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내겐 너무 특별한 당신

스산하게 흩뿌려지는 빗방울 사이로 빠직빠직 낡은 네온의 불이 들어온다. 왠지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은하 고시텔. 총무 실 입구에 있는 낡은 재활용 수거함에 누군가 잔뜩 웅크리고 있다. 헝클어진 머리로 얼굴을 숙인채 어둠 속에서 들썩이는 모습 이 기괴하기만 하다.

“태양~, 태양~, 미스 태!”

깐깐하고 욕심많은 인상의 여주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찾고 있다. 이때 구석에 웅크리고있던 그녀가 고개를 돌린다. 공실이다. 하루이틀 본 것도 아닌데 여주인은 공실의 모

습에 또 놀란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404호를 청소해 두라 이르고 간다.

404호. 생각만 해도 오싹해진다. 그 방이 오래 가지 못하고 자꾸 사람들이 나가는 이유를 공실은 안다. 그러나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이유이기에 차마 얘기도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 마지못해 걷는 그녀의 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삐거덕 하는 문소리마저 거슬리는 404호. 흔하디 흔한 고시텔 의 방 안 풍경이지만 그녀에겐 반갑지 않은 풍경이다.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번쩍하고 아주 잠깐 방 안을 비춘 사이 공실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런 제길, 보지 말아야 할 것을 그 만 봐버렸다. 공실이 쓰레기를 치우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방을 나서려는데 눈앞에 떡하니 선 할머니 귀신이 다 빠진 치아를 드러내며 공실을 보고 웃는다. 에이씨, 보고싶지 않은데. 이럴땐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다. 겁에 질린 공실이 냅다 내달린다. 오늘따라 고시텔 복도가 100미터 육상 트랙보다 길게 느껴진다.

헉헉거리며 옥탑으로 올라와 방문을 걸어잠그고 부들부들 떠는 그녀를 놀리기라도 하듯 바람인지 귀신인지가 쿵쿵쿵 세차 게 문을 두드린다. 공실은 잠금장치가 못미더운 듯 아예 등으로 문을 막고 기대 앉아 애원해 본다.

“가세요, 오지 마요, 가요, 제발….”

그녀의 주문이 효력이 있었는지 이내 쿵쿵거리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눈을 감은 채 쫑긋 귀를 세워 보아도 아무 인기척이 없다. 휴~ 다행이다. 겨우 감았던 눈을 살금살금 뜨는 그녀. 그런데 그녀 앞에 할머니 귀신이 얼굴을 쑥 들이민다.

“아~ 악~~~!!! ”

그녀의 이름은 태공실. 어쩌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 만 그녀에게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능력, 바로 귀신을 보는 능력이다. 능력인지 저주인지 모르겠으나 아무도 믿어주지 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그녀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비쩍 말라 비틀어진 그녀의 가녀린 몸과 귀신을 능가 하는 퀭한 눈동자, 그리고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진 머리만이 현 재로선 그녀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 생전 처음 와보는 시골 촌동네의 한 허름한 기와집 앞에 창백한 모습으로 서 있다. 하얀색 우비가 그녀의 얼굴을 더 창백해 보이게 한다. 그녀의 시선이 대문 앞에 대롱대롱 매달린 희미한 조등에 멈춰 있다. 손에 든 빛바랜 통장과 도장을 보며 공실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대문안으로 들어선다.

대청마루 가운데 조촐한 제사상과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404 호에서 봤던 할머니 귀신의 얼굴이다. 공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나 싶은 난감한 표정으로 상주들에게 다가가 모기만한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저기요, 할머니가 이거 전해 드리래서…. 장례비에 보태시고, 나머지는 빚갚는데 쓰시래요.”

공실이 내민 통장에는 꽤 많은 돈이 들어있다. 할머니는 평생 허드렛일 해서 어렵게 모은 돈을 자식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통장을 열어보고 놀라는 상주와 가족들을 보며 공실 이 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저기… 그리고 또 전해달라는 말씀도 있는데요….”

눈물이 그렁한 채 궁금한 듯 공실을 바라보는 상주에게 공실이 대뜸 멱살을 움켜쥐고 얼굴을 들이대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강단있는 목소리로 쏘아 붙인다.

“이 썩을 놈아, 니 놈이 또 도박을 하면 내가 와서 니 손모가지 잘라간다. 도박은 절대 안돼 이놈아!”

공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상주와 가족들의 입이 놀라 떡 벌어진 사이,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놀란 듯 냉큼 손을 거두며 공실이 다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 라고 하셨어요. 그럼 안녕히….”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까 싶어 공실이 인사도 하는둥마는둥 돌아선다. 어쨌든 할머니 귀신의 부탁을 들어줬으니 임무는 완수한 셈이다. 이제 공실은 그저 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그런 공실의 뒤로 상주와 가족들의 카랑카랑한 실랑이가 들려온다. 할머니가 남긴 통장을 서로 뺏어들며 자기 몫 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니 공실은 왠지 씁쓸해진다. 대문 앞 먼발치에서 보고 있던 할머니 귀신도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더니 공실에게 고맙다는 듯 눈인사를 하고 희미한 조 등 불빛 너머로 스윽~ 사라진다.

2

“지금 여기 죽은 귀신이 있다는 겁니까?”

