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광야에서 이별하다

초가을의 바람이 메마른 광야를 휩쓸고 지나갔다.

무영은 부상당한 몸으로 쇠사슬에 손목과 발목을 묶인 채 힘겹게 걷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보다는 뒤따르는 난민들 속의 해령이 더 걱정이 되어 미칠 지경이었다.

탐스럽고 고운 머리카락이 귓밑까지 싹둑 잘리고, 눈빛은 어둡고 공허했다.

하얗게 질린 창백한 뺨에는 검정칠을 하고 홍매화 꽃잎같던 입술마저 거칠게 부르트고 무영이 불러도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를 보자마자 달려와 품에 안기던 아이가 아니었다. 평소의 해령답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어젯밤 추방자들과 난민들의 야영 중에도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온 몸을 웅크린 채, 이리 가까이 오라는 말에도 꼼짝을 안하더니 무영이 잠든 척하자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다가와 등에 뺨을 대고 누웠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오는 것을 느낀 다음 순간,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등이 눈물로 젖어드는 것을 깨달았다.

뒤돌아 무슨 일이냐고 묻고 안아주고 싶었지만 오는내내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해령이 도망칠 지도 모를 일이었다.

혹여 그가 깰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우는 것이 분명한데, 모른 척하고 있으려니 애가 탔다. 그러나 이렇게 우는 해령을 곁에 두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차갑게 식은 땅의 냉기가 몸 속으로 파고 들어 해령에게 체온이라도 나눠 주려고 잠결에 몸을 돌린 척하고 그대로 그녀에게 몸을 붙였다.

쇠사슬에 묶인 팔로는 그 아이를 안아 줄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해령은 울음을 멈추고 숨죽이다가 무영이 깨지 않은 것을 확인하더니 언제나 그렇듯이 그의 가슴에 파고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훌쩍거리다가 새벽녁이 되어서야 설핏 잠이 든 것 같았다.

그제서야 무영은 눈을 뜨고 해령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고운 머리카락이 거칠게 엉망으로 잘려 있었다. 작은 칼로 마구 잘라낸 것이 분명했다.

[누가 이런 것인가, 대체 왜?]

분노가 그의 몸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누가 이 아이에게 이런 짓을 했는지 알게 된다면 단숨에 그 사람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여윈 뺨 위에 눈물자국이 검정칠 위에 또렷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잠들었는데도 가끔씩 몸을 떨며 울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정명태자의 역모로 광중제가 폐위되어 백무국으로 도망치고 그가 감옥에 갇혔을 때도 이러지 않았다.

울기는 커녕 무영의 부상 부위를 살펴 꼼꼼히 치료하고는 황후와 태자비에게 간청해서 무영을 구하려는 결의에 불타 오히려 그를 다독였다.

해령
무영, 걱정하지마. 널 구하기 위해서 난 뭐든 할거야

검고 맑은 눈망울이 반짝거리고 뺨은 흥분으로 분홍빛을 띄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중에도 자기를 구하겠다고 그 작은 주먹을 불끈 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죽음을 앞 둔 상황에서도 무영은 마지막으로 해령을 보고 가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그가 다른 장수들의 목이 날라가는 형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추방령을 받은 이때 해령은 내내 울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도 무영을 불안하게, 두렵게 만들었다.

무영은 잠든 해령의 길고 촘촘한 속눈썹이 눈물에 젖어 빛나는 것을 보며 그녀를 바싹 끌어당겼다.

[울지마라, 나의 작은 새]

날이 밝아 다시 길을 나선 이후에 해령은 무영에게 떨어져 걸었고, 무영은 자주 그녀를 찾아 뒤돌아보았다.

한낮의 햇살이 머리 위를 지난 늦은 오후에 무영은 광야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 족히 수십마리의 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서쪽 지평선쪽에서 등장한 이들은 금위군이었다. 정명태자, 아니 이제는 태중제의 직속호위대가 국경 근처까지 나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다가오자 난민 무리 속의 해령이 무영에게 급히 달려왔다. 그리고는 그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아이의 따뜻한 체온과 함께 절박한 울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금위군들이 그들을 에워싸더니 몇몇 장수가 말에서 내려 해령을 그에게서 억지로 떼어내려했다.

해령
싫어, 싫어

해령은 울부짖으며 그를 놓치 않으려하고 금위병은 억지로 무영의 목에 두른 해령의 팔을 풀려고 들었다.

무영
조심해, 다친단 말이다

무영이 그들을 만류해도 금위군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해령이 무영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메마르고 거친 입술이 아프도록 짓눌러왔다.

