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017(1)

수민은 사랑을 나눈 후 육체가 모두 소진되었을 때를 가장 좋아한다. 갈급한 허기를 채운 후, 포만감과 함께 찾아오는 길고 긴 여운의 시간... 그의 팔을 베고 누워 격정의 순간들을 음미하며 수민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가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행복하니?”

“으응.”

수민이 팔다리를 옹송그려 자신의 몸을 그의 몸에 더욱 가까이 밀착시킨다. 서로의 몸에 핏줄이라도 연결된 것일까? 그의 혈관을 타고 흐르던 더운 피가 그녀의 혈관 속으로 흘러드는 것 같다.

“저녁 먹을래?”

“조금만, 조금만 더 이대로 있자.”

수민이 그의 겨드랑이를 파고들며 끙끙거린다. 행복에 겨울 때의 버릇이다. 그가 그녀의 코끝에 입술을 댄다.

“이럴 때 넌 정말 탐욕스러워. 가져도 가져도 끝이 없잖아.”

“자기는 내 거니까.”

사랑하면 변화하는 것 중의 하나는 소유관계가 모호해 진다는 것이다. 전에는 내 차, 내 집, 내 칫솔이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의 공동 소유물처럼 여겨진다. 그러다가 좀 더 관계가 깊어지면 내 몸조차 내 것이 아니고 상대의 몸이 내 것인 양 착각하게 되어 ‘넌 내 거야!’ 라고 얼토당토않은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억울하지 않고 짜릿한 쾌감마저 밀려드는 것일까?

남혁이 수민의 허리를 끌어당겨 다시금 입술을 공략하려는 순간, 수민이 재빨리 몸을 빼면서 묻는다.

“저녁은 건너뛰는 게 어때?”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유혹의 빛이 어린다.

“좋아. 우리 음식보다 더 좋은 것으로 허기를 채우자.”

키득거리는 수민을 안고 그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천천히 긴 호흡으로.

***

이십 대의 밤은 짧기만 하다. 지나간 밤을 아쉬워할 틈도 없이 눈을 뜨자마자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과 마주한다. 홑이불 위로 수민의 봉긋한 가슴선이 드러나 보인다.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던 그녀가 소리친다.

“경기 시간에 늦겠어.”

홑이불을 끌어당겨 몸에 돌돌 말고 그녀가 화장실로 뛰어간다. 맨몸으로 남은 남혁이 반사적으로 몸을 뒤집다가 엉덩이를 들고 죽는 시늉을 한다. 중요 부분에 뭔가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바짝 치켜든 남혁의 엉덩이에 햇빛이 하얗게 부서진다. 화장실에 들어간 수민이 홑이불을 방으로 던지며 묻는다.

“괜찮아 자기야?”

“아니 괜찮지 않아.”

무척이나 아픈 모양이다. 그가 겨우 대답하며 엉덩이를 더 높이 치켜든다. 수민이 손으로 입을 막고 키득거린다.

“내 칫솔 어디다 뒀어?”

“몰라. 그냥 내 것 써.”

수민이 남혁의 칫솔로 양치질을 하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지난 밤 사랑의 순간을 떠올린 것인지 온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입술 사이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남혁은 사각팬티만 입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방금 전까지 들리던 수민의 콧노래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소리에 덮인다. 그가 잠시 눈을 감는다. 축포처럼 쏟아지는 물줄기 속에 서 있는 수민의 벗은 몸을 상상하는 것이다.

식탁 위에는 계란 프라이와 토스트가 준비되어 있고 방금 전 믹서기에 갈아서 만든 신선한 오렌지 주스 두 잔이 놓여 있다.

샤워를 마친 수민이 식탁 앞에 앉는다. 바스 타월만 걸친 수민의 몸매를 남혁이 의미심장한 눈길로 훑어 내린다.

“참으세요. 우승하려면 체력을 아껴야 하니까.”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닦으며 수민이 미소 짓는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남혁은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기가 아쉬운 모양이다.

“난 레이싱 체력은 따로 있던데.”

“나는 아니거든.”

“그럼 퇴근 후에 예약. 어때?”

“오늘은 안 돼. 매일 밤 집을 비울 순 없잖아.”

“그럼 내가 자기 집에 가면 되지.”

“자기, 정말 못 말리는 남자라는 거 알아?”

수민이 살짝 눈을 흘긴다. 그러나 싫지는 않은 얼굴이다.

***

12명의 드라이버들이 용인 서킷에 모인다. 한국자동차에서 주관하고 우승 상금으로 2천만 원을 내건 ‘포니컵 스피드 레이싱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참가 선수들은 대부분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드라이버들이지만 실력만큼은 만만치 않은 편이다.

