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우는 고개를 들고 건물을 바라보았다.

고풍스러움과 모던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다락방이 있는 3층 건물이다.

오래된 건물에 약간 리모델링을 한 것 같다.

어깨 정도 높이의 울타리가 빙 둘러져있고, 얼핏 아기자기한 꽃들이 가득한 정원이 보였다.

효우는 여기가 찾는 곳이 맞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예스러운 외관에 끌려 울타리가 열려있는 곳으로 향했다.

스르륵.

반쯤 열린 울타리를 밀고 들어가자, 꽤 잘 가꾸어진 정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물과 햇빛, 주인의 사랑과 정성을 듬뿍 받아 쑥쑥 자란 나무와 꽃이 건물 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4차선 도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인데, 전혀 도심 속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이런 곳이 있었나?

정원을 지나 건물 앞에 서자, 멋스러운 간판이 보였다.

“시간의 숲 도서관”

도서관? 도서관이었어? 그럼 역시 잘못 온 거야?

박물관에 가야하는데.. 옛날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오늘 하루만.

뒤돌아나가려다가..

그래, 도서관이면 어떻고 박물관이면 어때.

드르륵, 효우는 문을 열었다.

눈앞에 펼쳐진 건 여느 도서관과는 달랐다.

꽤 큰 공간인데, 방이나 칸막이가 없이 전체적으로 뻥 뚫려있었다.

소파, 의자, 테이블 등이 곳곳에 놓여있어, 어디서든 편하게 책 읽는 것이 가능해 보였다.

책장 위에 찾기 쉽게 팻말이 놓여있고, 베스트셀러, 신간 등도 따로 분류해놓았다.

작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책을 놓기 위해 빼곡히 책을 진열한 게 아니라, 보기 쉽고 선뜻 손이 가게 배치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서점 같은 느낌의 도서관이다.

효우는 어떤 책들이 있나 천천히 살펴봤다.

소설, 에세이 등 문학관련 책들과 동화책이 보였다.

효우는 여기에 자기 책도 있나 싶어, 동화 쪽으로 가보았다.

검지손가락으로 쭈욱 훑어가던 중.. 찾았다!

<꼬마의 비밀> 작가 이효우.

푸훗. 괜히 뿌듯하다.

효우는 2년 전 동화공모전에 당선되고, 작년에 자기이름이 새겨진 첫 동화책을 낸 작가다.

새로 간 서점에서 효우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자기가 쓴 책을 찾는 것이다. 이 도서관에도 있구나.

여러 아이들을 거쳐 손때가 묻었으면 좋았으련만..

아직은 깔끔하다. 그 점이 살짝 아쉽지만, 그래도 뭐.

나름 뿌듯해하며, 동화책을 다시 책장에 꽂았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면, 과학 수학 등의 전문분야 책들이 놓여있다.

빠르게 휙 둘러보곤 곧장 3층으로 갔다.

여기도 철학, 심리학, 역사, 여행 등의 책들이 즐비하다.

여행 책이나 좀 볼까 싶어 가다가, 한 쪽 구석진 곳에 천장에서 계단이 내려와 놓여있는 게 보였다.

웬 계단이야? 호기심이 생긴 효우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고개를 빼꼼히 들고 안을 들여다봤더니, 밖에서 보던 다락방이었다.

신기한 생각에 안으로 들어갔다.

책장에 책들이 가득 꽂혀있는 건 다른 층과 같지만, 다락방엔 먼지까지 같이 꽂혀있었다.

뽀얀 먼지가 책 제목을 알 수 없게 살포시 내려앉아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다락방을 더 비밀스럽게 해주었다.

효우
와! 이런 곳이 다 있네?

효우는 신이 나서 도서관이라는 것도 잊은 채 쿵쾅거리며 걸었다.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바닥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 남자, 준이다.

평화로운 정적을 깬 자신에게 조용히, 여긴 놀이터가 아니라고 경고를 하는 것 같다.

아차! 싶어서 미안하다고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살살 걸었다.

조용히 하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책을 꺼내면서도 “오~ 와~ ” “이거 언제거야?” 쉴새없이 혼잣말이 나왔다.

그럴 때마다 준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짙은 눈썹이 올라갔다.

동화여행?

효우는 양장본 표지의 “동화여행” 이라는 책을 꺼냈다.

