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볕이 좋은 오후. 8번 마을버스 16호 차를 책임지고 있는 최 기사는 간밤에 마신 술 때문인지 자꾸만 밀려드는 졸음을 쫓기 위해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스피커에서 아이돌 그룹이 부르는 시끌벅적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라디오 진행자의 선곡이 마음에 들지 않아 주파수를 바꾸려는데 뒤쪽에서 변성기에 접어든 것 같은 사내아이의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 기사는 주파수를 바꾸다말고 흘끔 룸미러를 쳐다보았다.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교복 삼총사. 한껏 열을 올리고 있는 건 가운데에 앉은 안경잡이였다. 그 왼쪽에 앉은 아이는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한 빼빼 마른 홀쭉이였고, 오른쪽에는 벌써부터 뱃살이 툭 튀어나온 주제에 팔다리는 가느다란 ET 같은 체형의 아이였다. 교복이 눈에 익은 걸 보니 인근의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같았다. 주로 안경잡이가 열띤 목소리로 떠들어대면 좌우의 두 아이가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 재미있게 하나 싶어 최 기사는 볼륨을 슬쩍 낮추고 아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야야, 니들 그거 아냐? 여자를 나이별로 구기 종목 공에 비유하는 거.”

안경잡이가 의뭉스럽게 웃으며 슬쩍 운을 뗐다.

“공? 크리스마스 케이크랑 개에 비교하는 건 들어봤는데.”

홀쭉이가 자신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ET가 홀쭉이의 뒤통수를 찰싹 소리가 나도록 때리며 핀잔을 주었다.

“야, 그게 언제 적 유머인데. 하여간에 이 새끼는…….”

“됐고. 니들 궁금해, 안 궁금해?”

맥이 끊겨 기분 나쁜지 안경잡이가 친구들을 번갈아 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두 아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다. 안경잡이는 피식 웃더니 선심 쓰듯 거만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여자를 구기 종목에 비유하면, 이 꽃다운 10대는 농구라고 할 수 있다.”

“농구? 어째서?”

홀쭉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자식. 머리는 장식이냐. 너 농구 경기 본 적 없어? 농구 선수들이 링을 맞고 튀어나온 공중 볼을 서로 잡으려고 하잖아. 10대 여자의 가치도 그렇다는 거야.”

“오호라.”

홀쭉이가 그때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20대는?”

ET가 물었다.

“20대는 럭비야. 미식축구. 니들 슈퍼볼 경기 본 적 있지? 덩치가 이만한 놈들이 공 좀 잡겠다고 졸라 피 튀기잖아. 태클도 빡 걸고, 공을 잡으면 안 뺏기려고 열라 뛰어 댕기고. 그거처럼 남자들이 목숨을 거는 유일한 나이 대라는 거지, 20대가.”

“오오, 그럴싸하다.”

홀쭉이가 바보처럼 입을 헤벌리며 수긍한다.

“물론, 30대도 제법 인기가 있어. 그래서 30대 여자는 탁구공인 거야. 공 하나에 달라붙는 선수는 농구나 럭비에 비하면 진짜 팍 줄어들지만 공에 집중하는 거나 진지함만큼은 어떤 종목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그렇군. 그럼 40대는?”

ET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40대, 이때부턴 중년에 접어들지. 중년 여자는 골프공이야.”

“골프공?”

“그건 왜지?”

두 아이는 선뜻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안경잡이를 쳐다보았다.

“공 하나에, 남자 하나. 하지만 남자는 그 공만 보면 무조건 쳐서 아주 멀리 날려버리지. 아주, 졸라 멀리.”

안경잡이의 설명을 듣고 두 아이는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킬킬거렸다.

“그리고 그 나이마저 지나고 나면…….”

“지나고 나면?”

안경잡이는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뜸을 들이더니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피구공이야. 공이 날아오면 일단 피하고 보는 거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아이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몰래 이야기를 엿듣던 최 기사도 소리를 죽이며 웃었다.

바로, 그때였다.

“이런 대갈빡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시방 뭐라고 씨부리는 거여. 아야, 허라는 공부는 안 허고 어디서 그런 쓰잘머리 없는 걸 주워듣고 와서 씨부려쌌냐. 이 썩을 넘들아. 가만 듣자듣자 하니까 아주 가관이구만.”

걸쭉한 사투리. 영락없는 욕쟁이 할머니 같은 말투지만 목소리는 묘하게 앳되다. 최 기사는 누군가 싶어서 룸미러를 흘끗 보았다. 뽀글거리는 파마머리에 월남치마를 입은 할머니, 아니 젊은 여자가 교복 삼총사의 머리통을 후려치며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잘 봐줘도 이제 겨우 스무 살을 갓 넘긴 것 같은데 내뱉는 말투나 행동거지는 영락없는 동네 할머니다. 옷차림은 또 어떤가.

