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할아버님이 늘 말씀 하셨다. 인생 종치기 싫으면 절대 상종해선 안 되는 여자들이 있다고.

첫째, 빚이 많은 여자.

둘째, 범죄자를 가족으로 둔 여자.

셋째, 깡패가 찍은 여자.

넷째, 주사부리는 여자.

함봉희는 이 넷을 모두 갖춘 여자였다.

아~ 생각만으로도 한숨이 나온다.

이제 그녀와 나의 아주 긴 이야기를 시작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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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단독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서울의 달동네.

그 중에서도 산 밑 언덕에 위치한 2층 양옥집이 함봉희가 살고 있는 집이다.

정확히 말하면 불법증축 옥탑방. 전용면적 15제곱미터의 원룸이다.

여름엔 더워 죽고 겨울엔 추워 죽는 곳.

어쨌건 봉희는 그녀의 엄마와 함께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3년 전까지는...

어느 햇볕 좋은 날, 그녀의 엄마는 급성백혈병으로 이 동네 가장 높은 옥탑 방에서 점프해 천국으로 직행했다.

집주인의 예상과 달리 홀로 남은 그녀는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를 보내고 방에 들어와 누웠을 때, 그녀는 생각했다.

둘이 누웠을 때 보다 혼자 누웠을 때 더 좁은 방이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워 아련한 눈으로 하늘을 보던 엄마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래서 이 거지같은 방을 끔찍이 아끼는 지도 모르겠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영원히 이곳에 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하지만 그 바람은 오래가지 못할 듯하다.

몇 년 전부터 불어온 재개발 붐에 조용하던 동네가 들썩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네 맞은편에 새로 고층빌딩이 들어서더니 하늘을 반 토막 냈다.

매일같이 테트리스같은 블록이 내려왔다.

갖가지 모양의 블록이 차곡차곡 쌓여 그녀의 숨을 막히게 했다.

미적 감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콘크리트 블록은 아침엔 태양을 가리고 밤엔 달빛을 삼켰다.

이제 봉희에겐 빅뱅의 ‘붉은 노을’과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를 듣는 것이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떡장사
"찹쌀떡~ 망개떡~"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듣고 있던 봉희가 고개를 빼고 골목을 내다봤다.

떡상자를 짊어진 대머리 아저씨가 집 앞 구멍가게를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봉희의 눈이 번뜩였다.

평소 돈은 쓰는 게 아니라는 지론을 깨고 우당탕탕~ 1층까지 내달렸다.

오늘따라 엄마와 함께 나눠먹던 망깨떡이 그리웠던 것이다. 아님 배가 고팠을지도.

봉희
"아저씨~~~"

봉희는 아저씨와 망개떡 값을 흥정하느라 10분을 허비했다. 그래도 10% 디씨가 어디랴...

의기양양한 표정의 봉희가 망개떡 한봉지를 들고 옥탑방으로 돌아왔다.

봉희
“봉순아 안 돼! 거기 앉아. 언니한테 혼난다.”

원룸을 뛰어다니던 비글 ‘봉순이’.

온통 얼굴에 흰 전분 가루를 묻히고 빠끔히 봉희를 쳐다보고 있다.

망개떡 반 조각을 물고 봉순이를 노려보던 봉희가 입안에 든 떡을 오물오물 씹어 꿀떡 삼켰다.

봉순이가 아쉬운 듯 봉희의 입 주변에 묻은 떡고물을 핥는다.

와락! 봉희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 봉순이를 끌어안았다.

액자 속에서 두건을 쓴 봉희모와 봉희, 어린 강아지 봉순이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벌러덩 누운 채 사진을 보는 봉희는 왠지 서글프다.

방의 크기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이듯 사진이란 것도 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변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봉희
“니가 더 먹었으니까 얌전히 있어라. 언니 지금부터 정말 중요한 일 해야 되니까.”

봉순이 바닥에 엎드리더니 주먹을 쥐고 으샤으샤하는 봉희를 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봉희
“너와 나의 생존이 걸린 문제야. 투비 오아 낫 투비. 댓 이즈 퀘스천! 오케이?”

인간이 재밌는 건 딱히 답을 구하지 않으면서도 질문을 던지는 태도다.

어쨌건 봉순이는 모든 개들이 그렇듯 예의 맑은 눈빛으로 봉희를 보고 있다.

봉희가 식탁 옆에 놓인 와인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이 집과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는 고급 와인냉장고 위에 빼곡하게 메모를 한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봉희가 섭씨 5도씨로 맞춰져 있는 와인냉장고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짜잔~~그 안엔 작은 술 단지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봉희가 술 단지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서 식탁위에 내려놓았다.