뭔가 싶어, 바닥에 앉아 책을 펼쳤다.

이곳에도 의자가 있으면 좋으련만.. 다락방에는 앉을 만한 가구가 없다.

책 표지에 쌓인 먼지를 툭툭 털어내니, 공기 중에 뿌옇게 날렸다.

켁켁 먼지의 존재에 응하듯 기침을 두어 번 하고, 책장을 펼쳤다.

<동화 속 세상은 아름답지만, 무서운 곳이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 그 곳으로 가고 싶다면, 다음 페이지를 펼쳐라.

용기 있는 자만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그 책을 펼치면 그 곳으로 가게 된다> 라고 적혀있다.

한 장을 넘기자, 힌트가 적혀있었다.

다음 장도, 그 다음 장도 마찬가지였다.

대략 서른 장 남짓 있는데, 모두 제각기 다른 힌트 뿐이었다.

효우는 후루룩 책장을 넘겨서, 아무데나 손끝이 닿는 곳을 펼쳤다.

<독일, 그림동화, 1937년.>

재미삼아 한 번 해볼랬더니 생각보다 질문이 어렵다.

효우
뭐 이렇게 어려워. 이럼 누가 해?

효우는 자신을 향해 무언의 경고를 했던, 책 꽤나 읽은 듯 보였던 남자가 떠올랐다.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은 준을 바라봤다.

한 쪽 무릎을 세워 책을 올려놓고 긴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쭉 뻗은 반대편의 긴 다리에 바닥의 먼지가 붙어 있었지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고서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다락방에서 저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읽는 남자라면, 답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우
저기요, 뭐 하나 물어봐도 되요?

준이 고개를 들어 효우를 응시했다.

효우
독일, 그림동화, 1937년. 이거 뭔지 알아요? 연상퀴즈 같은데.

준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마치 질문을 알고 있었기라도 한 듯.

백설공주요.
효우
백설공주요?

효우는 고개를 떨구고 다시 책에 적힌 힌트를 읽어봤다.

효우
독일.. 그림동화.. 1937년은 뭐야? 왜 그렇게 생각(해요?)

고개 들어보면.. 준은 효우에게 전혀 관심없다는 듯이 다시 책을 보고 있었다.

타인과의 교류가 없네. 저렇게 까칠해서야 원...

효우는 괜히 민망하고 머쓱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설공주가 맞다면 찾아보면 되지.

책 속에 뭐가 있나 한 번 보자.

/ 정답입니다! /

뭐 이렇게 달랑 한 줄 적혀있는 건 아니겠지?

별 것 아닌데, 괜한 기대를 품게 하는 이상한 책이다.

근처 책장을 둘러보며 책을 찾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책장을 쭉 훑다가 준이 앉아있는 곳까지 왔다.

준이 힐끔 올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모른 척 하자. 꿋꿋이.

어딨으려나... 어! 있다!

준 뒤로 세워진 책장의 제일 위쪽.

하필 저기야. 역시.. 찾기 어렵게 여기 저기에 대충 꽂아놨나보네.

괜히 뭐라도 있는 것처럼, 꺼내기도 쉽지 않게.

손을 뻗어보지만, 될 리 없다.

까치발을 드는데.. 잡힐 듯 말 듯.

으라차~ 좀만 더, 좀만 더..

겨우 책에 손이 닿고.. 미처 꽉 잡기도 전에 책을 놓치고 말았다.

책은 떨어지면서 그대로 바닥에 펼쳐지고.

어! 어!!

책을 잡으려는 효우와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드는 준.

당혹스러운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두 사람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스르르 사라졌다.

비밀을 품은 다락방엔 이제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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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큰 나무가 쭉쭉 뻗어있는 울창한 숲.

이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사방에서 예쁜 새소리가 들렸다.

준에겐 숲 한가운데 서있는 효우가 보였다.

효우에게도 나무와 준 밖엔 보이지 않았다.

여긴 도서관이 아니다.

여기가 어디지? 꿈을 꾸는 건가?

너무 당황스러운데.

그러기엔 콧등을 간질이는 바람이 너무 부드럽고 귓가에 들리는 소리가 너무 생생했다.

당황스러운 준은 조금 전 일을 떠올렸다.