“어이, 기사 양반! 뭘 그리 쳐봐야.”

순간 아이들을 나무라던 여자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최 기사 쪽을 쳐다보았다. 그 서슬에 깜짝 놀란 최 기사는 자기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저 여자, 아무래도 뭔가 수상하다.

오말순 여사

현철은 거울을 바라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얼굴에 뭐라도 묻은 줄로만 알았다. 학교에 출근하고 나서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묘하게 불편했다. 그러다가 그 이유를 뒤늦게 발견했다. 새빨간 넥타이. 어머니, 오말순 여사가 손수 골라서 직접 매주기까지 한 넥타이다. 하나뿐인 아들을 위하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여전히 아이 취급하는 어머니가 그리 편치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현철은 고민 끝에 넥타이를 풀어 고이 접은 뒤, 책상 서랍에 넣었다. 오말순 여사가 천리안의 소유자도 아니고 집에 돌아갈 때 다시 매면 그만이리라. 현철은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치고 교수실을 나와 금일 첫 수업을 하러 강의실로 향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가는 학생들이 현철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현철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오말순 여사의 금지옥엽 외아들인 반현철은 명실상부한 국립대학의 교수님이다. 시간강사도 조교수도 아닌 정교수. 오말순 여사의 자랑이자 모든 것. 그래서 동네사람만이 아니라 가끔 처음 보는 행상이나 아주머니도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교수님’이라고.

이유는 간단하다. 오말순 여사가 보는 사람마다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아들 자랑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학교 근처 사우나를 갔다가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현철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 적이 있었다. 연구 논문 준비로 학교에서 며칠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때 며느리를 대신해서 손수 아들 속옷을 가져다주러 왔다가 잠깐 들른 청과물 가게 사장한테 습관처럼 아들 자랑을 했던 모양이었다. 사과 한 봉지 사면서 10분 동안 아들 자랑을 늘어놓는 바람에 여간 난처한 게 아니었다고. 덕분에 현철은 생면부지인 그 남자에게 자기 잘못도 아닌데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도망치듯 사우나를 나와야 했다.

새삼 당시 일을 떠올린 현철은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말순 여사에겐 아들 자랑이 유일한 낙인 것을. 현철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강의실로 들어섰다.

“거기, 창문 좀 열자. 여기가 무슨 고등학교 교실이냐. 강의실이 이게 뭐냐. 먼지가 왜 이렇게 많아. 아우, 목 안 따갑냐?”

현철의 핀잔에도 학생들은 넉살 좋게 웃었다. 현철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칠판에 판서를 시작했다.

‘ageism - 노인에 대한 차별.’

한 줄짜리 판서를 마친 현철은 안경을 꺼내 쓰고 돌아서서 학생들을 죽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낮게 헛기침을 하고 질문을 던졌다.

“자, 보통 노인을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과 그 이유를 말해 볼 사람?”

누구랄 것도 없이 다들 입도 뻥긋하지 않고 침묵. 늘 그렇듯 적극적으로 강의에 임하는 모습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하여간에, 에휴. 자자, 주목. 자식 교육 잘못 시켰다고 집에 전화 안 할 테니까 걱정들 말고. 편견이나 선입견이어도 좋다.”

현철이 긴장을 풀어주자 학생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좋아, 가장 그럴듯한 답을 한 사람은 중간 리포트 면제다.”

현철이 파격적인 제안이라는 듯 칠판을 톡톡 두드리며 말을 꺼내자 그때서야 여기저기서 손을 든다.

“그래, 말해봐.”

맨 앞 열의 남학생을 가리켰다.

“주름하고 검버섯! 늙으면 잔뜩 생기잖아요.”

“또?”

“탑골공원! 거기 가면 노인들이 많잖아요.”

“보일러! 왠지 겨울 되면 하나 놔드려야 될 거 같아요.”

그렇게 말한 건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남학생이다. 썰렁한 농담에 주변 학생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굼벵이! 너무 느려요.”

“퀘퀘한 냄새가 난다. 우리 할머니한테 실제로 나요.”

“얼굴이 두껍다. 나이가 들면 창피한 게 없어지는 거 같아요.”

“걱정이 많다. 우리 할머니는 자나 깨나 모든 게 다 걱정이에요”

학생들의 답변이 줄을 이었는데, 대체로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현철은 쓴 웃음을 지으며 칠판을 톡톡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