해령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잊지마.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금위병들이 그녀를 무영에게 떼어내서 끌고가자 해령이 미친듯이 악을 썼다.

그 모습을 본 무영이 해령에게 다가가기 위해 맨몸으로 그들을 공격했다. 강인한 그의 어깨에 금위병들이 나가 떨어졌지만, 곧 수십명이 그에게 달려들어 무참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해령
안돼, 안돼, 때리지마. 때리지마. 무영에게 손대지마.

해령의 목소리는 이미 쇳소리가 날 정도로 갈라져 있었다. 피를 토할 듯이 절규했다.

태중제
멈춰라

금위병의 뒷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무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이 시각에 정명태자, 아니 이제는 태중제가 중경을 비우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역모 끝에 아버지 광중제를 몰아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지금 중경은 혼란 그 자체일 것이었다.

[왜? 그가 여기에 있는가]

말 위에서 무릎을 꿇린 무영을 내려다보는 태중제의 표정은 차가웠다. 금위병들의 폭행으로 눈두덩이 찢어지고 입술이 터진 무영은 피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태중제를 노려보았다.

태중제
널 살리기 위해 해령은 나와 거래를 했다

태중제가 입을 열자 해령이 발작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해령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무영, 듣지마. 사실이 아니야

태중제는 악을 쓰는 해령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영의 눈을 마주보았다.

태중제
그녀는 이제 내여자다

가슴을 찢어놓을 것만 같은 처절한 비명이 울리고 해령이 혼절해버렸다.

무영은 머릿 속이 새하애지는 것과 동시에 온 몸을 관통하는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깊은 신음을 토해냈다.

광야의 대지 위로 부는 바람 속에 옅은 피비린내가 배어 있었다. 그의 입속에 가득 고인 핏물때문일지도 몰랐다.

제1화 작은 새, 품에 날아들다

밤이 깊었지만 아버지 최건 장군은 말을 멈추지 않고 강을 따라 계속 내달렸다. 열 네 살의 무영은 묵묵히 아버지를 따랐다.

그는 말 위에서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지만 결코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았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다리 안쪽이 쓰라릴 정도였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달이 어두운 하늘에 외로이 떠서 두 부자(父子)의 앞길을 밝히고 있었다. 검은 강물 위로 달빛이 부서져 흐르고 있었다.

마침내 어느 좁은 산길에 들어서자, 아버지가 멈추더니 사방을 바라봤다. 길의 끝쪽에 작은 불빛이 깜박거리며 반짝였다.

최건
가자, 거의 다 왔다

그들이 다가갔을 때 중년의 어느 여인이 초롱불을 든 채 서 있었다.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묶고, 고요한 눈빛을 가진 여인은 소박한 옷차림이었지만 어딘지 기품이 있었다. 아버지가 말에서 내려 그녀에게 목례를 건넸다.

유정
다행히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찾아오셨군요
최건
부인은 어떠십니까?
유정
위독하십니다. 오늘밤을 넘기지 못하실 겁니다
최건
서두르시지요

아버지와 무영은 여인을 따라 좁은 산길을 좀 더 들어갔다. 산 속의 어둠은 유난히도 깊고 짙었고, 바람이 불때마다 무성한 잎사귀들이 몸을 비벼대는 소리가 들리고 이름모를 새가 구슬프게 울었다. 무영은 조금 두려운 마음에 아버지에게 바싹 붙어서 부지런히 쭞아갔다.

선명한 불빛 하나가 눈에 들어오자, 아버지의 발걸음은 한층 빨라져 무영은 거의 뛰어야 하는 정도였다. 마침내 그들은 제법 큰 신당같은 집 앞에 이르었다.

안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문이 열리자 마자, 무영은 눈 앞의 광경이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음이었다. 그것도 외롭고 슬픈 죽음의 향기가 방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

무영은 6년 전, 이화공주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침상에 누워 있는 창백한 여인의 눈빛은 슬프고 애틋했다. 이화공주도 그런 눈으로 그를 보았었다. 그리고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밖에 나가 놀라고 말했다.

정원에서 놀다가 문득 싸한 기분이 들더니, 이상하리만치 슬퍼져서 무영은 어머니의 처소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마자 그는 어머니의 몸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때 무영은 내실 가득 들어찬 죽음의 기운이 그가 열어놓은 문을 통해 나가는 것을 느꼈다. 차갑고 무거우며 무섭도록 슬픈 기운이었다. 뒤이어 밖에서 불어온 바람이 어머니의 연보라색 치마자락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최건
부인, 제가 왔습니다

무영은 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에 과거의 기억에서부터 깨어나 초라한 신당의 내실로 돌아왔다. 여인의 손을 잡고 있는 작은 아이를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아이는 울다가 지쳐 때때로 흐느낄 뿐이었다.