도서관 다락방에서 고서를 읽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다소 엉뚱한 여자가 시덥잖은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고..

그리고 그 여자가 꺼낸 책이 툭 바닥에 떨어져 펼쳐졌을 뿐인데.

준이 기억하는 건 거기까지다.

여긴 어디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서관과 숲은 상관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다.

효우
설마!

갑자기 뭔가 생각난 효우는 너무 놀라서 와! 라는 감탄사만 뱉어냈다.

효우
여기가 설마...

준은 저 여자 뭘 아는 건가? 싶어 바라보는데.

효우
이거 꿈이에요? 꿈이죠?

오히려 되물었다.

여기 어디에요? 우리 어떻게 된 거에요?

준 역시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답을 모르는 질문들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효우
꿈이냐고요.
아니에요, 꿈. 우리 방금 도서관에 있었어요.

진짜 현실이라고? 이게? 지금?

효우는 너무 놀라 말도 안 나왔다.

효우
허! 말도 안돼.

그러니까 뭐냐고. 대답을 하라고, 좀.

답답한 준.

왜 그래요?
효우
동환가봐요. 동화 속.

동화 속?

동화 속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준의 머릿속은 심란하고, 꽉 막힌 고속도로처럼 답답한데, 뭔가 싸한.. 불안한 느낌이 스쳤다.

이건 분명 꿈이 아니다.

고스란히 현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준이 디디고 있는 땅 위에 개미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 개미가 준의 운동화 위로 올라왔다.

준은 화들짝 놀라 땅에 발을 쾅쾅 털었다.

이건... 현실이다.

무슨 말이에요, 그게?
효우
아까 다락방에서 책을 하나 봤는데, 질문에 맞는 답을 찾아서 펼치면, 거기로 들어간다고 써있었어요.
그래서요?
효우
그 쪽이 알려줬잖아요. 답.
그러니까 여기가..
효우
백설공주요.
말도 안돼.
효우
말이 안되죠? 말이 안되지, 이건. 근데 꿈 아니라면서요. 도서관에 있었다면서요.

주위를 둘러보지만, 보이는 건 나무뿐인 숲이다.

효우
진짜 신기하다.

신기? 이게 신기해?

준은 이 상황이 어이없고 화난다.

그렇다 쳐요. 난 왜 데려온 거에요?

해맑게 웃는 효우.

효우
데려온 거 아닌데. 저도 모르죠. 저도 모르고 온 건데..

모른다. 이처럼 뻔뻔한 말이 또 있을까.

준은 기막혀서 빤히 효우를 봤다.

더 해봐, 어디.

무슨 말이라도 하라고.

효우
그 쪽이 알려준 거잖아요. 난 답도 몰랐다니까요.
말을 했어야죠. 이런 이상한 데 오는 거라고.
효우
진짜 올 줄 몰랐죠. 그걸 누가 믿어요.

이런 곳에 뚝 떨어뜨려놓고, 몰랐다 그럼 끝이라니.

준은 어이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효우
근데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완전 신기해!!

효우가 마냥 웃으며 좋아하고 있을 때, 준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왔어도 나가면 그만이다.

그럼 된다.

변명이나 사과보다 해결방법을 듣는 게 낫다.

어떻게 나가요?
효우
!

아차! 하는 눈빛.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그래도 설마..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해야 돌아가냐고요.

신기해! 라고 말할 때와는 전혀 다른 톤의 소리로 말했다.

효우
몰라요.

순간, 준은 아까보다 더 싸한 느낌을 받았다.

몰라? 모른다고? 뭘? 미적분? 벡터?

대체 뭘 모른다는 거야? 내가 뭐 얼마나 어려운 걸 물어봤다고 모른대?

왔으면 나가는 방법쯤은 당연히 알아야 되지 않아?

뭐라고요?

준의 흔들리는 눈빛에, 효우는 어쩔 줄 모르고..

대답하는 효우의 목소리는 한없이 작아졌다.

효우
몰라요, 나도.
모른... 모른다고요? 그럼 어떻게 해요?
효우
글쎄요.. 생각해봐야죠, 이제.

이제 생각해본다고?

당장 나가도 시원찮은데.. 이제 생각을 해본다고?

아악!!

준의 비명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1 제임스강 (1화)
너무 재밌어요