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차오른다.

목을 조여 오는 차갑고 거친 밧줄에 심장이 얼어붙을 지경이다. 검은 헝겊에 씌어져 앞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향하는 수많은 시선과 소곤대는 말소리들, 숨죽인 얕은 호흡, 밀집된 긴장감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붉은 노을이 깔리던 어느 저녁, 부친을 따라서 꿩 사냥에 나섰던 일이 생각난다.

왜 이제야, 그때의 기억이 돌아온 것인지 모르겠다!

<강원도 금강산으로 까투리 사냥을 나간다. 오대산에 올라 금강산을 보고 태백산에 당도하니 까투리 한 마리 푸드둥 매방울이 떨렁>

아버지는 흩날리는 눈길을 걸으며, 항상 이 노래를 불렀다.

그래... 내 고향은 산 넘어 북쪽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함경도의 깊은 산골, 그곳은 일제가 시작되는 한반도의 기류와 무관한 지역이었다.

백두대간을 따라 흘러온 맑은 물과 거세게 태동하는 간류(澗流), 그 주변에 잉태된 열다섯 채의 오래된 초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편의시설은 없을뿐더러, 작은 물건이라도 살라치면 두어 시간을 걸어서 읍내까지 나가야했다.

<지 징징징~ 꽤 꽹꽹꽹~ 얼씨구~ 덩기덕 쿵덕, 좋다! 징징징! 쟁쟁쟁! 지징징!>

해마다 화창한 5월이 되면 찾아오는 고마운 손님들, 어린 시절 내 유일한 위안은 떠돌이 유랑극단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마을 어귀에 천막을 세우고 북과 장구를 치며 관객몰이를 했다.

“갱수, 니 또 어디 가네?”

“저 소리가 안 들리네? 광대패가 왔지비!”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는 ‘아~’하고 소리치면 ‘아아아~’하는 소리가 열 번이나 더 들릴 만큼 소리가 잘 울리는 산과 계곡의 골짜기였다.

‘지징징, 꽤꽹꽹, 두둥둥’ 그 소리를 들으면 아주 멀리서도 유랑극단이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나와 어울려 놀던 가장 친한 동무는 분이였다.

“잠깐 기다려 보라우 같이 좀 가자꾸마!”

“우레 분이! 그렇게 걸음이 느려서 어떡함매?”

“이 강생이 같은 노무쉐끼 기다리라우! 잡히면 죽었지비!”

분이는 아주 어릴 적에 큰 열병을 앓아서 조금만 뛰어도 금방 숨이 차는 지병이 있었다. 하지만 한번 오기를 부리면 사내 어른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집요하고 끈질겼다.

여자 아이였지만, 드센 성격 탓에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아마도 내가 없었다면 그 아이가 마을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 징징징~ 꽤 꽹꽹꽹~ 얼씨구~>

떠돌이 유랑극단의 광대들은 재주가 많았다.

그들은 줄타기, 버나(접시), 꼭두각시, 요술 등 다양한 놀이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나는 그 중에서도 음악과 함께 어우러진 가면극 놀이를 가장 좋아했다. 특히, 수염이 듬성듬성 나고 군살하나 없이 탄탄한 가슴을 훤히 보이고 다니던, ‘석우’라는 광대의 공연만은 절대 빼놓지 않았다.

석우가 만들어낸 천막 안은 놀랍고도 신비한 세상이었다.

글로만 읽었던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가 순식간에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가 가면을 쓰면 바보였다가 스님이 되기도 하고, 멋진 장군이 되기도 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울고 웃었다.

“모든 역할에는 생명이 있답니다. 그 영혼을 불러일으키면 되는 것이죠.”

그 광대는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인물의 작은 생각과 동작까지 터득한 석우의 상상력은 기적과 요술을 만들어냈다. 그가 가면을 쓰면, 목소리는 물론 입을 씰룩거리는 버릇까지도, 그 역할에 맞는 인물로 변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가면에 비밀이 있다고 생각했다.

엿장수를 기다리며 모아놓았던 쇠붙이와 양철냄비, 그리고 부친이 내년에 쓰려고 숨겨놓은 농기구까지 긁어모았다. 그것들을 석우의 장군가면과 바꿨다.

“내는 곧 낭그까정 뽑아 재끼고 돌기둥도 옮길 맨큼 힘이 세질 끼비!”