시골의 근사한 전원 주택 거실에 엄친아스러운 청년과 그의 비서로 보이는 중후한 남자가 함께 앉아 있다. 중원과 귀도다. 중원이 집주인으로 보이는 50대 중년 남자에게 냉소적으로 독 설을 뿜어대고 있다. 아마도 집주인이 집을 팔지 않겠다고 어깃장을 놓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요. 죽은 아내가 아직 이 집에 있어요. 자기가 예쁘게 가꾼 이 집을 팔고 싶어하지 않아요.”

팔겠다던 집을 지금와서 못팔겠다니, 그것도 죽은 아내를 핑계대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중원이 거실 한켠에 환하게 웃고 있는 부인의 사진을 보며 헛웃음을 짓는다. 골프장 부지 한 가운데서 알박이로 버티겠다는 얘긴데, 어차피 밀어버릴 집, 무슨 핑계를 대든 예쁘다고 돈을 더 줄 순 없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중원이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참으며 협상을 시도해 보지만 집 주인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절대 못판다며 버틴다. 도저히 말이 안통하겠는지 중원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다.

“돌아가신 분이 여기 있다… 좋습니다. 정말로 있다면 함께 협상을 해보죠. 아내가 뭐라고 하십니까?”

중원은 어디 한번 떠들어 보라지 싶다. 집주인이 아내 사진 옆에 있는 꽃화분을 가리키며 아내의 생전 모습을 그리워하듯 간절한 마음으로 넋두리한다.

“저 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 꽃은 아내가 가장 아끼며 키우던 겁니다. 내가 집을 팔 결심을 했을 때 꽃이 배들배들 말라 갔어요. 근데 안팔겠다 딱 마음을 먹었더니 저렇게 다시 활 짝 폈지 뭡니까! 그런데 제가 어떻게 집을 팔 생각을 다시 하겠습니까.”

중원이 꽃을 진지하게 노려본다. 저 따위 꽃을 통해 죽은 아내가 의견을 펼치셨다?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저 꽃과 협상을 하는 수밖에. 중원이 꽃 옆으로 다가가 화분 옆에 있는 분재 가 위를 조용히 집어든다. 가위를 손에 끼고 샥~ 샥~ 차가운 소리를 내며 작동해 보더니 이내 꽃을 노려본다.

“꽃부인, 잘 듣고 의견을 펼쳐 주세요. 이 집을 팔고 싶지 않다는데 저는 이 집을 사야겠습니다. 절대 팔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꽃모가지를 끄덕여 주세요. 아니면 제가 이 꽃대가리를 잘라버리겠습니다.”

중원이 냉랭하고 살벌한 표정으로 가위를 꽃목에 들이대자 집주인이 화들짝 놀라 기겁을 하며 지금 뭐하는 거냐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중원은 꿈쩍도 않고 3초를 센다. 하나, 둘, 셋! 집주인이 말릴 틈도 없이 중원은 보란듯이 꽃모가지를 싹둑 잘라버린다. 꽃이 힘없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당신 미쳤어?”

울컥한 집주인이 중원을 향해 소리를 지르자 중원이 거침없이 되받아친다.

“미친 건 당신이야! 산 사람들끼리 다 끝낸 얘기를 죽은 사람 끌어들여서 다시 엎겠다는 게 미친 짓 아닙니까?”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집주인에게 중원이 담담한 표정으로 계약서를 내민다.

“죽은 부인 의견은 제가 끊어 드렸으니, 산 자식들 의견에 따라 주시죠. 서명하세요.”

침통한 표정의 집주인이 하는 수 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를 집는다. 그를 지켜보는 중원의 표정이 사뭇 흐뭇하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은 홀가분한 느낌이랄까.

전원주택 마당을 나서는 중원의 늠름한 어깨 뒤로 귀도가 우산을 받쳐들고 뒤따라온다. 그의 다른 손에는 계약서가 들려있다. 집주인이 분노에 가득찬 얼굴로 마당으로 뛰쳐나와 중원의 뒤통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의 손에는 아까 중원이 허무하게 잘라 버린 꽃송이가 들려져 있다.

“이 잔인한 놈아! 니가 뭐래도 내 집사람은 여기 있어! 똑똑한 척, 잘난 척, 그렇게 사니까 무서운 게 없지. 눈에 보이지 않는 다고 사람 마음을 이렇게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면 벼락맞아, 이 나쁜 놈아!”

그 말에 중원이 훗,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아냥 거린다.

“전 계속 똑똑하고 잘나게 안 보이는 건 무시하면서 살 겁니다.”

집주인의 분노를 응원이라도 하듯 천둥 번개가 내리친다. 그러자 중원은 귀도가 받치고 있는 우산을 일부러 치우고는 비를 맞고 서서 집주인에게 보란듯이 말한다.

“제가 틀렸다면 까짓거, 벼락 한 번 맞아 드리죠!”

마치 쇼생크 탈출의 명장면처럼 중원이 비를 퍼붓는 하늘을 향해 양 손을 번쩍 치켜든다. 그 순간 우르르 콰광, 번개가 친다. 그러나 소리만 요란할 뿐 중원은 말짱하다. 팔을 치켜든 채 집주인을 한껏 노려보던 중원이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선다.

“저한테 벼락이 내리진 않네요. 하지만 오늘 이 댁은 돈벼락을 맞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의기양양하게 돌아서 가는 중원을 보며 집주인은 저주라도 퍼붓듯 중얼거린다.

“귀신이 있다면 너 같은 놈 잡아갈 거다! 천하의 나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