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정(夢精)

또 시작이다.

아랫도리에 욕지기가 일었다. 열기인지 한기인지 모를 것이 사타구니를 파고들었다. 깊이 잠든 와중에도 허벅지 안쪽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게걸스럽게 먹이를 삼키는 돼지처럼 몸이 푸륵거린다. 욕정은 가둘 데 없는 식욕과도 같았다. 고프니 이는 것이다. 시도 때도, 끝도 없었다.

이강도. 그는 잠들어 있었다.

입맛을 다시듯 우물거리던 강도의 입과 아래턱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입에 문 것이 뭔지는 몰라도 씹어지질 않아 마음이 급했다. 목이 막히고, 뱃가죽이 당겼다.

섹스 몽유병. 이강도는 뭔지도 모를 수면 장애를 앓고 있었다. 잠결에 격렬한 섹스를 하고, 깨어난 뒤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몹쓸 병이었다. 유난히 깊이 잠드는 밤이면 분출할 곳 없는 성욕이 자아를 찾아 그의 몸을 가지고 놀았다.

흐으. 신음이 흘러나왔다.

번들거리는 눈두덩 아래, 눈알이 데굴데굴 좌우로 구른다. 마땅히 꿈을 꾸는 것도 아닌데 꿈속에 든 것처럼 의식이 제멋대로 까무러친다. 짧은 경련이 일어나기를 수차례, 강도는 이불 속에서 몸을 옆으로 틀었다. 바지가 말려 올라가 드러난 무릎 사이에 눅진한 이불이 겹으로 말려, 끼었다.

열 오른 가랑이에 문지르고 비빌 것이 생기자, 강도의 몸이 바빠졌다. 두껍게 말려 부피를 더하고 단단해진 이불이 무릎에서 허벅지로, 좀 더 위로 올라간다. 상체는 여전히 옆으로 누운 채, 하반신만 엎드렸다.

발기한 곳에 이불이 닿았다.

격한 흥분이 아랫도리로 몰려왔다. 동시에 사정감이 올라왔다. 강도의 몸은 어느새 땀투성이였다.

그때였다.

- 이강도!

여자다.

일그러진 눈매에 짧은 경련이 일었다. 느릿하게 움직거리던 눈알도 눈두덩 아래서 못 박힌 듯 얼어붙었다.

동시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잔상.

어깨에 닿을 듯 부드럽게 구부러진 검은 머리가 작은 얼굴을 감싸고 흘러내렸다. 한 손으로 쥐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 얼굴이다. 색이 빠진 피부는 시체처럼 창백했지만 입술은 붉었다. 어떻게 생겼더라. 이목구비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정수리부터 가슴 언저리까지 희뿌옇지 않은 것이 없는데 오직 그 한 쌍의 눈동자만은 선명했다.

어느 날인가 보았던 죽은 강아지처럼.

새카맣고 시커먼 눈.

간헐적으로 들썩이던 강도의 엉덩이가 파도를 타듯 빠르게 넘실거렸다. 누르고 문지르고, 들썩거리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여자를 떠올렸다.

- 강도야!

여자가 그를 불렀다.

새된 소리.

검은 머리가 단발이었던가, 그보다 조금 길었던가. 작은 얼굴은 보잘것없이 평범한 것 같았다. 당연히 그중 어느 것도 뚜렷하게 와 닿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기억나는 거라곤 새카맣고 시커먼 그 눈동자.

으르릉. 이를 갈았다. 울분이 열기가 되어 치솟았다. 오르가즘을 향해 달리는 강도의 허리 짓이 점점 빨라졌다.

해방을 향해 치닫는 애처로운 몸부림. 강도는 침대가 덜컹거릴 정도로 온몸을 떨었다.

그리고 마지막 절정의 순간, 땀으로 얼룩진 그의 눈꼬리에 축축한 눈물방울이 맺혔다.

사정이 끝났다.

강도는 그가 밤마다 근육이 얼얼할 정도로 몸을 흔드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몽중에 몸부림이 지나쳤거니 여길 뿐이었다. 혹은 전날 행했던 폭력에 이유를 달았다. 어쨌거나 그는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간밤의 사정에 관심이 없었고, 속옷을 축축하게 적신 멀건 물기 역시 소변이 새는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커튼조차 없는 삭막한 방 안을 햇살이 파고들었다. 눈이 부셨다.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워있던 강도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때마침 핸드폰에서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 음도 들려왔다.

강도는 잠결에 대충 한 손을 움직여 핸드폰을 집어 들고 문자를 확인했다. 채무자의 이름과 주소, 받아야 할 돈의 액수가 적혀 있었다.

쯧. 강도가 낮게 혀를 찼다.

정오가 다 된 시간에 일어난 그는 집 안 가득 스민 한기에 멀뚱히 주먹을 쥐었다. 손가락을 오므리고 다시 쭉 펴길 몇 번 반복하다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어깨며 뒷목이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컨디션이 저조하니 치우는 손길도 자연 거칠어졌다. 침대에서 일어난 강도가 방을 빠져나와 엉망으로 어지럽혀진 거실을 밟았다.