분이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리고 장군가면을 쓰고 기다렸다.

씨름대회에서 얻을 황소와 상금을 상상하면, 벌써 힘이 세지는 것 같았다. 무척 애썼다. 심지어 험한 산등선을 뛰어다니고, 내천을 건너며 힘을 키우는 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달 뒤, 내가 얻은 것이라고는 소학교 체육대회에서 받은 공책 몇 권이 전부였다.

황소는 아니지만, 우승은 우승이었다.

‘공책을 자랑하려고 했더니, 이 가스나는 어데가서 코빼기도 안보임둥?’

그때부터였다.

나를 따라서 개울가를 뛰어다니던 분이가 갑자기 코피를 흘리던 것이, 내가 체육대회에서 우승을 할 동안, 분이는 읍내에 있는 보건소에 며칠 동안이나 입원해 있었다.

<일 강릉 이 춘천 삼 원주라하여도. 놀기 좋고 살기 좋은 동면 화암이로다. 아질아질 성마령 야속하다 관음베루. 지옥같은 정선읍내 십년간들 어이가리. 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 지옥같은 이 정선을 누굴따라 나 여기 왔나. 지 징징징~ 꽤 꽹괭꽹~ 얼씨구! 세상천지 이곳만한 곳이 없구나!>

다음해 5월, 또 다시 시끌벅적 요란을 떨며 유랑극단이 돌아왔다.

마을 어귀에는 금세 천막이 세워졌다. 이번에는 온달만큼이나 힘이 세고, 백성의 영웅이었던 아기장수 설화가 공연됐다. 내용이 조금 각색되어, 본래 아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아기장수가 천기를 받아 부활하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광대들은 ‘하늘을 나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바위에 눌려 죽은 아기장수를 되살리는 역할이었다. 나무와 양철로 몸통을 대고, 비닐과 하얀 털 뭉치로 멋스런 날개도 연결했다. 흡사 지상으로 내려온 천마(天馬)를 보는 것 같았다. 공연에 등장하는 아기장수는 천마를 타고 승천하여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하늘의 말’은 도르래로 이어진 줄에 매달려, 천막 안을 비행하는 요술을 부렸다. 마당 한복판에서 그 높은 천장 위까지, 나무와 양철로 만들어진 그 무거운 덩치가 솟아오른 것이다!

“우리 이러는 거 들키면 큰일 나지 않겠스리?”

“난 하나도 안 무섭꾸마! 광대들도 지금 다 나갔슴둥!”

분이는 겁도 없는 아이였다.

광대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나를 데리고 그들의 천막 안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하늘의 말’을 눈앞에서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의 그 따스했던 하얀 털의 촉감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공연은 조선시대의 병사와 장수들 그리고 ‘하늘의 말’까지 그대로 재현해냈습니다. 여러분은 머지않아 산의 수호신과 강의 요정, 불을 내뿜는 용이 눈앞에서 승천하는 장면까지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석우는 마을사람들 앞에서 호언장담하며 외쳤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크게 흥분했다.

일전에 장군가면으로 낭패를 봤던 기억도 잊어버리고, 이틀을 고민했다. 그리고 ‘하늘의 말’을 마을간 이동수단으로 쓰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세우게 된다. 산꼭대기에 줄을 연결해서 ‘하늘의 말’을 띄우겠다는 것이다.

분이는 ‘택도 없는 소리’라며 내 계획을 무시했다. 나는 그 소리에 진심으로 더욱 오기가 생겼다. ‘두고 보자! 꼭 보여주겠어!’ 그 아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 해질 만큼 멋진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저 비탈진 언덕 위에,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바람을 가르는 하늘의 말, 그리고...’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어질 만큼 신이 났다. 이번에는 금가락지 한 개와 은수저 두벌을 주고 ‘하늘의 말’을 가져왔다. 금가락지는 모친이 시집가던 날 외조모께서 손에 꼭 쥐어주셨던 예물이었다. 훗날 대를 이어 며느리에게도 물려주리라 다짐하며, 배게 속에 몰래 감춰뒀던 그 물건을, 내가 찾아낸 것이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모친은 목 놓아 울었다. 하지만, 이미 신이 난 나는 낙담할 모친의 눈물과 한숨은 떠올리지도 못했다. 잔소리에 시달리고 매 맞을 것을 감수하면서, 분이에게 내 숨겨진 재능을 보여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예비실험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수차례의 모의실험까지 거친 뒤 작은 언덕사이에 줄을 연결해 ‘하늘의 말(天馬)’을 띄웠다. 역사에 길이 남을 도전이었지만, 실패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천마(天馬)가 냇가에 추락한 것이다.