여인
장군을 만나고 가게 돼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여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여인
이 아이를 거두어 주십시오
최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 아이를 제 식구로 삼을 것입니다
여인
아드님은...

최장군이 무영의 팔을 잡아 여인에게로 이끌었다.

최건
이 아이입니다. 이 아이가 무영입니다

여인이 손끝으로 무영을 불렀다. 무영은 여인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여인의 손이 무영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아이의 손 위에 그의 손을 포갰다. 작고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이었다.

여인
부디 이 아이를 아껴주고 소중히 해다오. 그 은혜는 다음 생에라도 꼭 갚으마

여인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 뺨을 타고 내려와 베겟잎을 적셨다. 간절한 눈빛이었다. 무영은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인은 그 답을 듣기 위해 지금까지 버텨온 것이다.

무영
걱정마세요. 반드시 그리 하겠습니다

무영의 말에 여인은 미소를 지었고, 눈을 감았다. 뒤이어 아주 짧고 격한 호흡이 있었고, 이윽고 무영과 아이의 손을 꼭 쥐고 있던 여인의 손이 맥없이 떨어졌다.

아이
어머니, 어머니

아이가 다급하게 여인을 불렀다.

*

여인의 시신은 돌로 만든 제단 위에서 불태워졌다. 아버지와 무영을 마중 나온 중년의 여자는 유정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미 장례준비를 해두었고, 향유를 바른 여인을 화장했다.

불길이 타오르는 동안 유정은 달의 경전을 읽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 오롯이 빛나는 달이 활활 타오르는 불을 무심히 비추고 있었다. 꽃과 향유 그리고 구슬픈 읊조림, 간간히 들리는 아이의 힘없는 울음소리가 전부였다.

새벽의 여윈 햇살이 숲속 사이로 비추일 때가 되어서야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최장군은 신당 옆 땅을 깊게 파고 잔해를 묻고 나서야 아이들을 살펴 보았다. 무리한 여정에 지쳐 있었지만 무영은 잘 버텨 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달랐다. 거의 탈진 상태였다. 바로 떠나기는 어려워 보였다. 유정이 아이를 신당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장군도 그 뒤를 따랐다.

신당에 들어가기 전에 무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빽빽한 대나무숲이었다.

그 안에 낡은 신당이 비밀스럽게 자리잡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대나무 잎사귀들이 쏴아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두려운 마음이 든 무영은 서둘러 신당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기진맥진해서 금새 잠이 들었다.

최건
올해 몇 살입니까?

장군이 아이를 바라보며 유정에게 물었다.

유정
이제 열살입니다

유정이 장군과 무영에게 끼니가 될 만한 떡과 차를 내왔다.

최건
두어 시간 후에는 떠나야 합니다. 교주님께서는 아이와 함께 하시지요
유정
네, 그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 부르시면 안됩니다. 유모라고 해주세요
최건
어찌..교주님을..
유정
이미 다 지나간 일이고, 저는 신력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그리고 남이 알까 두렵습니다. 제 과거가 아이에게 좋지 않을까 그러하니 그리 해주세요

무영은 아버지와 여인의 말을 듣다가 까무룩 졸고 말았다.

꿈 속에서 그는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 서 있었다. 어디선가 꽃향기가 흘러오고 있었다. 그리고 노란빛 작은 새 한 마리가 그의 품으로 날아왔다.

무영은 어쩐지 행복했다. 어머니가 떠난 이후 처음이었다.

잠결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무영은 잠을 깼다. 눈을 뜨지마자 마주친 것은 아이의 검고 맑은 눈이었다. 아이가 누운 침상에 고개를 기대고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아이는 또랑또랑한 눈을 크게 뜨고 무영을 보고 있었다. 눈은 눈물에 젖어 유난히 빛났다. 그 눈망울에 무영의 얼굴이 비칠 정도였다. 두 아이는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해령
난 유해령이야
무영
나는 최무영이다

방 안에는 단둘이었지만, 두 아이는 마치 남들은 들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이름을 알려주었다.

무영
이제 내가 니 곁에 있을거야.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라

그의 말에 해령은 고개를 보일듯 말듯 아주 살짝 끄덕였다.

*

최건 장군의 저택은 무인집안답게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크고 잘 짜여진 구조에 단순한 멋이 있었다.

장군이 머무는 대영부와 아이들이 있는 곳은 꽤 거리가 있고, 별도의 훈련장과 사병들이 머무는 독립된 공간도 있었다.