아직 한국에는 포뮬러 원(F1)팀이 없을 뿐더러 자동차 경주가 대중 스포츠로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전남 영암에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이 생긴 뒤로는 한국에서도 매년 F1 그랑프리 대회가 열리고 그 영향으로 프로 드라이버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일부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스포츠카의 국산화가 이루어진 점도 카레이싱 문화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매년 열리는 포니컵 대회에 참가신청서를 내는 선수들은 대부분 한국자동차 소속이었는데 올해 경기에는 뜻밖에도 라이벌 회사인 동양자동차 소속 선수 두 명이 참가신청서를 냈다. 다름 아닌 동양자동차 나 회장의 아들 나대로와 딸 나오미이다.

한국자동차 소속 선수로는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인 남혁과 수민이 있고, 그 외에 고신아와 장허수가 참가한다. 또한 재미 교포인 린다홍과 한국자동차 판매회사 사장인 양동선도 출사표를 던진다. 두 사람의 실력은 우승권에서는 멀어 보이지만 진정으로 레이싱을 사랑하는 마니아들이다.

국내 자동차 회사에서 개발한 스포츠카 열 두 대가 스타트 라인에 나란히 서 있다. 드라이버들은 대부분 전문 레이서 복장이 아닌 자유복 차림이다. 각자 개성 있고 튀는 복장으로 멋을 부리고 나와 분위기를 띄우는데 한몫을 단단히 하는 인상이다.

그들은 각자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대개 자동차의 성능이나 연비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새로 나온 튜닝재료나 방법에 대해서 정보를 교환한다. 경기 시간이 임박하자 작업복을 입은 기술진 여러 명이 부산하게 오가며 레이싱 차량들을 점검한다.

대회에 참가한 스포츠카는 모양도 가지각색이고 색깔과 무늬도 다양하다. 배기량에 제한을 두었으되 차종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에서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시판중인 수민의 ‘J카’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J카는 빨간색 바탕에 하얀색의 재스민 꽃무늬가 차체를 온통 뒤덮고 있다.

나오미와 나대로의 차는 동양자동차가 개발한 독특한 외형의 스포츠카 ‘가오리’이다. 가오리는 지면과의 밀착력을 높여 공기저항을 덜 받게 하기위해 차체를 낮게 설계한 동양자동차의 야심작이다.

경기장에 나온 수민과 남혁이 응원하러 와준 동료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수민은 차 색깔과 같은 빨간색 점퍼에 하얀색 스키니 진 차림이고 남혁은 파란 점퍼에 수민과 똑같은 스키니 진을 입었다. 모델처럼 늘씬하고 활기찬 두 사람의 모습에 경기장이 환해지는 것 같다. 남혁의 시선이 동양자동차 팀이 있는 쪽으로 향한다.

나대로와 나오미는 기술진들과 함께 코스 도면을 보며 마지막 작전회의를 하고 있다. 나오미는 형광색 패딩 재킷에 큐롯 차림이고 나대로 역시 비슷하게 튀는 복장이다.

“동양자동차 사람들이야. 나회장의 아들이랑 딸.”

“어쩐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를 알만하다는 표정으로 수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신경 쓰이니?”

“아니. 저런 애송이들이 내 상대는 아니잖아?”

수민이 자신감에 차서 그들을 무시하는 투로 말한다. 남혁을 제외하고 국내 선수 중에는 그녀와 견줄만한 실력을 가진 드라이버가 없다고 생각하는 수민이다.

“애송이가 아냐. 저 남매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소문을 들었어.”

남혁은 아무리 작은 경기일지라도 사전에 경쟁상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서 면밀히 분석하는 치밀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수민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나오미와 나대로가 미국에서 정식으로 레이서 훈련과정을 마친 실력파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들을 견제할 전략을 이미 세워두었다.

“저들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어?”

“저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경기에서 붙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우승을 넘보는 다크호스라는 말이 있으니까 끝까지 경계를 늦추면 안 돼.”

“어쨌든 난 질 수 없어. 상금이 얼만데.”

“물론이지. 여차하면 내가 도울 테니 꼭 우승해라.”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파이팅을 외친다.

“저쪽에 처음 보는 드라이버가 있네.”

스카프를 맵시 있게 맨 린다 홍과 조나단 박을 보고 수민이 관심을 보인다. 조나단 박이 린다 홍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속삭이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 트렌스젠더 특유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어쩐지 가식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양동선이 캔 커피 두 개를 들고 린다 홍에게 다가간다.

“양 사장 실력은 여러 번 붙어보아서 너도 알거고, 그 옆에 있는 중년 부인은 재미교포라는데 레이싱 경력은 꽤 되지만 나이도 있고 우리가 신경 쓸 상대는 아니야.”

“신경 쓰이는 걸. 너무 이쁘잖아.”

수민이 농담을 한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다. 남혁이 린다 홍를 다시 한 번 쳐다보고는 덧붙인다.

“그래도 니가 더 이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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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르오 (1화)
기대돼요. 어떻게 이야기가 펼쳐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