하늘의 낙마(落馬)를 끌어내느라 동무가 넷이나 동원되었고, 위험한 물건은 치워버리라는 분이의 만류를 듣지 않다가 ‘하늘의 말(天言)’을 들을 뻔도 했다.

햇살이 따가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갑자기 시작된 장마가 지나가고 도랑의 물이 허리춤까지 불어났다. 덕분에 소학교에 가려면 삼십분이나 일찍 집을 나서서 먼 거리를 돌아가야 했다.

“내 이럴 때, 하늘을 나는 말을 타고 도랑을 건너면 좋겠슴둥!”

분이는 지나가는 말로 중얼거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내 귀에는 분명히 나보고 들으라는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내가 ‘하늘의 말을 꼭 날게 하고 말리라!’, 그래서 이 도랑을 훌쩍 뛰어넘어 보이고 싶었다.

나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다시 연구일지를 들고 방 안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그 신기한 물건을 어떤 방법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몇 달 뒤, 마침내 처음 보는 누구라도 쉽게 납득할 만큼 자세한 안내지침서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석우에게 경성의 말씨까지 배워가며 정중한 경어체로 지침서를 작성했고, 형식에 맞춰서 곧바로 실험의 결과보고서와 도표를 읍사무소로 보냈다. 내가 소학교를 졸업할 즘의 나이였다.

분이는 며칠째 학교까지 결석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남쪽의 큰 도시로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고 했다. 몇 달씩 집을 비워두기 일쑤였고, 이제 골짜기에서 가재를 잡지도 않았다.

그렇게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얇은 얼음장이 눈꽃처럼 흩어지는 봄이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을 한 분이가 수호목(守護木)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네? 내는 이제 너랑 볼 일 없을 줄 알았슴매!”

“미안하지비... 내, 많이 아팠지비... 내 미안하지비...”

평소 같았으면 내 비아냥거림에 욕 짓거리를 할 아이였다.

그런 분이가 내게 사과를 했다. 화나는 척하며 지나치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돌아섰다. 그 아이는 몇 달을 못 본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있었다. 검게 그을린 목탄 같았던 아이가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또 몸은 더 없이 야위었고, 초롱초롱 빛나던 두 눈에는 침울한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내 기어코 하얀 말을 날게 해준다하지 않았슴둥? 그때까지만 어디 가지 말고, 좀 가만히 기다리고 있꾸마!”

“알았슴매... 알았슴매... 내 어디 안가고 기다리겠슴둥.”

예상대로라면, 읍내에서 ‘하늘의 말’ 조작시범을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와야 했다.

그럼 그 복잡하고 위험천만하지만, 이론으로 정립된 비행기술을 직접 시연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달, 두 달, 석 달, 한 해가 지나가도 회답은 오지 않았다. 함께 두 손을 모아 기다려줄 분이도, 다시 남쪽 도시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큰 수술을 하느라,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분이 친척이 내게 말해 주었다. 분이가 먼저 약속을 어겼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읍내에서 연락이 왔을지도 모르는데.......!

결국 기다림에 지쳐 석우에게 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털어놓았다.

그 정직한 광대는 ‘하늘의 말’을 다시 돌려받고, 금가락지와 악기 몇 개를 내주었다. 또한 직접 악보를 적어주었으며, 소리의 높낮이를 이용해 악기를 다루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다양한 소리를 내는 신기한 물건에 빠져들었다.

해야 할 일들은 몽땅 잊어버렸고, 악기의 일정한 소리를 잡아내느라 꼬박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줄을 풀었다가 다시 연결하느라 몇 달의 우기를 보내기도 했다. 혼잣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부친과 모친은 농사일에 허리가 휘든 말든, 봄부터 올라온 이삭이 자라든 말든, 감나무가 풍성하게 무르익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다.

단 하나, 예외로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그건 다시 돌아온 분이었다.

“왜 여기서 비를 맞고 있슴둥? 그러다 또 쓰러짐매.”

“내는 비 올 때 비 맞고, 눈 올 때 눈 내리는 소리를 듣는 게 좋지비.”

