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소년은 멀뚱히 서서 불안한 눈빛으로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형은 커다란 아름드리나무에 얼굴과 팔을 대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형에게 숨바꼭질을 제안한 것은 소년의 친구들이다.

소년은 안다. 그 이면에는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래서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다. 친구들은 형을 골탕 먹이는 걸 좋아한다. 형은 항상 쉽게 속는다. 지금도 가위바위보에 져서 술래가 되었다. 처음부터 술래는 정해져 있었다. 여럿이서 작정하고 한 명을 속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언제나 술래가 되는 건, 형의 몫이다. 하지만 형은 매번 술래가 되는데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항상 웃는 얼굴이다.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늘따라 그런 형이 소년에겐 한심하게 보인다. 가끔은 형이 정말로 좋아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런 척만 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소년은 복잡한 신경으로 형의 뒷모습을 보았다. 옷깃 위로 머리카락에 가려진 마스크 끈이 살짝 보인다.

형은 어릴 때부터 거의 마스크를 달고 살았다.

천성적으로 피부 트러블이 심해서 사시사철 두드러기가 몸에서 사라지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 어떤 아이는 형을 보고 꼭 외계인 같다며 놀렸다. 예전에는 그 일로 몇 번이나 그 아이와 주먹다짐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년도 아이들에게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형이 점점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분명히 소년이 동생이었지만 형은 많은 것을 소년에게 의지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형과 비교하며 소년을 추켜세우는 일도 잦았다. 소년은 부담스러우면서도 우쭐해진 적도 많다. 다만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소년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방에서 먹구름이 몰려와 흡사 밤처럼 새카맸다.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기세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우산을 챙기지 않은 것 같다.

소년도, 형도 둘 다 마찬가지다.

옆에서 친구가 소년의 어깨를 툭 쳤다.

이제 떠나야할 타이밍이 온 것이다. 친구는 기대에 가득한 얼굴로 소년을 바라보며 웃었다. 소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다른 아이들은 일찌감치 사라지고 없었다. 어딘가로 숨을 곳을 찾아 떠난 게 아니다. 애초부터 숨바꼭질엔 관심이 없었다. 그건 소년도 마찬가지다. 중학생이나 되어서 숨바꼭질을 좋아한다면 두고두고 놀림의 대상이 될 것이다.

조금 후면, 소년은 친구와 함께 시내 당구장으로 간다.

거기서 자장면도 시켜먹고 담배도 피우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남으면 만화방에 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애초에 숨바꼭질은 할 생각도 없었다.

친구들은 형을 놀리는 걸 좋아했다.

형은 아무것도 모르고 계속 소년과 친구들을 찾아다닐 것이다.

소년이 아는 형이라면 날이 저문 후에도, 한 명이라도 찾기 위해 사방팔방 돌아다닌다. 항상 그랬다.

지난여름에도 형을 술래로 만들고 정작 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귀가했다. 소년의 형은 그런 줄도 모르고 밤새 소년을 찾아 헤매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날 소년의 아버지는 허구한 날 공부는 안 하고 밤늦도록 놀러만 다닌다며 형을 호되게 야단쳤다. 형은 억울해하면서도 한 번도 소년을 원망한 적이 없다. 소년은 형이 착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형에게 자기마저 없다면 아무도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싫어도 늘 두둔하고 감싸는 거라 믿었다.

소년은 알고 있었다.

세상에 순수한 호의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늘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그건 형이 보여주는 호의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형의 호의에 감사할 필요는 없다. 이미 자신은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 있으니까.

이윽고 형이 숫자를 다 셌다면서 이제부터 찾아 나서겠노라고 선언한다.

친구가 늦기 전에 움직이자며 소년을 잡아당겼다.

소년은 형을 흘끔 쳐다보고 재빨리 몸을 숨겼다.

형이 기대에 찬 얼굴로 돌아섰다.

“자, 이제부터 찾는다!”

당당히 선언한 형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소년과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이미 소년과 친구들은 멀리 떠났다.

형은 포기할 줄을 몰랐다.

계속 소년을 찾아다녔다.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형은 문득 아침에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형은 동생이 걱정되어 동생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할 수도 없다.

그런 줄도 모르고 형은 계속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성수야.”

2

성수는 눈을 번쩍 떴다. 꿈을 꾼 거 같은데 어떤 꿈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기분 좋은 꿈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주 끔찍한 악몽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머릿속 어딘가에 그 잔상이 남아있을 테지만, 애써 찾고 싶지는 않았다.

성수는 아내가 깰까봐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욕실로 가서 약부터 챙겨먹고 양치와 세수를 하고 나왔다. 여전히 아내는 세상모르게 잠들어있다. 하기야 이 시각이면 아직 깨어날 시간은 아니다. 아내는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이야 나아졌지만 신혼 때는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상을 받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내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성수는 적어도 자기보다 여러 모로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성수는 까치발로 조심조심 거실로 나왔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려고 드레스 룸으로 가려는데 아이들 방에서 호세가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모에게 ‘자식’이란 뿌리치기 힘든 ‘유혹’ 같다.

성수는 잠시 갈등하다가 아이들 방으로 다가가 살며시 방문을 열어보았다. 방한가운데 나란히 놓인 두 침대 위에 호세와 수아가 사이좋게 자고 있다. 최근에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한 호세는 꿈속에서 품세연습이라도 하는지 이불을 전부 걷어차고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성수는 살금살금 들어가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끌어당겨 호세에게 덮어주었다.