한 해의 대부분을 훈련과 전투에 나가는 최장군 댁의 살림은 진의원이라는 사람이 맡고 있었다.

이화공주가 죽은 이후 최장군은 더 이상 혼인하지 않았다. 후처를 들이라는 황제의 제안에도 안사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죄인인데, 어찌 그럴 수 있냐고 거절했었다.

황제는 자신이 이화공주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그녀의 고국 오산국으로 강제로 돌려보내려고 한 것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진의원은 오산국에서 이화공주를 따라온 의원이었지만, 무영이 태어난 순간부터 돌보고 아랫사람들도 잘 보살펴 존경을 받는 이였다.

그는 안채에서도 가장 안쪽으로 위치한 월화당에 해령과 유정이 머물도록 했는데, 월화당과 맞붙어 있는 청풍당은 무영의 거처였다.

달의 꽃과 푸른 바람. 두 처소는 긴 복도로 이어져 있어 언제라도 오고 갈 수 있었다.

이화공주
바람은 꽃을 만나러 언제든지 올 수 있지요

이화공주는 진의원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한때 이화공주와 최장군도 월화당과 청풍당에 머물렀다.

오산국에서 볼모로 끌려와 보잘 것 없는 무인 신분의 남자와 혼인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조용한 성품의 이화공주도 오산국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화를 냈지만 최건 장군이 문을 열고 처음 들어온 순간 그 모든 것을 잊고 말았다.

이화공주
진의원, 저는 그때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습니다

첫 눈에 자신의 남편에게 반했던 이화공주는 떠나고, 아주 작고 고운 아이가 그곳으로 찾아들었다. 무영의 손을 꼭 잡은 채.

*

며칠째 월화당의 해령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울다가 설핏 잠들고 또 깨서 울고를 반복했다. 유정이 곁을 지켰으나 소용이 없었다.

무영은 문 밖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울음에 지친 해령은 눈을 감은 채 잦은 숨을 내쉬었다.

무영
달도 자고 별도 자는데, 우리 아가 잠들지 않네. 엄마 품이 그리워선가. 꿈 속에 엄마, 우리 아기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는데. 어여, 가자, 꿈나라로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아침이 오기 전에 엄마 보고 와야지

무영의 노랫소리에 해령은 눈을 떠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무영
어서 자야지. 꿈 속에서 어머님이 기다리신다

무영은 조곤조곤 말하며 해령의 어깨를 토닥였다.

해령
난 아기가 아니야, 그런 거짓말에 넘어 갈 것 같아?
무영
나는 밤마다 꿈 속에서 어머니를 만난단다
해령
거짓말! 생각이 안 난단 말야

해령은 무영의 얼굴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자신이 어리다고 놀리는 거라면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무영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무영
꿈속에서 만난 것은 어머니와 나의 둘만의 비밀이라 깨어나면 생각나지 않을 뿐이야. 남들이 알면 다시 못 만나거든, 그러니 어서 자자

무영은 이불 밖으로 나온 해령의 팔을 이불 속으로 넣고는 목 아래까지 끌어올려 잘 덮어주었다.

봄이지만 아직 새벽녘에는 추웠다. 해령은 무영의 말을 의심하는 듯 했지만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았다.

해령
나 잠들기 전에 절대 가지마
무영
그래, 여기 있으마

무영은 해령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울음은 잦아들고 숨결은 부드러워 지더니 이윽고 해령은 잠들었다.

무영은 다시 한번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주고는 곁에 앉아 있던 유정에게 목례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유정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직 밤은 물러나지 않았지만 희미한 빛자락이 깨어나는 시각이었다.

새벽의 한기 대신 등쪽으로 느껴지는 따뜻함에 무영은 잠을 깼다.

새근새근 숨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뒤돌아 누운 무영은 작은 아기고양이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깊이 잠든 해령을 발견했다.

아이의 얼굴은 편안했다.

동그란 이마는 살짝 솟아 영민해보이고 초승달같은 모양의 까만 눈썹은 그리듯이 예쁘고 오똑한 콧날과 앙징맞은 콧망울도 귀엽고 통통한 뺨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 길고 풍성한 속눈썹은 흡사 나비의 날개처럼 펼쳐져 있었다.

윗입술에 비해 유난히 도톰한 아랫입술은 어린애답지 않게 오만해보이지만 분홍빛 입술 사이로 따뜻한 숨이 나왔다.

무영은 해령의 작고 동글동글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아이는 무영의 품 속으로 쏙 들어왔다.

[잘자라. 나의 작은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