“이 간나 가스나야! 미쳤슴둥? 니 그러다 진짜 죽는다!”

분이는 내가 중등학교에 다닐 즘,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거의 두해 만에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마을어른들 말로는 수술이 잘 끝나서 이제 다시 남쪽 도시로 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시 예전의 생기 있던 분이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 아이가 웃을 때는 내가 악기를 연주할 때뿐이었다.

“니는, 내 소리가 듣기 좋슴매? 다른 아바이들은 듣기 싫어하지비......”

“니가 아직 서툴러서 그러잠매? 말을 하려고만 하지 말고 좀 들어보라우. 저 참새 새꾸들이 하는 얘기가 안들림매? 지금 이 바람도, 햇볕도, 심지어 저 벌레 새꾸들도 말을 걸어오지 않슴둥? 왜 들을 생각은 안하고, 니 말만 하려고 함매?”

한 해가 지났다.

나는 악기의 다양한 소리를 듣기 좋게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분이의 말대로, 내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를 듣고 대화를 시도하면서 부터였다. 듣기 좋은 소리는 고목 아래에 사람들을 모이게 했고, 새들을 지저귀게 했으며, 때로는 자연의 소리를 악기를 통해 전달할 수도 있었다.

봄이 깨어날 무렵의 어느 화요일, 나는 마음을 괴롭혀 오던 모든 짐을 털어냈다. 신체의 변화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아닌, 일종의 삶에 대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아마도 모친께서는 그날의 내 엄숙한 표정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시리라.

“내는 큰 도시로 가야겠슴둥. 드 이상, 이 마을은 낼 품어줄 수가 없슴매!”

끈질기게 연주하던 악기조차 내려놓고, 알아듣지 못할 환희의 감탄사를 마구 내뱉었다. 그리고 환희에 가득 찬 듯, 내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을 모친께 얘기했다.

“어마이! 내는 큰 사람이 될끼비! 내좀, 경성에 있는 핵꼬로 보내도!”

“니 맴은 알겄는데, 갈라카믄 니 혼자 가라! 성이 되가꼬 영사스럽게 니 동상까지 끌어들일 생각일랑은 말고, 핵꼬부터 입학되믄 그때 말하라우!”

“내는 이제부터 경성 말만 쓸끼다! 석우한테 경성 말도 배웠지비!”

모친께서는 내 말에 기가 막혀서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끼던 항아리까지 마당에 던져버렸지만, 나는 그 깨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아서 다시 붙여놓았다. 그때부터는 버려진 창고를 작업실로 만들고, 온종일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다.

먹고 자는 것을 제외한 모든 일들을 잊어버린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돌이나 나무를 치렁치렁 연결해서 두드리거나, 우두커니 앉아서 떨어지는 물방울만 바라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석우만은 달랐다.

“아직 이곳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바깥세상 그러니까 큰 도시에서는 악기를 잘 다루면 좋은 학교에 가고 많은 돈을 벌수도 있습니다!”

그는 음의 높낮이를 정확히 잡아내는 내 능력이 엄청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을사람들 앞에서 내 재능을 찬양하기까지 했다. 내 노력을 칭찬하는 뜻에서, 서양식 기보 방법이 적힌 책과 악보도 선물했다.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토담이 붉어 좋고요. 앞 남산 철쭉꽃은 강산이 붉어 좋다. 정선같이 살기 좋은 곳 놀러 한 번 오세요. 검은 산 물밑이라도 해당화가 핍니다. 나물바구니 둘러메고 동산 나물을 가니. 동삼에 쌓였던 마음이 다 풀리는 구나. 봄철인지 갈철인지 나는 몰랐더니. 뒷동산 도화춘절이 날 알려주네.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 일출 동령에 달이 솟았네. 창밖에 오는 비는 구성지게 오잔나. 비 끝에 돋는 달은 유 정도나 하구나. 앞 남산 적설이 다진 토록 봄소식을 몰랐더니. 비 봉산 행화춘절이 날 알려주네.>

석우는 내가 만든 가락에 맞추어 아리랑 한 곡조를 뽑아냈다.

그 때의 그는 매우 지쳐보였다. 이마에는 주름이 깊게 패어있었고, 근육은 쭈글쭈글 늘어져서 가죽만 남아있었다. 이제 갓 불혹을 넘긴 그가, 마치 노쇠한 노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죽음이 냄새를 맡고 끊임없이 내 바지자락을 뒤따르고 있단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만큼은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어.”