술 단지를 바라보는 봉희의 얼굴에 긴장과 초조함이 역력했다.

봉희
“봉순아 어때? 성공한 거 같아? 이거 꼭 성공해야 되거든. 아부라카 아부라카~”

눈을 감고 주문을 외는 봉희.

어쨌건 분위기에 맞게 봉순이 컹컹 짖는다. 어떤 주인을 만나든 절대 굶지 않을 개다.

봉희
“그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좋았어. 그럼 어디 한번 열어볼까?”

봉희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조심스럽게 항아리 뚜껑을 열고는 킁킁 냄새를 맡았다.

기분 좋은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자 비로소 봉희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온몸이 쾌감으로 부르르 떨려왔다. 아마 어떤 오르가즘도 이보다 더 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그녀는 딱히 비교할 만한 경험을 갖고 있지 못했지만. 뭐 그 사연은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봉희
“음~ 스멜스 굿. 그럼 맛을 볼까?”

봉희가 싱크대에서 작은 국자와 컵을 가져와서는 신중하게 술 단지 안의 술을 떠서 컵에 담았다.

투명한 유리컵에 검은색 술이 반쯤 담겼다. 붉은 혀를 살짝 내밀며 술잔에 입술을 가져가는데.

벌컥 옥탑방의 문이 열리며 한 덩치하는 진주가 무섭게 안으로 들어섰다. 족히 백킬로는 가쁜 할 것 같은데.

진주
“야! 이 기집애야! 집에 있으면서 왜 전화 안 받아?! 죽을래? 걱정했잖아!”

이런! 불시에 들이닥친 주제에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큰소리라니. 도대체 둘 사이는 무슨 관계일까?

봉희와 진주.

둘이 만난 건 10년 전이었다.

그러니까 둘 다 중학교를 다닐 때였다.

동네 뒷골목에서 진주가 빵을 먹다 삥을 뜯기고 있는 봉희를 봤던 것이다.

정의감에 불타는 성격의 진주가 빵을 입에 문 채로 달려가 바람개비처럼 일진들을 공중에 날려버렸다.

이건 묘사가 아니고 사실이다.

감동한 봉희가 진주에게 햄버거를 3개쯤 사주었고 그날 이후 진주는 몸이 작고 약한 봉희를 친동생처럼 챙겼다.

봉희의 집이 망하고 빚쟁이들한테 시달릴 때도 진주는 그림자처럼 봉희의 옆을 지켰다.

봉희
“노크 좀 해. 지금 막 성스러운 첫 시음을 하려던 순간인데.”
진주
"너 그거 엄청 야하게 들리는 거 알아?"
지만
“벌써 백일 된 거야? 나도 한 잔 줘.”

진주를 따라 들어오던 지만이 술을 보고 반색하며 끼어들었다.

큰 신장에 바짝 마른 지만은 진주와 함께 푸드 트럭을 운영 중인 그녀의 남자친구다.

3년 전에 시장에서 나란히 좌판을 놓고 양말과 속옷을 팔았는데, 둘 다 쫄딱 망하자 남은 돈을 합쳐 함께 푸드 트럭을 시작했다.

거기다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상황에 이르자 둘은 아예 서로의 방값을 모아 같이 살기로 의기투합했다.

가난이 둘의 사랑을 이어준 큐피드였다니 아이러니였다.

왜 잘 살던 커플이 성공하거나 횡재를 하면 헤어지는 것일까?

더 행복하고 끈끈해 져야 하는 거 아닐까? 쟤들도 그럴까? 둘을 보며 봉희는 궁금했다.

진주
“누룩 띄운다. 수국 만든다. 요란을 떨더니 해냈구나. 완전체!”
봉희
“쉿! 중요한 순간이다. 건드리면 살인난다.”

봉희가 술잔을 꼭 감싸 쥐고 입술을 동그랗게 모은 후 혀를 살짝 내밀곤 술 한 모금을 삼켰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커다랗게 입을 벌려 술을 한방울도 남기지 않으려 탈탈 털어 넣었다.

음미하기 위해 가르르르~ 입 안을 몇 번 행구더니 가글까지 하는데.

진주와 지만이 지랄하네 하는 표정으로 봉희를 보고 있다.

꿀컥! 마침내 봉희가 목구멍 깊숙이 술을 삼켰다.

정적이 흐르고 마침내 터지는 탄성 캬~~.

참지 못한 진주가 봉희의 입에 코를 갖다댔다. 벌어진 봉희의 입안으로 달달달 떨고 있는 목젖이 보였다.