호세가 잠결에 아빠의 손길을 느꼈는지 잠꼬대를 하며 뒤척였다.

성수는 웃으면서 호세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반대편 침대에서 오빠랑 다르게 곤히 자고 있는 수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엄마를 빼닮아선지 수아는 잠버릇도 엄마랑 똑같았다.

성수는 한참동안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거실로 나왔다.

슬슬 운동하러 갈 시간이다.

몇 분만 지체해도 인근 한강공원은 사람들로 붐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운동할 때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게 성수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항상 이 시각에 집을 나선다. 이때만큼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서 좋다.

드레스 룸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성수는 식구들이 깰까봐 발소리를 죽이며 현관으로 갔다.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냈다. 운동화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잊지 않고 세탁하기 때문에 마치 새것처럼 깨끗했다.

성수는 운동화를 신고 복도로 나갔다.

문을 닫고 보니, 초인종 밑에 누군가가 낙서를 했는지 얼룩이 묻어있었다. 손으로 문질러 보았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아마도 유성잉크인 모양이었다. 갑자기 온화하던 성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성수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다용도실로 가서 걸레와 세정액, 그리고 장갑을 챙겨서 복도로 나왔다.

성수는 장갑을 끼고 낙서를 노려보더니 세정액을 뿌리고 걸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잘 지워지지 않았다.

다시 세정액을 뿌렸다. 그러고는 이를 악물고 걸레로 문질렀다. 성수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성수는 소리가 나도록 빡빡 문질렀다. 낙서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걸레질을 했다. 성수는 운동가는 것도 잊은 채 낙서를 지우는 데 열중했다.

“이런, 씨…….”

성수는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낙서는 이미 지워졌지만, 어떤 유해한 성분이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계속 걸레로 문지르고 닦았다.

아주, 집요하게.

3

“으따, 춥다. 벌써부터 추우면 어쩌자는 거야.”

베란다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는 날씨를 탓하며 물고 있던 담배를 어둠속으로 던졌다. 불씨가 살아있는 담배꽁초는 꼬리를 그리며 날아가다가 마침 지나가던 행인의 발아래로 떨어지며 붉은 파편을 사방에 흩뿌렸다. 조금만 궤적이 바뀌었어도 그 행인의 정수리나 어깨에 떨어져 화상을 입혔을 것이다.

“어떤 새끼야!”

행인은 누군지도 모르는 대상에게 욕을 해댔다. 걸쭉한 목소리로 보아 꽤 나이가 있는 아저씨인 모양이었다.

“어떤 새끼긴, 멋진 새끼지.”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불룩 튀어나온 배를 툭툭 두드렸다. 씩씩거리며 전신주를 상대로 화풀이를 하는 행인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는 금세 흥미를 잃었는지 바람에 이마로 흘러내린 다소 긴 머리를 손으로 쓸며 방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머물고 있는 곳은, 베란다에서 바로 안방으로 이어지는 구조의 서민 아파트였다.

방바닥엔 빈 맥주 캔들이 굴러다녔다. 몇 시간 사이에 남자가 마신 것이다.

남자는 그중 하나를 드리블을 툭툭 차면서 몰고 가더니 소파 밑을 겨냥하며 슛을 날렸다. 캔이 데굴데굴 구르다가 소파 밑으로 쑥 들어가자,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는 세리모니를 하며 좋아했다.

“나이스 슛!”

남자는 키득거리며 소파에 몸을 던졌다. 다이어트가 시급한 남자의 몸이 쿠션을 짓누르자 소파가 살짝 기울어졌다. 언제 소파 다리가 부러질지 모를 일이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한눈에도 그런 자잘한 일에 일일이 신경 쓸 타입은 아니었다. 남자는 추리닝 안에 손을 넣고 벅벅 긁으며 다시 꺼내 냄새를 맡아보더니 씩 웃었다. 그러더니 두툼한 손으로 바닥을 더듬어 리모컨을 찾았다. 남자는 채널을 한참 고르다가 늘씬한 모델들이 속옷을 입고 나오는 홈쇼핑 채널에 고정시켰다. 남자가 헤벌쭉 웃으며 손을 추리닝 바지 안에 넣고 다시 자기 물건을 주물럭거렸다.

그렇게 한동안 속옷모델의 몸매를 감상하던 남자는 마치 뭔가를 체크하듯 습관처럼 시계를 보았다. 그러더니 소파에서 내려와 냉장고로 가서 맥주를 꺼냈다. 바닥에 흘려가며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트림을 하고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남자는 반쯤 남은 맥주를 홀짝이며 TV를 시청했다.

분위기가 묘했다. 거리낌 없이 행동하고 있지만 남자의 집이 아닌 것 같았다. 방만 둘러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옷장엔 온통 여자 옷들로 가득하다. 화장대도 그렇고, 방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도 이 남자랑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 입고 있는 추리닝 하의는 빨간색도 아닌 하트가 그려진 핑크색이다. 어지간히 독특한 취향이 아니면 남자는 소화하기 힘든 색상이다.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집안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스티커 사진 중에 남자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아무리 봐도 이 집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점이 많다. 그럼에도 남자의 행동에는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냉장고에서 들어 있는 맥주랑 음식도 맘대로 꺼내먹고 쓰레기도 휴지통에 버리는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