나는 어린시절 유랑극단이 마을에 처음 나타났을 때, 석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내가 코흘리개 어린아이였고, 그는 젊고 탄력적인 인상의 매우 인기 있는 젊은이였다. 하지만, 그의 고장 난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일까?

석우는 나이를 먹어 모든 기력을 다 쇠진해버렸지만, 나는 소의 굴레를 잡아끌고 다닐 만큼 힘이 세져있었다. 평양에서 매독을, 한양에서 열병을, 개성에서 눈병을, 경상도에서 괴혈병을, 전라도에서 문둥병을, 강화도 해협에서는 엄청난 파선 사고를 겪으며, 그는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던 철인의 사나이가.......

그런 그가, 마침내 인류를 채찍질한 모든 질병과 재난에 쫓기는 도망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일본군에게 잡혀 고문을 당한 뒤부터라고 했다.

그는 태연한 표정을 지닌 우울한 시골의 촌부 같았다. 이제 병들고 하잘것없는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으며, 고문에 이가 다 빠져서 잘 웃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석우의 공연이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그의 천막 안으로 모여들었다. 그의 환상적인 공연이 시작되면, 그가 우울한 사람이었든 아니든, 병에 걸린 사람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더운 날 공연을 보며, 비 오듯 땀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그 광대의 모습에서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돌아가신 조상님을 다시 뵙는 듯, 넋이 나간 표정이 된 것이다. 하지만 딱 한 사람, 내 모친만은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갱수 그노마가, 악기랍시고 모셔놓은 쇠붙이를 보믄, 대강이에서 열불이 나요! 속이 느글거려 죽가써! 광대양반, 당신도 그기에 책임이 있지 않드래요?”

모친은 참고 있던 화를 터트리며 석우에게 말했다.

“쇠붙이라니요! 대나무에 구멍 몇 개를 열어놓고 파는 시장의 대피리보다 훨씬 과학적인 악기랍니다.”

석우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는 아는 것이 많아서 언제나 말이 막히지 않았다. 이번에도 서슴없이 내 악기에 대한 위대함을 설명했지만, 모친은 두 귀를 틀어막고 밭으로 나가버렸다.

밤바람이 서늘했던 어느 여름날 저녁, 귀한 돌에서는 맑은 소리가 난다는 글귀를 봤다. 부친의 저고리에 달려있던 호박단추를 몰래 떼어냈다. 시간이 흐른 뒤에 결국 들통 났지만, 이미 그 돌은 내 악기를 담당하는 음의 한 ‘자리’가 되어있었다.

내 작업실은 다양한 수석과 나무 조각들이 즐비해 있었다. 소리를 담아내는 자연의 모든 것들로 창고를 가득 채우기 전까지, 나는 수집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때의 분이는 부쩍 기력이 많이 좋아졌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잠을 많이 자더니, 몸이 다 나은 것 같았다. 나는 분이에게 경성의 말씨만 쓰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자기도 병원에 있는 동안 경성 말을 많이 들어서, 아마 나보다 더 잘할 것이라고 대꾸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누가 더 경성 말씨를 잘 쓰는지 서로 겨루기라도 하는 듯, 어색한 경성 말로 대화를 했다.

“내는, 아니 나는, 요즘 자꾸 꿈을 꾼다.”

“니가 잠을 많이 자서 그러는 것 아님매?”

“아님, 매?”

“분이 네가, 잠을, 많이 자서, 그러는 것이, 아니겠니?”

늘 이런 식이었다.

내 어색한 경성 말에 깔깔대던 그 아이 모습이 생생하다.

“가끔, 저 나비처럼 하늘을 나는 꿈을 꿔. 구름 위에서 우리 마을을 내려다보면 사람들 머리가 꼭 작은 콩나물처럼 보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꿈속에서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 그럼 어떻게 되는 줄 아니? 그 꿈속에서, 내가 또 다시 꿈을 꾸는 거야. 그럼 난 언제나 꿈속에 있는 것이 되지!”

“이 가스나가 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뭐가 진짜 꿈이고, 뭐가 가짜 꿈인지 모르겠다는 소리야?”

“아니, 둘 다 진짜지. 지금 내 모습도, 나비가 된 내 모습도!”

“웜메웜메....... 이 가사나가 드디어 미쳐꾸마!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말라우!”