진주는 먹을 것 앞에서는 늘 이성을 상실했고 지만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참 섹시하다 생각했다.

진주
“죽여? 짜릿짜릿 해?”

봉희가 붉은 혀를 길게 뽑아 입술에 남아있는 술을 깨끗이 핥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진주와 지만을 향해 슥!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봉희
“사.망.유.희"
진주
“기집애. 나도 한 잔 줘. 같이 느끼고 싶어!”

지만이 놀라서 소리쳤다.

지만
"뭘 같이 느껴!"
봉희
“부정 탄다. 주둥이 치워라.”

봉희가 달려드는 진주를 피해 냉큼 술 단지의 뚜껑을 닫았다.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시던 진주가 고개를 돌리자 지만이 봉희가 마시고 남긴 술잔에 코를 박고 개처럼 핥아먹고 있다.

'이런 개 새.......'

하마터면 입밖으로 내뱉을 뻔 했다.

지만
“봉희야, 이 술 진짜 맛있다. 입에 착착 감겨.”
봉희
“진짜?”
지만
“그래. 내가 마셔본 전통주 중에 최고! 일단 향이 죽인다. 뭘 넣은거야?”
봉희
"비밀이지롱. 봉순이도 이 향은 못 맞춰. 나의 필살기거든! 호호호"

갑자기 진주가 지만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한 마디 내뱉었다.

진주
"니가 마신건 술이 아니고 침이야! 침! 이 변태새끼야!"

둘이 싸우거나 말거나 봉희가 봉순을 끌어안고 좋아하는데 갑자기 진주가 봉희의 팔을 잡았다.

진주
“지랄 끝났으면 이거 입고 나가자.”

진주가 검은 봉지 안에서 꺼낸 미니스커트를 봉희에게 내밀었다.

봉희
“이게 뭔데? 손수건이야?”
진주
“치마야! 오늘 니 생일 파티 하기로 했잖아. 화끈하게 놀아야지.”
지만
"함봉희의 24번째 생일! 축하해야지!"

생일을 맞은 당사자보다 지만이 더 신 난 것처럼 보였다.

봉희
“파티는, 그냥 옥상에서 삼겹살이나 구워먹자. 나가봐야 다 돈이야.”

봉희가 시큰둥해하며 술 단지를 다시 와인 냉장고에 집어넣는데 진주가 비장의 낚싯밥을 던졌다.

진주
“너 좋아하는 돈 벌러 가는 거야! 울 오빠가 사오정한테 뇌물을 얼마나 멕였는데.”
봉희
“돈?!”

봉희의 눈이 반짝였다.

진주
“와! 저 기집애 눈빛 살아나는것 봐.”
지만
“사오정이라고 나랑 예전에 같이 일하던 형인데. 그 형이 얼마 전에 퀸으로 옮겼거든. 그 클럽이 강남에서 진짜 핫태, 핫태야.”
진주
“클럽에서 돈을 어떻게 버는데? 설마 둘이서 날 팔려고?”

봉희가 양팔로 몸을 감싸며 진주와 지만을 노려 보았다.

진주와 지만의 입에서 ‘아, 저 미친......’이란 말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진주
“이 양심을 된장에 발라먹은 년아! 누가 널 사! 울 오빠가 왜 하필 그 비싼 클럽에 들어가려고 용을 썼겠냐. 거기서 10주년 이벤트를 하는데. 딱 너를 위한 이벤트야. 됐냐?”
봉희
“난 그런 싸구려 구라는 못 믿겠거덩.”
진주
“구라? 1등 상금이 프리미엄 UHD TV. 자그마치 5백만 원짜린데.”
봉희
“리얼?”

봉희의 눈이 빛의 속도로 획 돌아갔다.

1화 끝

1 헤이 (1화)
봉희야 힘내렴~~!
1 웅치키치키 (1화)
봉희의 매력에 빠졌어요~~ 보다보니 시간이 훌쩍!
1 짱뽐 (1화)
봉희야 힘내렴~~
1 정태완 (1화)
알콩달콩 재밌네요. 봉희야 화이팅!
1 대박 (1화)
잼있네요~봉희야~
1 오뚜기 (1화)
봉희 이야기로 빠져듭니다.
1 물고기자리 (1화)
등장인물들 묘사도 시원시원하고, 직설적이라 더 마음에 듭니다. 다음이야기도 궁금하네요~ 봉희라는 이름도 친근하면서 매력있네요~~^^
1 걷는새 (1화)
소재가 재미있네요~ 잘 읽겠습니다~ 봉희야 화이팅!
1 Pp (1화)
재미있겠어요~ 정주행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