 봐달라는데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냐고!”

그간의 원망과 갈망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이번엔 내가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동현이의 퍼포먼스 동영상이 인터넷으로 올라올 때마다 몇 번씩이나 재생해 본다는 이야기를, 나는 한 번도 해줬던 적이 없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동현이의 춤 실력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꽤 괜찮은 것 같았다. 반짝이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동현이의 춤은 그냥 춤이 아니었다. 제발 누구든 날 좀 봐달라는 외침. 그 모습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말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추다가도 때로 관객들이 예상치 못했던 반응을 보이면 그대로 무너지거나 실수를 하곤 하던 동현이. 내 눈에 비친 동현이는 그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원할 뿐, 진짜로 춤에 미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결국은 퍼포먼스로 다져진 겉모습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 그때 가서 동현이는 과연 어떻게 될까. 나이가 들고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하나둘 시선을 돌리고 나면 우리 동현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가진 거라곤 맨몸 하나밖에 없는 우리들. 동현이는 공부를 바지런히 해서 든든한 후원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후원금 통장을 착실하게 채워놓은 것도 아니다. 이제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나라에서 주는 정착금 300만원만 달랑 들고 보육원을 나와야 하는데, 대체 어쩌자고 계속 저러는 것일까.

동현이를 볼 때마다 내가 두려워한 건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최소한 네가 학교라도 나가면서 그랬으면 내가……!”

한탄하듯 외치는 나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동현이가 손을 뻗었다.

“줘! 열쇠 내놔!”

동현이의 손은 어느덧 이미 내 허리춤, 거기 매달려 있던 수갑 열쇠를 잡아채고 있었다.

“야!”

악착같이 열쇠를 움켜쥐는 동현이의 손목을 붙들고 나는 덧없이 경고했다.

“놔.”

위협적인 말투에도 동현이는 손을 놓으려는 기색이 없다. 잔뜩 인상을 쓴 채 쏘아보는 동현이의 눈빛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거 놓으라고 했다.”

“싫어! 못 놔!”

팅!

둘이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내 안전벨트가 풀리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열쇠를 빼앗길 새라 덩달아 오른손에 힘을 줄 뿐이다.

끼익!

차바퀴가 도로를 긁으면서 차체가 아슬아슬하게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 안 돼, 안 돼!

나는 꿈속의 나에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탄 차는 이미 중앙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 제발 그만해!

열쇠를 탁 낚아챈 나는, 그제야 동현의 굳어버린 시선을 따라 앞을 바라봤다.

끼기이익-!

괴물처럼 달려드는 차, 반사적으로 핸들을 꺾는 나, 새파랗게 얼어붙은 동현이, 시야를 가득 메운 가드레일…….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뒤섞이는 찰나, 끔찍한 어둠이 나를 덮쳐 왔다.

누나!

영원할 것 같던 어둠이 엷어지자마자, 어딘가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

다.

서서히 눈을 뜬 나는 잘 움직이지 않는 머리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아스팔트 도로 위다. 몸이 차에서 튕겨져 나온 것이다.

나는 온통 뿌옇게 변한 시야 너머로 열심히 차를 찾았다. 이윽고 눈에 들어온 불길할 정도로 낯익은 차. 내가 타고 온 차는 앞부분이 가드레일을 뚫고 튀어나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수석 쪽으로 점점 기울어지면서. 저 아래에는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을 터.

나는 가로수를 짚고 비칠비칠 몸을 일으켰다.

누나! 살려줘!

또 누군가가 나를 부른 것 같은데…….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다 나는 문득 깨닫는다.

그래, 조수석엔 동현이, 동현이가 타고 있었지!

“아아악! 누나! 살려줘! 누나아아아!”

그제야 세상이 확 트인 듯 내 귀에 동현이의 비명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모자이크처럼 산산이 갈라진 차창 너머로, 차 속에 갇힌 동현이는 절규하며 나를 부르고 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봤자 손잡이에 묶인 수갑 때문에 빠져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 동현아, 지금 곧 갈게, 누나가 구해줄게!

힘껏 외치고 싶지만 이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오늘도 이렇게 꿈은 절망의 끄트머리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바동거리던 동현이는 몸을 운전석 쪽으로 기울이더니, 안전벨트를 풀어버리고 몸을 숙였다. 뭔가를 주우려는 듯한 모습. 아마도 열쇠이리라.

- 제발 멈춰, 동현아! 자꾸 차가 흔들리잖아!

나오지 않는 소리로 열심히 외치지만 동현이에겐 닿지 않는다.

내 몸은 가위에 눌린 듯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급기야 세상은 어지러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머리에선 뭔가 뜨끈한 것이 끈적끈적 뒷목을 감싸며 흘러내린다.

시야에 비치는 풍경이, 동현이의 모습이 가장자리부터 점점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그리고 결국은 오고야 만 두 번째 암전.

파직, 머릿속에서 뭔가가 꺼지는 것이 느껴지며 세상이 온통 어둠으로 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