그때까지도 나는 분이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꿈을 꾸는 나와, 꿈속의 내가 구분이 되지 않다니!

이제 몸이 좀 괜찮아지나 싶었더니, 내게 농을 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다른 공간에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존재한다면, 그 존재를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의 ‘나’는 분명 다른 존재일 것이다. 그것이 ‘나’의 꿈일지라도 말이다.

모친은 유랑극단이 마을에 돌아올 때마다 그들을 쫓아내자고 말했다. 마을에서는 모친의 입김이 꽤 센 편이었지만, 그 주장만은 번번이 실패했다. 마을사람들은 이미 광대들이 꾸려오는 온갖 신기한 물건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하늘을 넘나드는 재주와 무희들의 춤사위에는 아마 귀신이 오더라도 홀렸을 것이다.

나 역시 새로운 가면극 ‘영웅전쟁’을 보고 어찌나 감격했는지, 악기를 다루는 일조차 잠시 흥미를 잃어버릴 지경이었다.

“산과 하늘 그리고 강이 들려주는 것들은 소리로만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하늘, 구름, 바람, 꽃, 이 모든 것들을 귀가 듣고 눈이 본 다음, 심장에 닿아야만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거야! 저 연못 가득한 푸른 수초조차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걸.....!”

끼니를 챙기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잡생각이 가득한 머릿속을 풀어내느라 하루 종일 마당을 거닐었고, 도통 알 수 없는 소리만 나불거리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런 아들 녀석 때문에 내 부친과 모친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석우가 없을 때,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분이뿐이었다.

“분아, 네 말이 맞아! 자연을 관찰하고 느끼는 행복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 하지만 여긴 너무 좁아. 이 세상에는 신비하고 매력적인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남쪽 도시에는 정말 사람들이 많다며? 사람도 많고, 배울 것도 많고, 놀 것도 많고!”

분이는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너의 음악을 들으면 누구라도 좋아 할 거야. 만약, 만약에 말이야.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난 네 음악을 들을 수 있어. 그러니까, 만약 네가 그리는 세상에, 그 음악 속에, 내가 없더라도, 내가 언제나 함께 있다고 생각해줘. 만약 내가......”

“또 무슨 햇소리를 하려고 그러는 거야? 네가 이 세상에 없다니?”

“생명은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야. 하지만 죽음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생명이 잉태될 수 있지. 언젠가, 네가 정말 멋진 음악가가 된다면, 하지만 그때, 내가 네 옆에 없다면, 그래도 날 기억해 줄래? 꿈에서라도 말이야.......”

나는 그때 분이의 말이, 시간이 지나서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때의 기억이 돌아왔으니 말이다.......

내 부친과 모친은 마을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중한 역할을 했다.

무슨 일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적극적이었고,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했다. 흙을 다져서 만든 마루와 돌담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했고, 직접 만든 허술한 나무가구들은 항상 말끔했다. 심지어 옷을 간수하는 낡은 장롱에서까지 은은한 계피 향이 풍겼다.

덕분에 어린 시절의 나는 꽤 머리가 좋은 아이였다.

동무들은 내 계획에 따라 산짐승을 잡고, 날짐승을 추락시켰으며, 들짐승을 우리에 가뒀다. 내가 우두머리로 있던 패거리는 늘 질서가 있었고, 다른 마을의 패거리들보다 사건 사고를 적게 일으켰다. 더욱이 조부 때부터 우리 집안은 마을의 큰일을 도맡아 차지하는 역할이었다. 마을 어른들은 언제나 내가 훌륭한 마을의 ‘어른’으로 자랄 것이라고, 다들 입을 모아 칭찬했었다.

모친께서는 무슨 결단을 내리셨는지,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즘 성대한 마을잔치를 열어주셨다. 수호목 아래 모인 마을 사람들을 다 합치니 오십 명 정도 되었다.

그 정도의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이 얼마만인지, 더욱이 탐탁하지 않게 여겼던 유랑극단까지도 초대했다. 때마침, 그들이 마을에 도착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온 마을에 훈훈한 수육냄새가 가득했다. 막걸리의 구수한 누룩냄새, 그리고 광대패들의 신명나는 풍물놀이까지 어우러졌다.