휑한 거실은 온통 강도의 신발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잠이 덜 깬 그의 눈이 거실을 훑었다.

어제 먹다 버린 도미 뼈가 통째로 굴러다녔다. 누릇한 점액으로 가득한 콧속을 뚫고 역겨운 생선 비린내가 흘러들었다. 강도는 한쪽 발로 큼지막한 도미의 뼈를 거실 구석으로 슥 밀었다. 그리고 화장실을 향해 움직였다.

화장실 안은 더 가관이었다. 거실엔 그나마도 뼈만 남아 있었지만 껍질과 내장을 비롯해,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가 그대로 세면대와 화장실 바닥에 널려 있었다. 하지만 강도는 오물이나 다름없는 그 흔적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맨발로 들어와 습관처럼 발로 밀고, 세면대 앞에 섰다.

“씨발.”

그리고 물을 틀었다.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나왔다. 가만히 손을 대고 있자 얼얼한 감각이 점점 통증으로 치달았다. 강도는 수돗물로 얼굴을 씻고, 이를 닦았다. 입안을 헹굴 때가 되어서야 물은 뜨거워졌다. 모락모락 수증기가 올라오는 그 뜨거운 물을 강도는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꼭지를 눌러 샤워기를 틀고, 비린내가 진동하는 욕실에 뿌렸다.

도미 내장을 쓸어 담은 것으로 보이는 검은 비닐봉지가 물줄기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우그러졌다. 욕실 바닥을 점점이 물들이던 생선 피도 천천히 씻겨 내려갔다. 하수구 구멍으로 모여든 도미 찌꺼기가 배수를 방해해 부연 물이 고였다. 강도는 다시 발을 움직여 생선 찌꺼기를 밀어냈다. 호로록 소리와 함께 물이 내려갔다.

*

이강도는 고아였다. 세상에 널리고 깔린 엄마 없는 새끼들 중 하나. 이강도의 성질은 사회에 부적격하며, 그는 남들만큼의 도덕심을 가지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 황폐한 사춘기를 지나면서, 그는 자신의 마음이 결핍하고 열등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여겼다. 이기적이고 덜 자란 그의 자아는 삶의 모든 불평불만을 쏟아 낼 적절한 대상을 찾기에 이르렀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강도는 고아였고, 엄마에게 버림받은 자식이었으니까.

자신의 죄악을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생모에게 떠넘기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주위 어른들이 그를 근본도 없는 고아 새끼라고 욕해도 스스로 그 사실을 인정해 버리자 그 모든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나를 버린 엄마의 잘못’이 되었다.

만능이나 다름없는 면죄부를 손에 넣은 것이다.

사춘기는 그렇게 지나갔다. 사실 지나간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는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그의 자아가 나이에 맞게 자라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를 버린 엄마’라는 원망할 대상이 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없는, 영원히 용서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몸만 커다란 어른이 된 뒤, 강도의 엄마에 대한 집착은 갈수록 심해졌다. 시멘트처럼 굳은 얼굴과 벽돌처럼 단단해진 팔다리는 그를 깡패, 범죄자, 사채꾼으로 만들기에 충분했고 사람들은 그를 악마 같은 남자라고 불렀다. 그래도 괜찮았다.

엄마에게 버려졌던 그날부터 이강도는 그래도 괜찮은 존재가 되었으니까.

- 이강도!

밖으로 나가려는데 여자가 또 그를 불렀다.

“아, 왜!”

강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환청임을 아는데도 대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반쯤은 이미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널 버려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하는 여자. 머리가 굵기 전엔 하루에도 수백 번 상상하곤 했던 그 짜릿한 장면이 실제로 그의 눈앞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이강도의 쓰레기 같은 인생에 끼어든 여자.

걸걸한 목소리로 고함을 내지른 그가 몸을 돌려 거실 한쪽 벽에 붙여 둔 사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손바닥 크기의 사진 속엔 검은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뒷모습을 보이며 앉아 있었다. 하지만 여자의 뒤통수는 형편없이 찢어지고 파여 성한 구석이 없었다. 강도가 한 손을 들어올려 사진에 꽂혀 있던 단도를 뽑았다. 그리고 날카로운 칼끝으로 여자의 뒤통수를 그어대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라고? 하!”

찌이익. 찌익. 너덜너덜한 종이가 하얗게 찢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진 속의 여자는 형체만 남아 있게 되었다. 강도는 엉망이 된 사진을 떼어 내 바닥에 던져 버리고, 테이블 서랍에서 똑같은 여자의 뒷모습이 있는 새 사진을 꺼냈다.

강도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사진을 노려보다 벽에 걸었다. 그리고 등을 돌려 현관을 향해 걸어 나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현관이다. 강도는 다시 등을 돌려 사진을 마주했다. 새카맣고 시커먼 여자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목표를 정했다. 그가 단도를 쥔 손을 휘둘렀다. 휘익. 작고 날카로운 칼이 거실 공간을 찢고 날아가 정확하게 여자의 머리에 꽂혔다.

탁.

수백, 수천 번이나 해 왔던 짓이다.

그가 던진 칼날은 절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