석우가 상쇠를 잡아 요란스럽게 꽹과리를 울렸다. 그 옆에 수장구를 치는 여사당과 장구치배들, 북을 치는 소년 광대와 징을 치는 할배 광대, 수많은 광대들이 각자의 악기를 들고 ‘얼씨구 좋다! 신명나게 놀아보자!’고 외쳤다.

마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 ‘판’에 참여하여 얼씨구절씨구, 몸을 덩실 거렸다. 심지어 내 모친까지도 그 판에서 춤사위를 벌렸으니, 단 한명이라도 즐겁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경수야, 내가 어제 또 꿈을 꿨는데.......”

분이가 마당 한편에서 다가와 내게 조심히 말을 걸었다.

“꿈? 요즘에도 꿈을 꾸네?”

“여전히, 경성 말씨가 부족하네?”

“아차......!”

그 아이는 꺄르르 웃더니 진지한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엔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생생했어!”

“무슨 꿈이었길래, 이렇게 뜸을 들여?”

“꿈에, 네가 나왔어!”

“내가? 네 꿈에?”

“응! 네가! 얼마나 멋졌는데!”

어찌나 신난 표정으로 떠들어대던지, 시험에서 일등이라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창밖에서 떨어지던 달빛이 점점 사람처럼 변하더니, 방 안에 가득 찼어. 열댓 명의 무리가 악기를 들고 내 눈앞에 나타났는데, 그 중에 너도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네가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니까, 네 손짓대로 그들이 소리를 내는 거야! 처음 들어보는 음악이었어. 정말 아름다운 음악! 나비가 춤을 추듯, 환상적인......”

“내가 손을 휘저으니까, 내 손끝이 가는대로 악사들이 소리를 냈다고?”

“응!”

“달빛으로 만들어진 악사들이?”

“그렇대도!”

“하하, 거기서도 내가 대장이었네? 야이 가스나야! 놀리지 마라!”

“너무 신기해서 널 만져보려고 했는데, 내 손이 닿자마자 나비가 돼서 날아가 버렸어. 훨훨~ 창밖으로 사라져버렸지.”

“개꿈이네!”

“꿈이 아닐지도 몰라.”

“그럼 내가 나비라도 되네? 나비가 돼서 날아가야겠슴둥?”

내가 ‘이레, 이레’ 하면서 날개 짓을 해도, 그 아이는 진지하게 말했다.

“진실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어디서, 무슨 책이라도 봤네? 우레 분이가~ 오늘 왜 이러네?”

“난 자유롭고 싶어. 그 소망의 모양이 진실로 나타날 거야. 진실이라면, 꿈과 현실의 차이가 있을까? 구별이 있겠어? 나비가 나고, 내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겠지!”

달빛이니, 나비니, 꿈이니, 알 수 없는 소리만 해대던 그 대화가, 마지막 인사였다. 흥으로 가득했던 신명난 마을잔치가 끝나고, 다음날 분이네 가족이 마을을 떠났다.

마을 어른들은 쉬쉬하며 말을 아꼈지만, 분이의 병이 재발해서 더 이상 이 나라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남쪽 도시에 사는 성공한 분이의 친척이 그 아이를 바다건너 섬나라로 보냈다고 했다.

그 뒤부터였던 것 같다. 늘 주목받았던 나의 사회적 지도력과 준수하고 말끔했던 모습이 사라져버린 것이, 나는 엉망의 옷차림에 머리 손질도 안한 거지같은 행색으로 산과 들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것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동무들을 가르치고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책을 서슴없이 깨우쳤던 아이가 미친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남쪽 도시’의 예술학교 입학허가서가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그동안 내가 미쳤다고 험담하던 사람들까지도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위한 성대한 마을잔치를 열어주었다. 나는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되었다.

단 한 번도 마을주변을 벗어나 본 적이 없지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마을사람들은 북쪽으로는 넘을 수 없는 산이 있고, 그 산의 반대편에 옛 북방민족이 모여서 만든 나라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처럼 넘을 수 없는 북쪽의 산과 나라를 향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석우가 준 지도는 다 익혔다. 남쪽으로 뻗은 강줄기를 따라가는 것이다. 들판을 지나고 산을 넘으면 나타날, ‘경성’이라는 도시가 내 종착지였다.

‘그곳에는 분명, 내 꿈을 밝혀줄 등불이 있을 거야!’

1 사랑비 (1화)
간만에 괜찮은 가독성의 웹소설ㅋ
1 우루사 (1화)
굿
1 뿌룽뿌룽 (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